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4

2004.03.04

60kg 작은 거인 190kg을 ‘번쩍’

세계 최초로 자신 몸무게의 3배 이상 들어 … 올림픽 3연패, 세계신기록도 수십 회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lo54@yahoo.co.kr

    입력2004-02-26 16: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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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kg 작은 거인 190kg을 ‘번쩍’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여섯 차례의 세계신기록을 세운 나임 술라이마노글루(터키). 당시 동아일보는 그를 서울올림픽 최고의 스타로 뽑았다.

    터키의 나임 술라이마노글루는 이름이 두 차례나 바뀌었다. 나임 술리이마노프로 시작해서 나임 샬라마노프라고도 불렸다. 그만큼 그의 생애가 파란만장했기 때문이다.

    나임 술라이마노글루는 1961년 불가리아의 산골마을인 프타차프에서 터키계 불가리아인으로 태어났다. 키는 부모를 닮아 162cm로 작았지만 힘은 당할 자가 없었다. 나임은 14살 때 19세 이하가 참가하는 세계청소년역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다.

    귀화 후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 출전

    불가리아인들은 작은 체격에서 엄청난 괴력이 나오는 나임을 ‘포켓 헤라클레스’라고 불렀다. 그런데 나임에게 불행이 닥쳤다. 불가리아가 소수 민족인 터키인들에게 억압 정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불가리아 정부는 터키 출신들에게 터키어를 사용하지 말 것, 불가리아 식으로 이름을 고칠 것 등을 요구했다. 그러자 나임은 자신의 고국인 터키로의 망명을 결심하고 86년 호주에서 열린 월드컵역도대회 직후에 이 같은 결심을 실행하기로 했다. 나임은 이 대회에서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후 곧바로 터키로 귀화해 전 세계 스포츠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나임을 끌어안은 터키는 88년 서울올림픽에서 멕시코올림픽(68년) 이후 20년 만에 금메달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나임은 불가리아 국적으로 활약할 때 56kg급에서 27차례나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고, 86년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는 60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자기 몸무게의 3배는 들어올릴 수 없다’는 통설을 깨고 180kg을 들어 인간 한계를 넘어섰다. 나임의 기록 이전엔 용상에서는 몸무게의 3배, 인상에서는 몸무게의 2.5배 이상을 들 수 없다는 게 정설이었다. 국적을 터키로 바꾼 나임의 올림픽 출전은 터키의 금메달 획득으로 이어지는 셈이었으나 귀화한 선수는 곧바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국제역도연맹(IWF)의 규정에 따라 터키의 바람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임의 서울올림픽 출전 여부는 국제역도연맹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불가리아, 터키의 이해가 엇갈리며 올림픽이 열리기 3개월 전인 88년 6월까지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 결국 터키는 ‘돈’을 주고 나임의 올림픽 출전권을 사게 된다. 터키가 불가리아에 150만 달러를 주고 나임의 올림픽 출전을 양해받은 것. 나임은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시 세계 유수 언론들은 금메달 0순위로 나임을 지목하며 “나임은 자신과 하는 싸움에서만 이기면 된다. 부상이라는 변수만 생기지 않으면 금메달 획득이 확실하다”고 보도했다.

    88년 9월20일 역도 60kg급 경기가 벌어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은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인파는 나임이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나임은 역기를 들기 전에 마치 기를 모으려는 듯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는 버릇이 있는데, 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인상 2차시기에서 입을 크게 벌렸다 다문 나임은 150.5kg을 들어올려 서울올림픽에서의 첫 번째 세계신기록을 세운다. 자신이 갖고 있던 인간 한계(인상에서 자신의 몸무게 2.5배) 기록을 500g 경신한 것이다. 나임은 인상 3차시기에서 152.5kg을 들어 또 한 번 세계신기록을 경신한다. 나임은 이어 벌어진 용상 2차시기에서 188.5kg을 들었다. 인간의 한계라는, 자기 몸무게의 3배보다 무려 8kg이나 더 들어올려 세 번째로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운 것. 이 기록은 인상과 용상을 더하면 이번 대회 네 번째(152.5kg+ 188.5kg=합계 341kg) 세계신기록이기도 했다. 관중들은 숨죽이며 나임의 용상 3차시기를 기다렸다. 이런 관중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나임은 3차시기에서 190kg을 들어올려 몸무게의 3.17배를 드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다섯 번째 및 여섯 번째 세계신기록이기도 했다. 나임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은메달을 딴 불가리아의 스테판 코프로프의 기록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스테판 코프로프는 합계 312.5kg을 들어 나임의 기록에 비해 30kg이나 모자랐다. 경량급에 해당하는 60kg급에서 2위보다 30kg이나 더 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나임의 금메달 획득으로 멕시코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딴 터키는 나임을 영웅으로 대접했다. 대저택과 최고급 승용차를 선물했고, 평생 동안 쓸 돈도 주었다. 그러나 나임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거운 역기와 씨름을 했다. 나임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60kg급에 출전해 역시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기록은 서울올림픽 때보다 좋지 않았다. 4년 전보다 22.5kg이나 모자란 합계 320kg에 그친 것. 인상에서는 10kg이 모자란 142.5kg이었고, 용상 기록도 12.5kg이나 가벼운 177.5kg이었다. 나임은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64kg급으로 체중을 올려 참가한 이 대회에서 그는 종전 세계기록 330kg을 5kg 경신한 335kg의 세계신기록을 세웠지만, 은메달을 딴 그리스의 발레리오스 레오니다스의 332.5kg보다 겨우 2.5kg밖에 더 들지 못해 “이제 나임도 늙었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임은 4년 뒤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도 출전했지만 인상에서 실격해 메달 획득에 실패한다. ‘포켓 헤라클레스’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도 세월 앞에선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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