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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파키스탄발 핵 불똥 한반도로 튈까

국제 핵 암거래 들통으로 미국 타깃 될 처지 … 생존카드로 북한에 덤터기 씌울 수도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파키스탄발 핵 불똥 한반도로 튈까

파키스탄발 핵 불똥 한반도로 튈까

이란 테헤란 근교의 도샨 타펜 공군기지 남쪽에 있는 군수품 저장 건물을 찍은 위성사진. 미국 언론은 이곳에 원심분리기가 있다고 보도했다.

2월4일 파키스탄의 PTV 방송은 고농축 우라늄 관련 장비와 기술을 제3세계로 확산시켜온 혐의를 받은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기자회견을 방영했다.

마이크 앞에 선 칸 박사는 “파키스탄 정부 요인들은 우리 연구소에서 핵 유출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했다. 나는 그 증거들을 전혀 부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칸 박사는 그 말로써 핵 유출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는 “파키스탄 정부나 관리의 용인 하에 유출이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핵 유출은 파키스탄 정부와 무관하게 연구소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이끌어온 연구소가 핵 관련 장비와 기술을 유출함으로써 ‘조국’ 파키스탄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게 된 데 대해 거듭해서 사죄한 칸 박사는 “그러나 나는 평생 동안 파키스탄의 안보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강조한 뒤, “앞으로 이러한 유출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더 이상 이 사건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말고 또 정치 쟁점화하지 말아달라”는 말로 사면을 요청했다.

칸 박사의 기자회견 의도는 명확했다. 핵 개발을 성공시켜 ‘숙적’인 인도의 위협에서 조국을 지켜낸 자신의 업적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적으로는 사면을 받고, 국가적으로는 파키스탄 민족주의를 일으켜 자신과 파키스탄을 향해 쏟아지는 국제적인 비난을 막아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는 “알라여, 파키스탄의 안전과 안보를 지켜주소서!”라는 말로 연설을 마쳐 파키스탄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려고 했다.

파키스탄의 핵 유출 시비는 지난해 12월19일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JANA통신을 통해 “WMD(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는 일은 지구상에 대중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녹색 지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로 WMD 포기를 선언함으로써 촉발됐다. 이날 리비아는 압델 라흐만 샬캄 리비아 외무장관을 통해 ‘핵과 화학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사거리 300km 이상의 미사일은 보유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리비아 정부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WMD 포기를 공식화했다.



리비아 사찰 때 파키스탄 연루 드러나

그 직후 리비아를 방문한 유엔과 미국·영국의 과학자들은 리비아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가며 WMD 관련 시설을 사찰했는데, 여기서 의미 있는 ‘고구마 뿌리’가 포착되었다. 리비아가 갖고 있던 원심분리기 설계도 등 주요 설계도와 장비의 출처가 파키스탄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키스탄이 구축해온 ‘국제 핵 암거래’라고 하는 고구마 뿌리가 줄줄이 뽑혀나온 것이다. 파키스탄에서는 칸 박사가 기소되는 위기에 빠졌고, 이어 파키스탄과 이란이 관계된 핵 커넥션이 국제 문제로 떠올랐다.

이란은 최근의 전쟁을 통해 미국 영향권에 들어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자 친미국가인 터키, 그리고 아프간 전쟁 직전 친미국가로 돌아선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친미국가로 둘러싸인 셈이다. 또 이란은 카스피해 부근에서 생산된 원유를 해상으로 뽑아낼 때 송유관이 지나갈 수밖에 없는 나라다.

