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2일 한나라당 상임운영위를 주재하던 최병렬 대표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맨 왼쪽).17일 오전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밝게 웃고 있는 우리당 지도부(가운데).22일 탄핵소추안 철회와 지도부 사퇴, 노대통령의 사과 등을 요구하며 삭발을 한 민주당 설훈 의원.
한 조사전문가의 고민에 찬 토로다. 실제 3월20~22일 언론들이 공개한 지역구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관심지역 대부분에서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후보가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조사에서는 전통적 한나라당 강세지역인 서울 강남에서조차 무명의 우리당 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사회여론조사본부 부장은 “한나라당 원희룡(서울 양천갑) 남경필(경기 수원팔달) 의원, 민주당 김성순 의원(서울 송파을) 등 몇몇 의원들은 탄핵정국 전까지 경쟁력이 있었다. 그런데 탄핵사태 이후 모두 우리당 후보에게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쏠림현상이 지배하는 상황에선 총선 의석수를 전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유권자 40% 후보자 인물 정보 아직 파악 못해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은 “분명한 것은 우리당이 확실히 1당의 지위를 굳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2000년 총선 때도 총선 직전 터진 남북정상회담 발표가 오히려 여당에겐 악재가 되지 않았나. 그런 돌발상황 발생 가능성이 남아 있어 분명하게 총선결과를 예측하기란 어렵다”고 말했다.
나선미 동아일보 여론조사전문위원도 “아직 유권자 40% 이상이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하는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설문조사에 답하고 있다”며 “유권자들이 출마자의 구체적 인물 정보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정당지지도만으로 총선 전체 판도를 점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 국민들의 탄핵에 대한 감정적 반감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라 조사결과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지연 부장은 “일부 지역 우리당 후보의 경우 인지도는 10~20%인데도 지지율은 40~50%에 이르고 있다”며 “구체적 인물정보 없이 흥분한 상태에서 정당만 보고 지지를 보내는 현상이 전국적 현상으로 자리잡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탄핵사태 초기 조사전문가들은 “탄핵 가결 이후 일주일 정도 지나면 구체적인 표심의 향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록 여론은 진정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태 초기보다 우리당으로의 쏠림현상은 더욱 가속화됐고 이제는 대세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우리당 강세가 위력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는 4월15일 어떤 총선 성적표를 받을 것인가. 우리당 원내대표실의 한 인사는 “현재까지 우리당이 1당이 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비례대표를 포함해 120석까지는 확보된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당 조직국의 한 당직자도 “이 추세를 몰아가면 과반수에 걸치는 정도까지는 약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측도 자신들의 약세를 인정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확보하면 대성공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호남에서의 궤멸적 붕괴로 민주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다.
각 당의 판세 분석에 조사전문가들도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나선미 위원은 “지금 추세라면 우리당이 1당이 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헌태 소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까지 드러난 여론조사 데이터만 놓고 보면 우리당은 과반수를 넘어 개헌선(200석)까지 넘볼 정도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당 낙승 분위기만은 확연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당 대세론’에 동의하지만 몇 가지 관전 포인트는 남아 있다. 우선 관심을 끄는 부분이 오랜 세월 지역정당을 지지해온 영·호남 유권자들의 선택. 대부분 조사전문가들은 호남의 경우 사실상 우리당이 민주당의 대안세력으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반해 영남지역은 아직 완전히 우리당으로 페이스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20일 실시된 동아일보 KRC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다. 나위원은 “조사결과 영남지역의 경우 우리당에 대한 정당지지가 높음에도 당선 가능성에서는 한나라당이 더 높게 나왔다”며 “이런 추세는 특히 TK(대구·경북)지역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이 때문에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할 경우 한나라당 후보들이 선전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내다봤다.
김헌태 소장은 그러나 “한나라당은 영남 유권자들에게 이미 여러 차례 실망을 안겨줬다. 탄핵 강행은 그런 민심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는데 돌아앉은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획기적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당장 한나라당이 내놓을 수 있는 민심 회복 대책은 무엇일까. 김소장은 “한나라당 임시전당대회가 일단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기 전 한나라당 스스로 탄핵을 철회하거나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총선이 1인2표제로 치러진다는 것도 선거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후보에 각각 투표하는 방식인 1인2표제를 감안해 조사기관들은 설문조사에서 후보 지지와 정당 지지를 나눠 묻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유권자들이 후보와 정당을 구분하지 않고 답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정혜 이사는 “국회의원 총선은 대통령선거와 달리 지역단위 인물간 경쟁임에도 아직은 정당과 인물에 대한 평가를 구분하지 않고 있는 결과”라며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들어서서 인물이 부각되면 지금과 같은 쏠림현상은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위원도 “아직 1인2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선거에 임할 경우 1인2표제를 제대로 활용하려는 유권자들의 전략적 투표 심리가 살아날 것이고, 따라서 현재 예측과 거리가 먼 결과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통령선거의 경우 지지도 1% 차이는 30만표로 환산되지만 유권자가 몇 만명 단위인 총선에서는 10%라 하더라도 표로 따지면 몇 천표 수준이라는 것. 따라서 후보가 하기에 따라, 또 중대한 정치적 변수에 따라 당락이 바뀌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리당의 일방적 우세를 인정하면서도 이런 변수들 때문에 앞선 측도 뒤진 측도 끝까지 마음 놓을 수 없는 게 총선의 특징인 셈이다.
조사전문가들은 “언론사들의 선거결과 공표가 금지되는 4월1일 이전까지 지금과 같은 우리당 쏠림현상이 계속된다면 우리당 낙승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3월 말 공개될 총선 전 마지막 공개 여론조사 결과가 그 어느때보다 큰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