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3

2004.02.26

쉬쉬하려다 펑~ 펑 ‘숨죽인 삼성’

벗겨지는 불법 대선자금 따가운 눈총 … 그룹 고위관계자 처벌 수위에 촉각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2-19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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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쉬하려다 펑~ 펑 ‘숨죽인 삼성’

    1월19일 전경련 회장단의 일원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오찬을 하고 있는 이건희 삼성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삼성 이건희 회장은 2월5일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회장의 불참은 누가 봐도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1월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오찬에서 이회장이 구본무 LG 회장에게 “앞으로 전경련 회의에 자주 참석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정작 당사자인 이회장이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재계에서는 “삼성에 뭔가 이상 징후가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다. LG 관계자는 “삼성이 한나라당에 제공한 제공한 채권이 330억원대라는 검찰 수사 내용이 최근 알려진 이후에야 이회장의 전경련 회의 불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경련 회장단 회의 전에 검찰 수사 내용을 포착한 삼성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 아니었겠느냐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삼성의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기 시작한 시점은 1월 중순부터. 삼성 정보팀 관계자들이 평소보다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 관련 정보에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다른 그룹 정보팀 관계자들에게 “우리와 관련한 내용이라면 사소한 것도 좋으니 꼭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는 게 한 재벌그룹 정보팀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건희 회장은 칼날 피할 수 있나

    삼성은 한편으로 불법 대선자금 수사 ‘물줄기’를 돌리기 위해 물밑에서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전경련 회장단이 1월19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오찬 간담회를 한 것도 삼성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오갔다. 한 재벌그룹 관계자는 “당시 오찬 간담회에서 노대통령이 대선자금 수사 조기 종결에 관한 건의를 우회적으로 거부하자 삼성이 상당히 실망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삼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선자금 추가 제공 사실이 밝혀지면서 삼성그룹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이하 구조본) 부회장이나 김인주 구조본 사장 가운데 한 사람은 구속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 보고 있다. 노대통령이 “기업인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긴 했지만이건희 회장이 검찰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을지도 여전히 관심사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거액의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하는 등 한나라당측에 ‘올인’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 대한 ‘편법상속’ 논란의 조속한 매듭과 삼성생명 상장이 그것이다. 한 재계 인사는 “노무현 후보가 상속 증여세 포괄주의를 공약하는 등 삼성으로서는 껄끄러운 문제만 제기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회창 후보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이후보를 향한 ‘올인’은 삼성그룹만의 행태는 아니었다. 한 재벌그룹 정보팀 관계자는 “심지어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이후에도 ‘숨어 있는 보수표가 많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 인식이었다. 오히려 삼성그룹은 진보적 색채의 몇몇 정당에 소액이지만 ‘용돈’을 제공하기도 하는 등 그나마 나았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쉬쉬하려다 펑~ 펑 ‘숨죽인 삼성’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 당선 이후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한 곳 역시 삼성이었다. 구조본을 중심으로 새 정권 인사들과의 ‘끈 맺기’와 당선자측의 삼성에 대한 이미지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룹 내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노대통령의 부산 및 386 측근 그룹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고,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한 한 경제학자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동북아 경제전문가인 P연구원과 함께 일했다. 비공식 파견 근무였던 셈이다. 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동북아 프로젝트와 관련한 상당히 많은 양의 자료를 제공받았으며 토론도 자주 했다”고 밝혔다.

    참여정부와 밀착에도 성공

    한 발짝 더 나아가 인수위는 삼성경제연구소에 12대 국정 목표 설정 관련 프로젝트를 맡기려 했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민간에 정책 연구를 맡기는 열린 모습을 보여주자는 취지로 추진한 것이었다. 내가 직접 그쪽을 방문, 협의하고 연구계획서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초 정식 계약을 앞둔 시점에서 취소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삼성측의 연구보고서는 청와대에 고스란히 잘 전달됐다. 위의 비서관은 “(프로젝트를) 관두자고 했음에도 그쪽에서 ‘이왕 돈 들여 만든 걸 어떻게 하나, 참고나 하라’며 독자적으로 만든 안을 가져왔기에 받았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쯤 되자 경제계에서는 “새 정부 관료들이 삼성그룹을 사실상의 경제정책 파트너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참여정부와 삼성이 이처럼 ‘밀착 관계’를 유지하자 삼성은 한때 ‘음모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난해 초 검찰이 SK그룹 분식회계를 수사할 때가 그랬다. 한 시민단체 인사도 검찰의 SK 수사에 대해 “검찰이 당초 손대지 않겠다던 SK의 분식회계까지 수사하는 것을 보고 국민의 관심을 삼성과 관련이 깊은 ‘배임’에서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물타기’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들은 한마디로 난센스라는 반응이다. 검찰의 SK 수사 배경과 관련, 김각영 전 검찰총장도 사석에서 “대북송금 수사를 막았기 때문에 서울지검이 SK 수사를 하겠다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했다면 젊은 검사들이 들고 일어날 것 같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거나 이 같은 ‘삼성-검찰 유착설’은 ‘검찰독립’이라는 절대 명제 하에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검찰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 듯하다. 이는 검찰이 불법 대선자금은 물론 ‘편법상속’ 건에 대해서까지 삼성을 향한 공세를 늦추지 않는 배경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검찰이 삼성그룹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데는 삼성측의 수사 비협조도 한 원인이 됐다. 문효남 수사기획관은 “삼성 측 임원들이 처음 밝혀진 (채권) 112억원의 채권번호를 모른다고 잡아떼 사채 시장을 뒤지다 이번 건을 잡게 됐다”고 밝혔다.

    선대부터 사채업에 종사하다 얼마 전 은퇴한 김모 씨는 “이번엔 검찰이 정말 집요하게 덤볐다. 삼성과 거래가 거의 없던 나도 직·간접적으로 여러 얘기를 들었다. 업자들로서도 이전처럼 입 꾹 다물고 버티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제 삼성은 불법 대선자금 문제로 한동안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됐다. “더 큰 걱정은 삼성이 ‘대주주 개인 돈’이라 해명한 불법 대선자금 출처 조사에 검찰의 수사력이 집중되는 상황일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항간에 떠도는 ‘비자금 저수지’의 존재 유무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또한 “(자금 출처에 대해서) 더 조사해야 한다”는 말을 해, 조사 결과에 따라 사법처리 수위가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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