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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때문에” 콘텐츠업계 죽을 맛

앞으론 주요 업체만 선정 ‘노골적 줄 세우기’ … 서비스 중인 500여개 중 상당수 끈떨어질 판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SKT 때문에” 콘텐츠업계 죽을 맛

“SKT 때문에” 콘텐츠업계 죽을 맛

011 휴대전화로 모바일 영화를 감상하고 있는 SK텔레콤 직원들.

”결국 ‘간택’되지 못한 거다. 이 사업을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무선 콘텐츠 제작업체(CP)를 운영하는 김정수 사장(가명). 요즘 그의 가장 큰 고민은 SK텔레콤(이하 SKT)의 달라진 무선인터넷 콘텐츠 ‘소싱’(sourcing) 방법이다. 그동안 SKT는 CP에 ‘네이트’ 등 무선인터넷 망을 제공하고, 게임·벨 소리·채팅 서비스 등 콘텐츠 판매로 발생하는 정보이용료를 1(SKT)대 9(CP) 비율로 나누어왔다. 그런데 돌연 SKT가 “CP로부터 콘텐츠 판매권을 사들인 뒤 직접 서비스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SKT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콘텐츠를 게임 음악 채팅 등 10여개 장르로 구분한다. 장르별로 20~25개의 주요 CP를 선정한 뒤 그들이 제작한 콘텐츠의 ‘판매권’을 3개월 단위로 사들인다. 수익 배분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1대 9로 한다. 독점 판매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같은 콘텐츠를 다른 이동통신사나 포털을 통해 서비스해도 문제 될 것 없다.’

그렇다면 김사장은 왜 이러한 SKT의 계획을 자기 사업은 물론 CP업계 전체에 위협을 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또 업계에 “SKT가 드디어 노골적인 ‘줄 세우기’를 시작했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도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문제시되는 것은 SKT가 장르별로 몇몇 업체를 ‘선정’한다는 점이다. 김사장이 ‘간택’이라는 용어를 쓴 것도 그 때문이다.



“기존에는 일정 수준만 넘으면 어떤 CP의 콘텐츠든 다 서비스가 가능했다. 물론 SKT측이 중간중간 실적을 보아 뺄 것은 빼고 띄울 것은 띄워줬지만 일단 고객들과 만날 수는 있었던 거다. 그런데 특정 CP만 골라 그 콘텐츠만 서비스한다면 선택되지 않은 업체들은 아예 스타팅라인에 서볼 수조차 없지 않은가.”

SKT 방침대로면 큰 업체만 살아남을 듯

“SKT 때문에” 콘텐츠업계 죽을 맛

모바일 전략 시뮬레이션 ‘모바일 삼국지’(아래 왼쪽)와 모바일 게임 ‘메탈리온’.

현재 SKT가 콘텐츠를 ‘소싱’하고 있는 CP는 500여개에 이른다. SKT의 새 정책이 시행되면 그 중 상당수가 주요 판매 루트를 잃는다. 또 다른 CP 사장인 최모씨는 “좋은 제품만 취급하겠다는 SKT의 방침을 존중하나 선정 기준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실 게임 등 특수 장르가 아닌 다음에야 CP별 수준 차란 크지 않다. 요컨대 1~100등 중 5등이 1등 되고 20등이 10등 되는 건 별 티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콘텐츠 제작은 대표적인 벤처 아이템이다. 자본력이나 마케팅 능력보다 아이디어가 중요한 분야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이게 벤처산업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SKT는 콘텐츠의 질뿐 아니라 기존 실적, 회사 규모, 안정성, 재무구조까지 따져 업체를 선정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규모가 큰 CP 외에는 살아남기가 힘들어진다”고 우려했다.

한 통신업계 인사는 “SKT의 뜻은 분명하다. 업계를 수직 계열화하려는 것이다. 밑으로 꿰차고 마음대로 요리하겠다는 의지다. KTF나 LG텔레콤(이하 LGT)도 같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다만 여건이 안 돼 못할 뿐이다. 어쨌든 그렇게 되면 CP들은 SKT의 하청업체 내지 용역업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SKT 때문에” 콘텐츠업계 죽을 맛

SK텔레콤의 독주에 KTF와 LG텔레콤의 속앓이는 깊어만 간다. KTF 무선 인터넷 ‘Fimm’ 광고.

