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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같은 소 꼭 죽여 묻어야 합니까”

‘브루셀라 악몽’ 절망의 정읍 축산농 … “눈 뜨고 병 키우지 말고 예방 백신 접종 도입을”

  • 정읍=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자식 같은 소 꼭 죽여 묻어야 합니까”

“자식 같은 소 꼭 죽여 묻어야 합니까”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브루셀라 감염소 매립장을 축산업자들이 허탈하게 바라보고 있다(큰 사진). 축산 관계자들이 브루셀라 감염 소들을 살처분하고 있다. 마취된 소의 배를 가르는 이유는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2월20일 오후 3시반 전북 정읍 신태인읍 매립장. 용달트럭에 실려온 브루셀라 감염 소 두 마리가 마취 주사를 맞고 차례로 정신을 잃은 채 쓰러졌다. 소는 큰 눈을 껌뻑이며 다가올 운명을 예감한 듯 숨을 헐떡거렸다. 포클레인은 이 소들을 구덩이로 밀어넣었고, 그 위로 석횟가루와 흙이 뿌려졌다. 소의 형체가 보이지 않을 만큼 흙이 덮여지자, 이를 지켜보던 축산업자 고모씨(43·여)는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미 2주일 전 20여 마리의 소를 묻은 고씨는 이제 흘릴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40여 마리의 소를 키우던 고씨에게 남은 소라곤 이제 10여 마리. 하지만 이들도 건강하게 자라줄지 막막하기만 하다.

“내 몸처럼, 내 자식처럼 키우던 소를 죽여야 하다니.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매립지 위쪽에는 ‘브루셀라 살처분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가 외로이 내걸려 있었다.

지난해부터 1천여 마리 감염



소 브루셀라가 전국 각지로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막을 수 있는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해 주민들의 원성이 높다. 특히 3종 인수(人獸)전염병인 브루셀라에 걸린 농민들은 “치료약을 복용하고 있으나 후유증에 시달린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브루셀라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축산농가들이 “브루셀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예방 백신을 쓰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정부는 “백신 도입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브루셀라 해법’을 놓고 농민, 전문가, 정부가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브루셀라가 속수무책으로 확산하고 있는 셈이다.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02년까지 7년간 6304마리의 소가 브루셀라에 감염돼 살처분(殺處分·도살해 땅에 묻는 방법)되는 등 연평균 1000마리에 가까운 소가 브루셀라에 감염됐다. 특히 정읍 지방의 브루셀라 감염 상황은 심각해 지난해 초부터 지금까지 이 지방에서 브루셀라 감염으로 살처분된 소는 1000여 마리에 이른다. 계속되는 브루셀라 공포에 이 지방 축산농가들은 살처분 정책을 고수하는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수백 마리의 소를 키우며 모범 축산농으로 인정받았던 B씨는 브루셀라 때문에 2년에 걸쳐 400여 마리의 소를 살처분해야 했다. 20여년간 축산업에 종사해온 그에게 남은 자산이라곤 텅 빈 축사와 허탈감뿐이다.

“15억원을 대출받아 축사를 짓고 수백 마리의 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기대를 걸었지요. 새끼소들이 잘 자라주면 1년에 9억원 정도 흑자를 낼 수 있겠구나 하면서…. 근데 브루셀라 감염으로 내 몸 같은 수백 마리 소들을 다 묻어버리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대학생인 자식 셋은 어떻게 키우나, 빚은 또 어떻게 갚나. 처음 브루셀라에 걸리지 않은 나머지 소들에게 예방 백신만 놓았어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하 아사모)의 김동호 회장(44·정읍 다나동물병원 수의사)은 정부가 고집하는 살처분 정책의 문제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살처분이 브루셀라를 근절하는 방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병이 발생되기를 기다렸다가 처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균이 확대 재생산되고 사람에게 감염될 기회를 넓힐 수 있다는 것. 그는 “브루셀라 양성으로 진단된 소는 묻어 죽이는 한편 축사에서 같이 있었던 모든 소에게는 백신을 접종함으로써 이 질병의 확산을 막는 게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살처분의 또 다른 위험 요인은 환경오염 가능성이다. 감염 소 수십 마리를 한꺼번에 매립한 땅은 악취와 파리·모기떼의 공습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브루셀라 감염 소 80여 마리를 묻었던 정읍 고부면의 매립지는 식료품, 음료수 공장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2월19일 이 매립지를 찾은 유모씨(42·여)는 심한 악취로 인해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더 큰 문제는 죽은 소들이 가지고 있던 브루셀라균이 지하수로 스며들 가능성도 있다는 것. 감염 소 매립지를 선정하는 정읍시청 축산과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감염 소를 매립한 뒤 석횟가루를 뿌려 브루셀라균이 완전히 죽도록 했다”며 위험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석횟가루로 브루셀라균을 완전히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근처에 흐르는 지하수의 수질검사나 제대로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살처분 매립지가 브루셀라균 보관소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

