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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와 네이처 ‘도대체 뭐기에’

100년 이상 과학혁명 대변하며 과학계 군림 … 철저한 엠바고·까다로운 논문 심사 등으로 권위 구축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사이언스와 네이처 ‘도대체 뭐기에’

사이언스와 네이처 ‘도대체 뭐기에’

무명 과학자들의 첫째 소원은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논문을 싣는 것이고, 성공한 과학자들의 최고 목표는 이들 매체의 표지에 실릴 만한 연구업적을 이뤄내는 것이다.

‘네이처’에 연구논문을 게재한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 ‘사이언스’ 탄생에 자금줄 역할을 한 발명왕 에디슨, 뢴트겐의 X선 발견과 미국의 우주혁명 역시 ‘사이언스’에 의해 생생하게 대중에게 전파됐다(위부터).

전 세계 모든 과학자들의 명예의 전당이자 최신 연구결과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 불과 5만~6만부를 발행하지만 전 세계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이 인용·보도함으로써 1000만부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잡지 바로 과학전문지인 ‘사이언스(Science)’와 ‘네이처(Nature)’의 파워를 언급할 때마다 나오는 얘기다. 이 두 매체는 지난 세기 세계 과학의 흐름을 주도해왔던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창간돼 100여년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과학혁명을 대변하고 전파해왔다.

이른바 ‘대중적 학술지’ 성격을 지닌 과학잡지가 이렇듯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적 권위를 획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최근 ‘인간 배아줄기세포 복제’란 획기적인 업적을 세워 세계적 인물로 부각된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사이언스’를 통해 논문을 발표하게 된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사이언스’는 생명공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인 미국 피츠버그대학 제럴드 셰튼 교수의 논문 한 편을 게재했다. ‘현재 기술로는 쥐 양 돼지 등 다른 동물과 달리 영장류 난자는 복제 후 4세포기 이상 발육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요지였다.

발행 부수 적지만 영향력은 1000만부



이 논문은 황교수를 강하게 자극했다. 이 논문이 발표되기 2개월 전, 황교수는 인간의 난자와 체세포 핵을 이용해 세포주(cell strain·실험실에서 장기간 배양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세포 덩어리)를 만들어냈기 때문. 사실상 배아복제 성공의 문턱을 넘어선 상태였다. 황교수는 ‘사이언스’에 자신의 연구를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특별연구팀을 조직했고, 연구 성과는 즉시 ‘사이언스’에 전달됐다.

심사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연구성과를 접한 ‘사이언스’의 편집위원 및 심사위원들은 까다로운 논문심사 이외에 경기 화성에 있는 황교수의 농장과 연구실을 직접 방문하여 실험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증작업을 벌였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대중매체에 공개되지 않는 등 철저하게 엠바고(보도제한)가 지켜졌다는 것.

과학전문지에서 엠바고 전통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대 물리학과 오세정 교수는 “엠바고는 잘못된 연구 내용이 과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은 채 일반인에게 노출되는 일을 막는 안전장치”라고 말한다. 과학전문지에 발표되어야 비로소 연구 내용이 공개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이 이른바 과학계의 암묵적인 합의사항인 셈이다.

과학자들은 주장이 아닌 논문으로 대화한다. 그러나 그 논문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영역. 따라서 과학분야는 정치·경제 분야와 달리 대중과 전문가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대중적 과학전문 학술지’라는 영역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심사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이를 공개하는 순간은 화려하고 성대하다. 2월12일 기자회견을 앞두고 ‘사이언스’는 전 세계 무려 1500여개에 이르는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며, 수백명의 기자들이 ‘사이언스’의 권위를 믿고 직접 시애틀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을 찾아왔다. 이른바 지구촌 변방에 있는 무명의 수의학자가 사이언스에 의해 순식간에 세계적인 학자로 부각된 것이다.

과학계에는 이 양대 매체보다 더욱 선망받는 전문학술지가 여럿 있다. 화학분야의 ‘젝스’를 비롯해 물리학 분야의 ‘피지 컬리뷰’, 생물학 분야의 ‘셀’, 의학분야의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생화학 분야의 ‘저널 오브 케미컬피직스’, 고전물리학 분야의 ‘피지컬 리뷰 레터스’ 등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그 어떤 매체도 ‘사이언스’가 황교수를 부각시켰던 것처럼 드라마틱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물론 과학계에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대한 칭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전문지가 ‘과학권력’이라 불릴 만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난 여론 역시 만만치 않다.

우선 영어권인 제1세계에 기반을 둔 매체인 만큼 이 두 전문지는 제3세계 과학계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고 있다는 비난에 시달린다. 국내 과학계 역시 이 두터운 벽을 뛰어넘기 위해 수십 년을 준비해야 했다.

그보다 심각한 갈등은 대부분 논문 심사기준 중 하나인, 해당분야 전문가의 심사(peer review) 과정에서 발생한다. 보통 심사위원 세 명 중 한두 명이 새로운 연구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 아무리 연구성과가 새롭고 뛰어난 것이라 해도 빛을 볼 수 없다. 이른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보여진 것 같은 다수결의 오류인 셈이다. 어차피 인간이 심사하기에 생기는 한계지만 때론 이들 매체의 권위에 심각한 상처를 내기도 한다.

사이언스와 네이처 ‘도대체 뭐기에’

양대 권위지에 반기를 들고 탄생한 온라인 과학저널 플로스(www.plosbiology.com).

최근 시민단체와 종교계는 과학자들 스스로가 기업 입장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곤 한다. 이른바 “제약회사와 생명공학 기업이 과학활동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지난해 1월 ‘사이언스’는 다국적 생명공학 기업인 몬산토의 후원을 받고 있는 댄포스 식물과학센터의 과학자 로저 비치가 쓴 유전자 변형작물(GMO) 지지 글을 게재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특히 윤리 논쟁이 일 수 있는 민감한 사항에 대한 견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이 양대 과학전문지의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젊은 과학자들은 인터넷의 개방성과 참여성에 기대어 새로운 시도를 꿈꾸기도 한다. 2003년 말, 양대 권위지를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온라인 저널인 플로스(Plos, Public Library of Science Biology·공공생물과학도서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인터넷 미디어와 기존 오프라인 미디어의 대결이 된 셈인데, 아직까지 과학계는 온라인 미디어의 성공이 요원해 보일 만큼 검증된 심사위원과 100여 년간의 권위의 벽이 높아 보인다.

여전히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의 꿈은 이 두 매체에 자신의 논문을 표지에 장식하는 것이다. “앞으로 1세기 안에 이 두 매체와 대등한 과학전문지가 탄생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주간동아 424호 (p70~71)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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