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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최병렬 동파사고

“난 네가 대선 때 한 일을 알고 있다”

수감 김영일 의원 입에 정치권 촉각 … 자금 유용 의원들 잠 못 이루는 밤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난 네가 대선 때 한 일을 알고 있다”

“난 네가 대선 때 한 일을 알고 있다”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2월20일, 자민련 이인제 의원이 한나라당에서 2억5000만원을 받았다는 ‘검찰발 보도’가 나오자 정치권의 관심은 ‘누구 입에서 흘러나왔느냐’는 쪽으로 모아졌다. 진원지를 파악하기 위해 정치권 안테나가 움직였고, 어렵지 않게 한나라당 김영일 의원의 ‘입’이 포착됐다. 이의원 문제와 관련해 최근 검찰에 소환됐던 이병기씨는 조사를 받고 나와 “김영일 전 총장이 이미 다 불었더구만”이라고 말해 이런 추측을 뒷받침했다.

김의원은 대선 당시 선거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직과 선거대책본부장직을 동시에 맡은 중진. 한마디로 선거자금의 ‘입구와 출구’를 모두 꿰고 있는 인물이다. 이의원 매수설은 두 가지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김의원이 출구에 대해 검찰에 상당한 진술을 했고, 이를 토대로 검찰이 행동에 나섰다는 점이다.

“불법 대선자금 조사 ‘개인 유용’ 파렴치 범죄로 종결될 것”

차떼기에서 이적료로, 또다시 의원 매수로 어지럽게 이어졌던 불법 대선자금의 동선은 결국 ‘개인 유용’이란 파렴치 범죄로 피날레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출구조사’다. 대검 한 관계자는 “아마도 대선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기점으로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을 보는 검찰의 시각은 사기꾼 아니면 파렴치범 수준이다.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지난해 “정치자금으로 해외에 빌딩을 사도 됩니까”라는 말로 정치인들의 ‘치부’를 확인해주기도 했다. 최근에도 안부장은 출입기자들이 “자금을 유용한 정치인들이 있느냐”는 질문에 묘한 여운을 남기는 어법으로 이를 간접 시인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2월 말까지 불법 자금의 모금과 유용 등에 관여한 여야 정치인 4~5명을 포함한 비리 정치인 10여명을 소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일부 인사들의 경우 소환이 곧 구속으로 이어질 정도로 구체적 내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도 검찰의 이런 움직임에 민감하다. 당 지도부 한 관계자는 “최병렬 대표 퇴진 문제로 정신없는 상황이지만 의원 개개인마다 출구조사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몇몇 의원은 불출마 선언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출구조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생각보다 정교한 것으로 보인다”며 “경우에 따라 차떼기를 능가하는 후폭풍을 동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검찰의 출구조사와 관련해 가이드역을 맡은 인물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구속된 당지도부 인사들이다. 김영일 최돈웅 의원과 서정우 변호사, 이재현 전 재정국장 등이 대선자금 입구와 출구의 상당 부분을 진술했다는 것. 이 가운데 일부 인사들은 검찰과 협의하에 ‘플리바겐’(수사협조 대가로 형량을 감해주는 것)을 시도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검찰이 가장 무게를 두는 인물은 김의원이다. 당 주변에서 “김의원이 입을 열 경우 다칠 사람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 것은 1월 중순, 그가 구속된 직후였다. 한나라당 한 중진은 “김의원을 오랫동안 지켜봤지만 말을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다”고 신뢰를 보였다. 그러나 SK 비자금과 관련해 먼저 검찰의 손을 탄 최의원이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본 당 인사들은 “김의원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의원은 당내에서 모든 길을 잇는 ‘로마’로 통한다. 국민적 공분을 산 철새정치인 입당에 따른 이적료에서 이인제 의원 매수 자금지원 의혹 등과 관련한 ‘팩트’ 공개가 그의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공포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의원은 2월 초, 구치소를 찾은 측근에게 “정도를 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들어가기 전까지는 죽을 것 같았는데 막상 들어와보니 사는 수가 있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의원측은 “당을 위해 한 일로 책임질 일은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자주 보였다. 개인적으로 치부한 것이 없는 만큼 당인으로서, 지도부로서 책임과 역할을 수행할 것이란 자신감도 내비쳤다고 한다. 그러나 양지에서만 살아온 그의 전력이 급변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없지 않았다.

