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3

..

홍대문화 살리고 생존권 지키고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02-20 13:5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홍대문화 살리고 생존권 지키고

    2월9일 홍대 앞 실험극장 ‘씨어터제로’에서 열린 ‘홍대앞 문화예술 조합’ 결성식. 조합장으로 선임된 조윤석씨가 홍대 앞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맨 왼쪽 큰 사진).1998년 문을 열었으나 급격한 임대료 인상으로 폐관 위기에 처한 ‘씨어터제로’를 살리자는 뜻으로 퍼포먼스와 마임, 라이브 공연 등이 열렸다.

    “왜 예술연대나 문화인연합이 아니라 ‘조합’이냐고요? 이게 생계 문제거든요.”

    2월9일 결성된 ‘홍대앞 문화예술조합’(홍합)의 ‘장’으로 선임된 조윤석씨(29)는 예술인들의 형이상학적인 사상이나 주장 때문이 아니라 홍익대를 중심으로 한 신촌 지역에서 세 들어 살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존권 차원에서 ‘조합’을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홍익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조씨는 트로트와 록을 섞은 ‘뽕꾸락’을 창조한 ‘황신혜 밴드’의 멤버를 거쳐 음악전문지 MDM을 창간하고 (경제적 이유로) 폐간한 경력이 있으며 가장 최근까지는 홍대 앞 희망시장(아트벼룩시장)을 운영하고 근처 빨래방에서 배달을 하며 ‘즐겁게’ 살아왔다.

    또한 그는 2002년 마포구 구의원에 출마해 19.5% 득표를 한 현실참여형 예술가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들을 들어 그는 자칭 ‘홍대 원주민’이다. 그는 홍대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살고 있는 예술인들의 정체성을 ‘홍대 원주민’이라고 칭한다.



    “세어보니까, 이 동네에서 제가 밥을 얻어먹을 만한 식당이 28개 남짓이더군요. 이 정도면 여기서 아르바이트하고, 하고 싶은 일하며 살 수 있거든요. 근데 동네 땅값이 폭등하니까 부동산업자들이 자꾸 집주인들을 부추겨요. 작은 빨래방이나 갤러리 같은 건 헐고 빌딩을 지으라는 거지요.”

    가수 신해철·강산에도 참여

    홍대 앞은 미술인과 음악인들, 팬과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친구들이 모여 테크노클럽과 라이브클럽, 작은 대안공간 등을 어렵게 꾸려오면서 한국적인 언더그라운드와 인디 문화가 발생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도 상업화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난해 서울시가 문화지구 지정을 검토하고 마포구청에서 타당성 용역을 발주한 뒤 임대료와 땅값이 폭등하면서 상업성 없는 예술가들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조씨는 “음악이나 미술이야 다른 곳에 가서도 할 수 있지만, 당장 살 곳이 없다는 게 문제다. 철거민들과 똑같다”고 말한다.

    ‘홍합’ 결성식이 열린 우리나라 유일의 실험극장 ‘씨어터제로’(대표 심철종)에 200명이 넘는 ‘홍대 원주민’들이 모여든 이유도 이 같은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1998년 홍대 앞에 문을 연 뒤 3000여 회의 실험적 연극과 퍼포먼스가 공연된 ‘씨어터제로’ 역시 임대료 인상과 재건축 예정 등으로 인해 폐관 위기에 처했다. 이날 행사와 공연 등은 일차적으로 ‘씨어터제로’ 살리기라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결성식에 참석한 홍대 앞의 테크노클럽 DJ들, 뮤지션들, 대안공간에서 활동하는 미술인들, 연극인들, 출판인 등은 사실상 매우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이 동네가 상업화할수록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클럽과 바의 운영자들이 있는가 하면, 피해만 느는 전시기획자들도 있다. 따라서 ‘홍합’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는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명 넘는 홍대 원주민들이 뜻을 같이한 것은 한국적 언더와 인디 정신이 이 지역의 진정한 상업적 가치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 활동한 ‘황신혜 밴드’ ‘크라잉넛’ ‘언니네 이발관’등은 외국의 메인스트림을 한국적 록과 펑크로 해석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한국 미술계를 향해 세계 평론가들의 시선이 처음 모인 것도 미술관이 아니라 이곳 대안공간 출신 작가들에게였다. 방송에 목숨 건 주류 음악계, 홍익대 미대에서 발원한 미니멀리즘에 대한 시비걸기와 반항의 정신이 바로 홍대 문화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떠난다면, 이 지역은 곧바로 인사동과 대학로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문화는 죽고, 싸구려 중국 상품들과 저질 공연물만 남은 행정편의의 문화 거리가 오늘날 인사동과 대학로다.

    ‘홍합’에는 신해철, 강산에 같은 가수들도 참여하고 있으며, 서울시와 구청 등을 상대로 문화지구 정책 및 운영안 수립에 이 지역 예술인들의 제도적 참여 등을 요구하고 있다. 조합장 조씨는 “3월 심포지엄에 다소 소극적이고 애매했던 홍대 예술인들을 끌어내 이 지역 문화의 정체성을 일반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호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광장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