이에 대해 SKT는 “결코 그렇지 않다. 새 방식은 윈-윈 전략”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SKT 관계자는 “콘텐츠 부문의 융·복합화가 점점 중시되고 있다. 게임과 채팅을 한데 묶어 판다든가 배경화면과 벨소리를 짝짓는 등의 복합서비스 개발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CP마다 제각각의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식으로는 무선인터넷 시장을 활성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CP업계에도 SKT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견 CP업체 박모 사장은 “콘텐츠의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SKT가 선구매를 해주는 셈이니 기획·제작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각기 다른 CP가 제작한 콘텐츠들을 SKT가 임의 조합해 고도의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매출이 상승할 가능성도 높다. 회사를 미리 거르는 것 또한 우수 콘텐츠 제작을 위해서는 선투자가 필수적임을 생각할 때 합리적이다. 무엇보다 CP업계는 지금 선택과 집중을 위한 M&A가 절실한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라 할 수는 없다.

CP업계 최모 사장은 “콘텐츠 융·복합화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SKT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가운데 SKT 무선망의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쪽으로만 진행될까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야 장르별로 20~25개를 선정한다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각기 5, 6개 정도씩만 남게 될 거다. 그런 몇몇 대형업체가 이동통신 시장의 ‘맹주’인 SKT와 손잡고 서로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용료 배분율도 변화 올까 ‘전전긍긍’

“SKT 때문에” 콘텐츠업계 죽을 맛

노키아의 무선 인터넷 기기 ‘N게이지’(아래)와 SK텔레콤 네이트의 ‘뮤직상영관’ 서비스.

SKT 관계자도 “CP가 꼭 우리보다 힘이 약한 게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며 “예를 들어 벨소리 다운로드의 경우 솔직히 한 개 업체만 있어도 문제 될 것 없다. 그런데 업계에서 난리를 치고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 등 여기저기서 압력이 들어와 할 수 없이 수십 개를 끌고 가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길게 보아 결국 가장 우려되는 점은 콘텐츠 산업의 국제경쟁력 저하다. 중견 CP업체의 또 다른 박모 사장은 “이런 식으로 가면 의욕이 생길 리 없다. 몇몇 대형업체가 시장을 지배한다면, 또 자기 브랜드를 키울 기회조차 찾기 어렵다면 세계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시도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겠는가. 국내 경쟁력은 있겠으나 글로벌 경쟁력은 저하되고 산업구조도 왜곡되는 불행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CP업계의 또 다른 걱정거리는 1(SKT)대 9(CP)로 고정돼 있는 정보이용료 배분율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MM02 같은 유럽 거대 이동통신사의 경우 4(MM02)대 6(CP) 또는 5대 5의 비율로 CP와 수익을 나누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정통부가 콘텐츠 사업 육성 차원에서 1대 9의 비율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4대 6, 5대 5, 3대 7 등 다양한 배분율이 존재했다. 그러니 SKT의 독점적 지위가 강화될 경우 SKT가 더 높은 수익 배분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SKT의 ‘낙점’을 받아 최근 개최된 SKT-CP 간 간담회에 다녀온 한 CP업체 사장은 “일단 한시름 놨지만 산 너머 산이다. 간담회 참석사들은 그나마 SKT로부터 ‘능력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인데도 표정들이 영 밝지 않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KTF, LGT 등 타 이동통신사의 속내도 편치 않다. 모 이동통신사 임원은 “지금은 SKT가 ‘같은 아이템을 다른 이동통신사를 통해 서비스해도 좋다’고 하고 있지만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첫 1~2개월은 SKT에만 서비스를 하게 한다든가 하는 방법이 동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또 “SKT가 새 소싱 방식을 제안한 근본 원인은 주 사업 영역을 포화상태인 음성서비스에서 무선인터넷 쪽으로 옮기려는 것”이라며 “CP는 제작만 하고 SKT가 배급을 맡는 형태가 되면 그 부분만 떼어내 별도 법인으로 분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갖가지 주장과 우려가 난무하는 업계 대표체인 무선인터넷협회(KIBA)는 회원사 여론 수렴 및 SKT와의 협상에 나서고 있다. 1월19일 회장단이 SKT를 방문하기도 했다. 문정국 KIBA 공동회장은 “아직 뭐라 말할 단계가 아니다. 회원사 간 통일된 의견도 나오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는 KIBA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은 눈치다. 누가 ‘갑’인지가 너무 분명하다는 것이다. CP업계 정모 사장은 “KIBA는 협상력이 없다. 그나마 단체를 주도하는 회사들은 ‘메이저’가 될 가능성이 큰 업체들이다. 작은 업체들이 힘을 모아 정통부가 직접 나서도록 여론을 환기하는 수밖에 길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간동아 424호 (p36~37)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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