서변호사의 경우 검찰과 벌이는 일대일 전투에서 밀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변호사는 “아직도 이회창 전 총재를 존경한다”며 소신과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 출구조사와 관련해서도 검찰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검찰이 모든 시나리오을 짜서 들이대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식이라는 것.

“난 네가 대선 때 한 일을 알고 있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으로부터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자민련 이인제 의원(위).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김영일 의원.

최의원은 구속을 전후해 계속 당과 신경전을 벌였다. 최의원측이 “당이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고 주장한 데 대해 당지도부는 “대선 때 문제는 구주류 책임”이라는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했다. 그러나 당지도부는 1월 초부터 이런 입장을 거둬들이고 최의원 변호에 적극 나섰다. 최의원이 “더 이상 당에 기대할 게 없다”며 중대결단설을 흘렸기 때문. 그러나 당 한 관계자는 “이미 이때 최의원은 검찰에 모든 것을 올인했다”고 판단한다. 최의원은 당시 측근들에게 “잘못하면 수백억원대의 추징금을 맞을지 모른다”며 고민의 일단을 내보이다가 올인했다는 게 정설이다.

결국 한나라당을 덮친 불법 대선자금 회오리는 여기서 출발했다는 것. 김의원이 검찰 소환 직후부터 코너에 몰려 페이스를 잃은 것도 최의원 작품이라는 게 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지도부와 이 전 총재측은 이런 흐름에 부담이 컸던 것 같다.

이 전 총재는 2월19일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김, 최의원을 면회했다. 김의원은 이 자리에서 이 전 총재에게 “총재님, 대선 때 최의원이 기업으로부터 돈을 거두고 있다는 말이 나돌아 제가 보고를 드린 적이 있지요”라는 묘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이 전 총재는 “그때 그런 적이 있었지요. 그래서 내가 최의원을 불러 심하게 야단쳤지요”라고 답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앞서 최의원은 검찰 수사 과정에 “모든 것은 김의원의 지시를 따랐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전 총재의 한 측근은 “검찰수사가 장기화되면서 서로 불신감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며 측근 그룹의 분열과 책임 떠넘기기를 우려했다. 이 전 총재의 옥인동 자택을 지키고 있던 한 인사는 “구치소에 있는 당 인사들이 자기만 살겠다는 모습을 보인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전 총재 측근들은 이 전 총재가 면회에 나선 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측근들에 대한 격려 차원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당 주변에서는 출구조사 등과 관련해 당 관계자들을 안정시키려는 의도도 없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2월 초부터 출구조사에 대한 얘기가 많아졌다. 검찰의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 10여명에는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중진 및 거물 인사들의 이름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안중수부장이 얘기한 부동산 매입 등과 관련한 얘기도 갈수록 무게가 더해진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타깃이 된 자신의 처지를 확인하고 맹렬하게 구명에 나선 인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안팎에선 끝나지 않은 삼재(三災)에 대해 불평하는 목소리가 많다. 검찰의 편파성을 문제 삼는 발언도 있지만 “결국 빌미를 제공한 것은 우리”라는 자책도 적지 않다. 당 관계자들이 겁을 내는 것은 출구조사가 내놓을 파괴력이다. 당선이 유력했던 이적 의원 3~4명이 이적료 문제로 공천대상에서 제외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또 이인제 의원의 경우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정치생명이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적 의원과 이인제 의원 등 당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인사들 문제만 터졌지만 이제부터는 한나라당 적자들 얘기도 터져나올 것”이라며 출구조사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냈다.

이 과정에 이 전 총재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인제 의원에게 돈을 전달한 이병기 전 특보는 당의 공식직책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이 전 총재의 사조직 사람이고 그는 이 전 총재의 지시 없이 움직이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나라당의 공식자금이 사조직의 일원에 의해 사용됐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경우에 따라 불법 대선자금이 사적으로 흘러 들어갔을 개연성을 암시한다. “나는 지난 대선 때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대검청사에서 터져나오는 이 한마디가 재창당 작업에 나선 한나라당과 정치권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 이래저래 한나라당의 삼재는 끝나지 않았다.



주간동아 424호 (p16~18)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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