미국이 석유 확보를 안보에 직결된 사항으로 여기는지라, 오래 전부터 관계자들은 미국의 다음 타깃은 이란이 될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미국이 세계 2위의 산유국인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내건 명분이 이라크의 WMD 보유였던 만큼 미국은 유사한 명분을 내걸고 아프간과 이라크에 포진해 있는 군사력을 동원해 이란을 침공해 들어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리비아의 항복과 파키스탄의 노선 변경으로 이미 ‘산통이 깨진’ 만큼 이란은 미국이 아닌 유엔의 사찰단을 수용했다. 그런데 2월19일 AP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유엔 사찰단이 테헤란 근처에 있는 이란 공군기지인 ‘도샨 타펜’에서 이란 정부가 신고하지 않은 원심분리기 설비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인 5대 핵보유국은 군사목적으로 핵을 보유할 수 있도록 공인된 나라다. 나머지 국가는 상업목적으로만 핵을 보유할 수가 있는데 이러한 민간용 핵은 국제기구의 사찰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도샨 타펜 공군기지에서 원심분리기가 발견됐다면 이는 ‘이란이 군사목적으로 핵개발을 해온 것’으로 이해될 수 있고, 이는 미국의 침공을 불러오는 사유가 될 수 있다. 이란에 대해 적대적인 미국 언론은 일제히 미국의 상업정찰위성이 2003년 8월11일 찍어놓은 도샨 타펜 공군기지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이 상업정찰위성은 최고 60cm 해상도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KH-12라는 미국의 군사정찰위성은 10cm 해상도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미국은 오래 전에 상업정찰위성이 찍은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나(미국)는 수년 전부터 네(이란)가 한 일을 다 알고 있다’는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 언론의 보도에 대해 이란 외무부의 하미드 레자 아세피 대변인은 “그 보도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공식 반박했다.

국제 핵 밀매의 진원지인 파키스탄은 파키스탄대로 정신이 없다. 국내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국민적인 존경을 받으며 애국적인 연구를 해온 칸 박사를 투옥하긴 힘들다. 그러나 국제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탄을 벗어나야 한다. 국내적인 시각으로 대처하면 국제적으로 비난과 함께 고립을 자초하고, 국제적인 시각으로 대처하면 국내가 들끓는 ‘진퇴양난’에 처한 것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숙적 인도와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이 위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종교 문제로 나라가 나뉜 뒤 카슈미르 지역 영유권을 놓고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고 이러한 적대감 때문에 상호 핵개발까지 해왔다. 따라서 두 나라 사이의 화해는 남·북한보다 힘든데, 핵 암거래가 드러남으로써 위기에 처한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카슈미르 분쟁을 종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문제의 캬슈미르 지역에서 인·파 외무차관 회담을 열고 평화협상 로드맵 합의를 발표했다.

흔히 ‘정치는 생물(生物)이다’고 말하듯 ‘국제정치도 생물’이다. 파키스탄과 이란이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과정에서 숨죽인 듯 엎드려 있는 북한이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서 노동미사일 등 무기 수출을 담당하는 곳은 제2경제위원회다. 파키스탄이 핵실험에 성공한 시점은 1998년 5월29일인데 그로부터 9일 후인 6월7일 경제참사관이란 위장 타이틀로 파키스탄 주재 북한 대사관에 근무하던 제2경제위원회 소속원 강태윤이 그의 집 앞에서 무장괴한의 저격을 받아, 그는 간신히 살고 아내인 김신애가 절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핵실험을 한 시기에 외교관이 총격을 당해 그의 아내가 숨진 일은 큰 사건이므로, 파키스탄 공안기관은 전력을 다해 수사했으나 범인 검거에 실패했다.

강태윤은 북한제 노동미사일을 제공해 파키스탄이 가우리미사일을 생산하는 데 깊이 관여해왔는데, 가우리미사일은 1차적으로 인도를 겨냥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대다수의 관계자들은 인도 정부가 보낸 저격수들이 강태윤을 노렸다 실패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로부터 4년 반이 지난 2002년 12월29일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은 “그 사건 후 북한은 김신애의 시신이 들어간 관에 원심분리기 설계도를 함께 넣어 북한으로 가져갔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의 이 보도가 사실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파키스탄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북한을 ‘버리는 카드’로 사용한다면, 세계 위기는 중동에서 한반도로 갑자기 옮겨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이에 따른 대책을 세우지 않고 넋놓고 있다간 우리가 위기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주간동아 424호 (p30~31)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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