“자식 같은 소 꼭 죽여 묻어야 합니까”

김동호 수의사(오른쪽)가 브루셀라 감염이 의심되는 소를 진단하고 있다. 전북대 백병걸 교수(작은사진).

브루셀라 피해 농가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은 브루셀라가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점이다. 브루셀라에 걸린 소들은 죽이면 된다지만, 사람이라도 브루셀라의 공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보통 브루셀라에 감염된 사람들은 가축을 가까이 다루는 축산업자나 수의사다. 이들이 상처 난 피부로 브루셀라에 감염된 가축과 접촉했을 경우 혈액을 통해 감염된다. 또 감염동물의 장기, 태반과 접촉하거나 가공되지 않은 우유를 섭취함으로써 브루셀라에 감염되기도 한다. 사람에게 나타나는 브루셀라 증상은 고열, 두통에서 관절염까지 다양하다. 김동호 회장은 “브루셀라의 치사율이 2~4%에 달하며, 항생제 사용을 중지하면 재발하는 일이 많고 내균성이 나타나므로 치료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농림부는 “정부에서 목장마다 매년 3개월 간격으로 정기검진을 하고 브루셀라에 걸린 소를 살처분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고, 인체에 감염돼도 치료약으로 완치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인수공통전염병 피해 농가 더욱 고통

지난해 브루셀라 양성판정을 받은 K씨는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더욱이 정부는 브루셀라 감염환자에 대해 어떤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

“1998년 건강하던 제가 갑자기 원인 모를 두통과 근육통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과로 때문인 줄만 알았는데, 증세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더군요. 간검사, MRI 촬영, 한방요법, 골수검사 등 별별 검사를 다 해봤지만 ‘정상’이라고 나오더군요. 그런데 지난해 혈청검사를 받고 제가 브루셀라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치료약을 먹고 6개월 후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후유증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브루셀라에 감염된 환자로 공식 확인된 사람은 17명. 이들 중 12명이 정읍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김동호 회장은 밝혀지지 않은 브루셀라 감염환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일반 병원에서는 브루셀라 진단 항목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브루셀라에 감염된 후 복막염으로 고통받았던 A씨(43·여)는 브루셀라균이 맹장에 침투한 사실도 모른 채 뒤늦게 수술을 받아야 했다. 더구나 A씨는 남편과 함께 이 병에 감염돼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자녀를 경기 일산의 친척집에 맡겼다. 자녀를 돌볼 힘도 없을 뿐더러 자녀들에게 혹시 전염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 A씨는 “자식들 한번 안아주기도 겁나고, 소들도 하나둘 죽어가니 살아갈 의미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한국에선 아직 타인에게서 브루셀라에 감염된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다. 하지만 학계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브루셀라에 감염된 사람들의 항원균 보유 정도에 따라 수혈과 성 접촉에 의한 타인 감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연세대 송영구 교수(영동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는 2월3일 열린 ‘정읍 지역 브루셀라 감염 축산인들과 보건복지부 방역과의 치료 설명회’에서 “만성양성 등 균 보균 정도에 따라 (수혈을 통한) 타인 감염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브루셀라가 불치병은 아니지만 정읍 지역의 몇 사람은 브루셀라 정밀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었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인데 농림부가 백신의 도입을 주저하고 있는 이유는 1998년 백신 파동 때문이다. 농림부가 98년 전국의 모든 젖소에게 백신을 접종해 유산과 유방염 등 부작용이 발생했기 때문. 당시 농림부는 백신 부작용의 연구가 잘못된 것으로 결론지었고, 검찰은 연구를 담당한 전북대 백병걸 수의학과 교수를 허위 과장된 연구보고서를 농림부에 제출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백교수는 “당시 문제의 백신은 4종 이상의 세균들로 오염돼 있던 불량 백신이었다”며 “나의 연구결과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발병 지역에 백신 접종을 하며 발병률이 점차 줄어들어 병이 소멸할 뿐만 아니라, 이웃 농장에 감염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게 백교수의 소신이다. 백신 부작용 사건 이후 농림부는 수의축산 전문가 37명으로 특별대책조사반을 만들었다. 이들은 중간보고서에서 “중앙가축전염병연구소에서 제조한 40만 마리 분량의 백신이 유산원인균과 포도상구균 등 4가지 이상의 세균에 오염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구가 잘못된 것인가, 백신 검수가 잘못된 것인가’를 놓고 백교수는 5년째 재판을 벌여오고 있다.

