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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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군 때 놀고먹은 것 다 알아”

민주당 ‘兵風’ 공세 부시 전전긍긍 해명 … 베트남 참전 케리와 극명한 대비

  • 워싱턴=이흥환/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입력2004-02-19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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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악관 대변인이라는 자리, 대통령 자리 못지않게 ‘못 해먹을’ 자리다. 2월10일 백악관 대변인 스콧 매클러런이 경을 쳤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매클러런의 주군인 부시 대통령의 주 방위군 병력 문제를 물고 늘어지면서 40여분이 넘도록 매클러런의 주리를 튼 것이다. 이날 매클러런은 마이크로필름을 복사한 부시의 방위군 봉급 명세표를 내놓고 방어전을 폈으나 역부족이었다. 봉급 명세표로 방어전을 무사히 치를 것으로 생각하고 나온 것 같지도 않았다.

    “이 기록을 보면 근무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매클러런이 40분 내내 한 말이라고는 이 한마디뿐이었다.

    -오늘 공개한 기록이나 다른 기록을 보면 1972년 12월, 73년 2월과 3월에 대통령은 방위군에서 근무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때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는가?

    “이 기록을 보면 근무했다는 것이 증명된다.”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니다.

    “이 봉급 명세표를 보면….”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니라는 점을 알지 않느냐. 1972년 12월에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는가? 현역 비행 근무를 위한 진료 기록은 왜 없는가?

    “이 기록을 보면 그는 근무했다.”

    대통령이 텍사스 공군기지에서 잠시 떠나 앨러배마 기지에 가 있었다고 하는데, 앨러배마에서 같이 근무했던 600~700명이나 되는 사람들 중에 왜 대통령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느냐는 질문도 되풀이됐다. 매클러런의 대답은 “근무했다”일 뿐이었다.

    당시 지휘관 “부대에 나타나지 않아”

    공군 방위군 소위였던 부시의 근무평가표도 다시 거론됐다. 1972년 5월1일부터 73년 4월30일까지 근무한 기록이다. 당시 부시의 지휘관이었던 킬리언 중령과 해리스 중령이 작성한 것이었다. 이 평가표에는 부시가 ‘부대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그러니 사실상 평가 자체가 없다. 매클러런의 대답. “그는 근무했다.” 매클러런은 그 평가표를 본 적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안 했어도 될 괜한 말이었다.

    이 평가표는 부시가 처음 대선에 나섰을 때인 2000년 5월에 공개된 것으로 ‘보스톤 글로브’의 월터 로빈슨 기자가 밝혀냈다. 대변인인 매클러런이 이 문서를 모른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매클러런은(이라크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한) CIA 국장으로 임명돼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부시 대통령의 공군 방위군 병력 문제는 그의 텍사스 주지사 시절과 2000년 대통령후보 때 이미 걸러진 사안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냥 넘어갈 뻔도 했다. 그러나 정치판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 적이 있던가?

    민주당이 먼저 딴죽을 걸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인 테리 매컬리프가 부시는 주 방위군 때 근무이탈(AWOL·Absent Without Leave)을 했다고 슬쩍 한마디를 던진 것이다.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나선 존 케리 상원의원이 베트남전 참전 용사라는 사실과 대비해 그만한 호재도 없었다.

    이번엔 언론이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NBC TV ‘언론과의 대화(Meet the Press)’ 인터뷰에 나온 부시에게 팀 러써가 방위군 시절의 모든 기록을 공개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고, 부시는 “물론이다”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 이틀 뒤 매악관 대변인 맥클러런이 부시의 봉급 명세표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인 리처드 코언은 매클러런 대변인의 ‘일인극’이 있던 날, ‘주 방위군이었던 사람이…’라는 제목의 짧은 칼럼을 하나 썼다.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말한 것처럼 베트남전 때 나는 ‘탈영병’이었다”로 시작되는 이 글은 부시와 같은 시기에 주 방위군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필자가 당시 주 방위군이 어떤 형태로 운영되었으며, 주 방위군에 간 사람들의 주된 입대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실감나게 밝힌 일종의 ‘군대 고백서’였다.

