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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칼럼

탄핵정국 음모론 판친다

  • 우찬규 / 학고재 대표

탄핵정국 음모론 판친다

탄핵정국 음모론 판친다
풍문(風聞)이란 대체로 근거가 불분명한 것이다. 발 없는 그 소문이 천리를 간다. 물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도 굴뚝이 있었기에 연기의 출처를 캘 수 있는 것 아닌가. 풍문은 아예 굴뚝도 없다. 바람에 실린 소문들은 세상을 떠돌다 어느 틈에 숨을 거둔다. 그런가 하면 이 덧없는 소문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자들도 있다. 그들의 시도가 ‘음모론’을 낳는다. 그들은 듣는 이의 동의를 얻고자 나름의 기승전결을 갖춘다. 말하자면 ‘소문의 과학화’를 도모하는 셈이다. 이렇게 생산된 음모론은 부정(否定)의 심리에 편승하려는 사람들에게 기생해 꽤 오래 목숨을 부지하기도 한다.

탄핵정국 속에서 별별 음모론이 기승을 부린다. 내가 들은 음모론 중에는 그악스러운 것도 있었다. 대우건설 전 사장의 투신과 관련된 시나리오다. 이 음모론은 알려진 사실과 정반대에서 출발한다. 돈을 받은 사람은 대통령의 형이 아니라 대우건설 전 사장이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대통령의 형이 전 사장을 만나 조카의 일을 부탁하면서 돈을 건넸다. 뇌물을 준 것이 곧 들통날 지경이 됐다. 대통령의 형으로서 돈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니냐. 그래서 검찰과 대통령이 거꾸로 덮어씌워 투신에 이르게 해 입을 막았다….’

어처구니없는 악의적 주장부터 즐기기 위한 농담까지

어처구니가 없다. 이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의 자살 교사죄’를 주장한 야당은 개연성을 떠나 신중하지 않은 발언으로 비난받았다. 그 누구라도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때는 이유가 간단치 않은 법이다. 충동에 의한 결행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엄중한 것이 죽음에 대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고인의 명예가 경솔하게 용훼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음모론은 고인을 대놓고 희롱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미 알려진 사실을 반전시킴으로써 극적 효과를 노리는 수법을 동원했다. 통상(通常)보다는 비상(非常), 긍정보다는 부정에 대한 결속력이 높은 것이 인간의 심사인 것을 안 까닭이다. 음모론은 이처럼 어둠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속셈까지 보인다.

그저 즐기기 위한 음모론도 없지는 않다. 그것은 농담이거나 가상의 게임이거나 영화의 소재에 불과할 따름이다. 문제는 흉흉한 민심을 조장하는 것들이다. 나는 이런 음모론을 생산하는 자들을 두 부류로 본다.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통찰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다. 전자는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기에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쪽이다. 설사 정보가 주어져도 그 의미를 해독하지 못한다. 그래서 제가끔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자족한다. 때로는 자족에 그치지 않고 전파의 해독을 끼치기도 한다. 이 경우 음모론은 우매함의 결과다. 후자는 정보를 확보하고 있거나 제대로 터득했지만 왜곡해서 퍼뜨린다. 그 정보에 자신의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억지 해석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남들의 냉정한 분석을 방해한다. 이때의 음모론은 농간의 결과다.



우매함에서 비롯됐든 농간에서 출발했든, 음모론이 하나의 반증으로 이용될 때는 더욱 고약해진다. ‘탄핵 유도’ 음모론이 그렇다. 탄핵 이후 전망을 뛰어넘는 결과가 빚어졌다. 국민의 저항이 갈수록 거세졌고, 각 당의 지지율이 요동쳤다. 탄핵안 가결에 가담한 세력은 당황했다. 이 과정에서 서둘러 유포된 것이 탄핵 유도 음모론이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 음모론이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유가 있다. 진상이 불명확할수록 사람들은 분석과 진단에 조급해진다. 이 경우 허술한 초기 분석의 틀도 약효를 발휘한다. 거기다 이 음모론을 제기한 쪽은 다수의 저항에 반대하는 증거물로 이를 퍼뜨린다. 덤으로 탄핵안의 정당성과 부당성 논의를 휘발시키는 효과도 노린다.

‘현대판 미신’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음모론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은 무엇일까. 뻔한 얘기지만 정치나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판단의 자료가 될 정보는 몽땅 공개돼야 한다. 연기를 피워놓고도 굴뚝을 숨기는 짓은 어리석다. 탄핵안 가결만 해도 그렇다. 절차적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 당리당략적 측면이 숨겨져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를 덮기 위해 무리한 논리를 개발하고 온갖 음모론을 전파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짓이다.

3월12일 아수라장 같은 국회에서 국회의장은 투표를 저지하려는 소수파 의원들을 향해 고함쳤다. “모든 것은 자업자득입니다.” 정말이지 딱 맞는 말이다. 자기가 저지른 일은 반드시 되돌아온다. 반대했든 찬성했든, 그 결과는 남들이 다 보는 대명천지 아래서 공평하게 돌아올 것이다. 암약이 횡행할 때 음모론은 발호한다. 음지에서 음모가 자라고 몽매한 자가 미신을 떠받든다.



주간동아 428호 (p100~100)

우찬규 / 학고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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