브루셀라 피해 농가들은 ‘백신 파동’과 별개로 안전이 검증된 백신을 얼마든지 수입할 수 있지 않느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브루셀라가 발병한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남미 국가 등에서는 양성 소에 대해서는 살처분 정책을 펼치면서, 예방을 위해 RB51백신을 사용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브루셀라 백신의 안전성을 인정한 바 있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

하지만 농림부의 생각은 다르다. 백신 정책을 쓸 만큼 우리나라의 브루셀라 감염률은 심각하지 않다는 게 농림부측의 입장이다. 농림부 가축방역과 한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나라의 20만 축산 농가 중에서 브루셀라로 고통받는 농가는 0.3~0.5%에 불과합니다. 백신 정책을 쓰는 국가는 브루셀라 발생률이 적어도 4~5%에 이르는 국가이지요. 백신 정책은 브루셀라를 완전히 뿌리 뽑는 게 아니라 브루셀라균을 잠재적으로 남겨놓는 것입니다. 백신을 투여한 소에 대한 사후 관리도 어려워 백신 정책의 도입은 쉽지 않습니다.”

백신 정책의 도입에 소극적인 농림부의 태도에 피해 농가들은 답답함을 호소한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접종하지 않은 소는 아예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 사후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일부 농가의 백신 접종을 꺼린다는 설명은 농림부의 ‘직무유기’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더욱이 브루셀라에 대한 안전관리가 허술하다는 현실도 큰 문제점으로 꼽혔다. 브루셀라 감염 목장 내의 소는 혈청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더라도 절대로 다른 목장으로 판매하거나 이동시켜서는 안 되고, 식육우로 시중에 판매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것. 정읍 지역 농민들은 “브루셀라는 잠복기가 길어 감염돼 있어도 음성이 나오기도 하는데,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면 바로 유통시킨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수의과학검역원의 한 담당자는 “도축 검사를 할 때 생식기와 해당 장기들을 다 보고 또 도축한 고기를 시중에 내놓기 전에 잠복상태에 있는 고기를 다시 걸러내기 때문에 오염된 고기가 유통될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읍 지역의 농민들은 도태할 때 검역 담당자가 내장 검사를 따로 하지 않는다며 의문을 나타냈다.

소 잃고, 건강도 잃고, 의욕마저 잃어버린 정읍의 브루셀라 피해 농민들은 더 이상의 피해가 나서는 안 된다며 당국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백신 1개의 값이 몇천원인데, 병을 키워 수백 마리의 소를 죽이고 있지 않습니까. 제발 브루셀라병이 유행하는 지역의 희망 농가에라도 예방접종을 하게 해주십시오. 그게 소비자도 살고, 우리 농민도 사는 길입니다.”





주간동아 424호 (p42~44)

정읍=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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