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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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적발 솔루션 “범죄 꼼짝 마”

‘통화내역’ ‘금융거래’ 통계 분석 용의자 추적 … 수사 속도·정확성 높아 ‘족집게 검거’ 위력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4-02-26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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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적발 솔루션  “범죄 꼼짝 마”

    2월13일 검찰로 이송된 노무현 대통령의 사돈 민경찬씨.

    민경찬씨 관련 계좌 70여개를 추적했고, 그와 전화통화한 1600여명 가운데 두 차례 이상 통화한 수백명을 모두 조사하는 등 경찰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했다.”(경찰청 특수수사과 이상원 과장)

    “70여개의 연결 계좌와 1000여통의 통화기록을 조사하려면 한 달도 더 걸린다. 경찰이 일주일 만에 수사를 끝낸 것은 권력형 비리사건을 은폐하려는 의도 아닌가.”(민주당 함승희 의원)

    노무현 대통령 사돈인 민경찬씨의 653억원대 펀드모집 의혹사건 수사를 마무리한 경찰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밤샘 수사를 통해 ‘펀드는 실체가 없는 민씨의 자작극’이란 결론을 내렸지만 세간에선 ‘축소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 2월20일 국회 청문회장에 출석한 최기문 경찰청장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미묘한 수사를 떠안은 검찰의 상황은 어떨까.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김태희 부장검사는 “경찰이 13개 통화기록을 조회했다면 우리는 105개 통화기록을 조사해 몇 가지 성과를 거뒀다”며 “추가로 압수 수색한 4~5곳은 경찰이 찾아내지 못한 곳이다”고 밝혔다.

    ‘閔펀드’ 검찰 압도적 수사력 발휘



    실제로 검찰은 부동산 재개발업자인 ㈜조선리츠의 박모 사장과 수백억원대 공금 유용 혐의가 있는 방모 이사를 구속함으로써 펀드의 실체에 한 걸음 다가섰다. 특히 방이사는 노대통령 친형 건평씨와 네 차례 접촉했다고 털어놓아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렇다면 통화내역 조회 건수 105대 13이라는 검찰과 경찰의 압도적인 수사력 차이의 원인은 무엇일까.

    “수천 통의 통화기록을 수작업으로 통계 내고, 의심이 가는 인물의 인적사항과 금융기록을 의뢰하고 통보받습니다. 이 모든 작업을 팩스에 의존하다 보면 어느새 산더미 같은 서류에 치여 수사관들은 녹초가 되지요.”(10년차 검찰 수사관)

    최근의 범죄수사는 대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범죄를 기획한 주모자와 그를 돕는 조력자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여 불법행위를 포착하는 것. 이들의 행적을 쫓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통화내역’과 ‘금융거래’가 손꼽힌다. 정보통신 시대에 접어들면서 모든 경제인의 행적이 통신회사와 금융회사에 충실하게 기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 명의의 ‘대포통장’과 ‘대포폰’이 아니라면 수사기관(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은 용의자의 행적을 쉽게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는 일을 사람 손에만 의존하다 보니 수사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 민씨를 처음 수사한 경찰 역시 이 같은 상황에 빠진 셈이다.

    검찰은 선진국 수사기관에서 사용하는 사기적발(FD·Fraud Detection) 솔루션이란 첨단기법으로 경찰의 맹점을 극복했다. 작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와 마약부에서 도입한 이 프로그램은 영국 I2사가 개발한 ‘애널리스츠 노트북(Analist’s Notebook)’이란 컴퓨터 프로그램이다.(박스기사 참조)

    일종의 통계프로그램인 이 제품은 용의자와 관련자 사이의 방대한 통화내역을 바탕으로 이들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그림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 관계 속에서 범죄에 활용된 것으로 보이는 ‘대포폰’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범죄 용의자와 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A, B, C라는 인물의 통화기록 속에 특정 시점 이후에 전혀 다른 전화번호(D)가 등장하여 A, B, C라는 인물과 통화했다면 이 D는 용의자의 숨겨진 전화로 추측할 수 있다. 결국 D를 추적해야 새로운 범죄 관계도가 완성되는 것. 이른바 전화통화를 기반으로 한 인맥지도를 그려냄으로써 수사의 속도와 정확성을 높인다는 얘기다.

    이는 금융거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의심이 가는 계좌들의 거래 내역을 바탕 삼아 계좌 지도를 만들어내면 자금의 이동 경로가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 이를 서울중앙지검 마약부에서 처음 사용했던 윤민식 계장은 “과거 비자금 추적에서 서너 차례만 타인 계좌로 이동해 세탁되면 수사가 난항을 겪었지만, 첨단기법 도입 이후 그런 어려움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윤계장은 최근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보직을 옮긴 뒤 ‘노숙자 명의 이용 100억원대 토지사기단’ 등 미제사건 2건을 순식간에 처리해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사기적발 솔루션  “범죄 꼼짝 마”

    A라는 사람의 전화통화 내역을 분석한 화면. 전화통화 횟수에 따라 자동으로 빈도가 파악된다.<!--DC type=br DC-->A씨와 연관된 다른 전화번호들에 대한 분석화면. 4개의 전화번호와 여러 번 통화된 전화번호들이 확인된다. 이렇게 서로 관련된 데이터를 자동으로 연결하여 이들과 연계된 숨겨진 인물들을 찾아낸다.<!--DC type=br DC-->두 번째 그림에서 분석한 데이터들 중 서로 연관성이 있는 부분만을 찾아낸 화면. 연관되지 않은 전화번호들은 제외되고 중간에 연관된 전화들만 선택되어 이른바 ‘대포폰’ 등이 확인된다.

    이 같은 첨단 수사기법은 돈세탁과 금융사기 용의자 추적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면서 특히 강력부와 마약부에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최근 강력 및 마약 사범들의 주요 수입원인 외환거래를 통한 ‘환치기’ 수법을 검증하는 데 요긴하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귀띔이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지난해 12월 마카오에서 내국인들을 호텔 카지노 등으로 끌어들인 뒤 환치기를 통해 거액의 도박자금을 대여한 모 폭력조직을 소탕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마카오에서 거액을 탕진한 김모씨는 폭력조직의 꾐에 빠져 1억100만원을 국내 계좌로 입금한 뒤 홍콩달러 65만 달러를 건네받는 이른바 ‘환치기’ 수법으로 도박자금을 마련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단순 계좌추적만으로 불가능하며 통화시점과 거래내역의 연계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프로그램으로 그 어려움을 해소한 것.

    이 같은 수사는 각종 불법 금융거래를 쫓는 관세청과 국세청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또한 최근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주도하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안대희 검사장)도 2003년 하반기 이를 도입해 각종 채권이나 용의자 추적에 시험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데이터 처리기술의 획기적 발전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선 수사기관이 특정 개인의 통화내역을 입수할 경우 그 사람의 방대한 인맥지도를 손쉽게 만들어 관리할 수 있다. 현재 이 같은 사기적발 프로그램의 주요 고객이 국가정보원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카드사와 보험사 등 각종 금융회사에서 이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점도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이 같은 추적을 피해가는 방법도 머지않아 등장할 전망이다. 여기에 ‘공중전화’를 사용하거나 ‘대포폰’을 자주 바꿀 경우 쉽게 적발되지 않는다는 맹점도 지니고 있다. 범죄자와 수사기관의 쫓고 쫓기는 두뇌싸움이 더욱 치열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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