    코언이 말하고자 한 바는, 부시의 방위군 근무 여부나 근무 시기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방위군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부시가 진실을 감춘 채 정식으로 근무하고 명예롭게 제대했다고 억지를 부리는 게 보기에 딱하다는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이나 다른 젊은이들처럼 나도 주 방위군에 입대해 6개월간의 현역 근무(기본 훈련 등)를 마치고 고향 부대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는 부시 대통령과 똑같이 나도 명예 제대를 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내가 어떻게 방위군 근무를 했는지 솔직하게 말 했고, 그는 그러지 않았다.”

    놀고먹은 방위군이었다는 사실은 세상이 다 아는데, 솔직히 말할 내용은 말해야지 왜 정식으로 근무한 것처럼 억지를 부리십니까.‘제발 저를 웃기지 말아 주십시오(Please, sir, don’t make me laugh)’라는 것이다.

    당시 주 방위군 입대는 부잣집 청년들이 베트남전 징병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부시는 예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방위군에 들어갔다. 코언은 “부잣집 자식은 아니었지만, 베트남전을 반대했고 반대하는 전쟁에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방위군에 들어갔다”고 했다. 부시는 베트남전을 지지했다. 코언은 “그렇다면 방위군으로 갈 것이 아니라 전쟁에 갔어야 한다. 자기는 뒤에 남아 전쟁 지지만 하고 싸움은 남더러 하라는 말이냐”고 쏘아붙였다.

    무단이탈 질문에 “정치이니까”

    고향 부대에 배치된 방위군 대부분은 1주 1회 연습에 참가하고 하계 합숙훈련을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코언은 여기저기 이사 다니는 것으로 서류를 꾸며 그나마 연습에도 참가하지 않았으며, 그런데도 월급은 꼬박꼬박 받았다고 했다. “당시의 주 방위군이라는 부대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다. 알 사람은 다 안다.”

    당시 상황에서 부시만 예외일 리는 없다. 앨러배마 주 방위군 대변인 로버트 호튼 대령은 “그(부시)가 공식적으로 앨러배마 방위군에 소속된 적이 없으며, 그에게 봉급이 지불된 적도 없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민주당의 매컬리프가 말한 것처럼 무단이탈이다. 코언의 말에 따르자면 부시만 무단이탈한 것은 아니다.

    결국 문제는 부시의 봉급 명세서나 진료기록표가 아니다. 언론이 원하는 것은 부시의 ‘고백’이다. 어디에서 뭘 하고 놀았느냐는, 부시로서는 결코 입에 담을 수 없는 ‘코언식 고백’이자 ‘코언식 반성’이다. 한마디로 솔직하라는 것인데, 실현 불가능한 요구다. 정치판에서 정치인에게 진실을 요구하다니.

    더구나 대통령 선거전의 출사표를 써야 할 현역 대통령에게 그런 고백을 하라는 얘기는 재선에 나서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부시의 상대는 무공훈장을 목에 주렁주렁 걸고 살아 돌아온 존 케리로 굳어져가는 판국이다. 징집을 피해 ‘월급 받아가며 놀고먹지 않았느냐’는 소리를 듣는 방위군 출신과 ‘목숨 걸고 싸우다 돌아온’ 참전 용사의 극명한 대비는 부시로서 어떻게든 피해가야 한다.

    방위군 병역 문제로 부시는 선거를 치를 올해 벌써 두 번째 덫에 걸렸다. 첫 번째 덫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새해 국정연설이었고, 정치색 짙었던 국정연설의 후폭풍에 공화당은 큰 화상을 입었다. 자가당착이었다.

    두 번째 덫도 스스로 놓은 것이었다. 애초에 NBC의 팀 러써와 대면하겠다는 발상이 무리치고 큰 무리수였다. 인터뷰 초반부터 부시가 철저한 준비가 없었다는 점은 누가 봐도 확연히 드러났다. 병역 문제뿐이 아니었다. 이라크전 명분에 대한 해명도 재탕 삼탕이었다. 인터뷰를 자청한 부시가 인터뷰를 활용한 흔적 역시 보이지 않았다.

    보수 논객 로버트 노박은 “민주당에서는 오히려 팀 러써가 부시에게 도망갈 길을 터주었다고 비판했지만, 사실상 대통령 집무실에서 그런 험악한 질문을 받은 대통령은 부시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했다.

    팀 러써가 백악관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당신더러 ‘근무 이탈’이라고 비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부시의 대답은 “정치이니까”였다. 부시에게서 방위군 시절의 ‘진실’을 듣기는 쉽지 않게 됐다. 정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 것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며 덤벼드는 언론까지 가세한 정치의 후반은 태반이 지루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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