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1

2004.02.12

뭉치고 본다 왜? 동기이니까

폐쇄적 ‘동류의식’ 법조비리 근원 따가운 지적 … 대법원 정점 일원화 판사 사회 더 경직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4-02-06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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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치고 본다 왜? 동기이니까
    최근 계몽사 전 회장 홍승표씨에 대한 고소 사건 변호를 맡았던 C변호사는 씁스레한 경험을 했다. “C변호사가 홍씨에게서 수억원대의 수임료를 받았다”는 근거 없는 진정이 검찰에 접수돼 검찰 조사를 받는 등 이를 해명하느라 혼이 났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이를 진정한 김성래씨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긴 했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 않았다. 김씨는 횡령 혐의 등으로 지난해 말 구속된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 기업인 썬앤문㈜ 문병욱 회장의 사업 파트너였다가 문회장으로부터 농협 사기 대출 혐의로 고소당해 지난해 4월 구속됐던 인물.

    C변호사가 이런 ‘오해’를 받은 것은 법조계 내부에 사법연수원 동기를 중심으로 ‘동류의식’이 고착돼 있기 때문. 대개의 경우 “검찰이 내사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담당 검사와 가장 친한 변호사를 찾게 마련이고, 이 경우 일차로 떠오르는 후보군이 사법연수원 동기생들이다. 김씨측으로서는 법조계의 이런 문화를 잘 알기 때문에 홍씨가 자신의 구속을 막기 위해 수사 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생으로 평소 절친한 사이인 C변호사를 선임하면서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을 것으로 지레짐작했을 법하다.

    최근 법조계 내부에서 “연수원 13기 출신 변호사들이 잘나간다”는 얘기가 나도는 것도 이런 문화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 전담 판사인 최완주 강영주 부장판사가 모두 연수원 13기여서 영장 실질심사를 받아야 할 정치권 거물 인사들이 이들의 연수원 동기생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맡기고 있는 것. 최근 검찰의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및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정치권 거물 인사들에 대해 줄줄이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있다.

    승진 열쇠 쥔 대법원 눈치 … 재판도 판례 중심으로

    이런 동류의식은 때론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청주지검이 김도훈 전 검사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했을 때와 2002년 말 대검이 서울지검 피의자 구타 사망사건으로 홍경령 전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를 구속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김 전 검사와 홍 전 검사의 연수원 동기생들은 변호인단을 구성해 두 사람을 무료로 변론해주었다. 당시 법조계 일각에서는 “잘못을 저지른 동기생 검사를 영웅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법조계 내부의 이런 동류의식은 때론 폐쇄적 집단의식으로 흐르고 이는 법조비리의 근본원인이 돼왔다는 지적이 많다. 아직까지도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면 ‘유죄도 무죄로 만들 수 있다’는 잘못된 법의식을 국민 사이에 심어준 것도 법조계의 이런 폐쇄성과 무관치 않다. 좋은 변호사란 검찰 수사 단계에서는 수사 검사와 잘 아는 사람을 말하고, 검찰 기소 이후 재판 단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주심이나 재판장과 잘 아는 변호사를 뜻한다.

    법조계 가운데서도 폐쇄성이 가장 심하다는 지적을 받는 곳이 판사 사회다. 법원이 대법원을 정점으로 일원화돼 있다시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 특히 사법시험과 연수원 성적이 좋은 법관이 법원의 주류를 형성하고 이들은 재판도 대법원 판례 중심으로만 하는 등 ‘모험’을 싫어하기 때문에 법원은 엘리트 법관을 중심으로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는 것.

    뭉치고 본다 왜? 동기이니까

    2003년 8월18일 대법원 인사파동과 관련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사상 첫 전국 판사와의 대화 모습.

    판사들이 대법원을 의식하는 것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의 열쇠를 대법원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고등부장 승진에서 탈락하면 대개 옷을 벗는 게 관례였다. 고등부장 승진은 대법원장이 대략 틀을 정하고 대법관이 추인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대법관 가운데 한 명이라도 “저 사람은 안 돼”라고 말하면 승진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

    고등부장 승진에서 가장 유리한 판사는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 있는 판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 있는 판사들은 ‘진골’로 불린다. 법원행정처는 선임자가 후임자를 찍는 방식이다. 당연히 서울대 법대 출신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행정처에서 의견을 내면 이를 거부할 법원장은 드문 게 현실이다. 행정이 아니라 판결로 재판부가 움직여지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원 인사에 대한 문민통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법원이 법원 내부의 엘리트 집단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었던 것.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현재 검찰도 9명의 인사위원 가운데 5명이 외부인사인 데 반해 법원은 9명이 전부 대법관 및 법원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개선 역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법조인 양성제도 개혁 법원도 유연한 반응

    법원의 다양성을 위해 대법관에 엘리트 법관이 아닌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을 대변할 수 있는 법관이 임명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김용담 대법관 임명 제청 과정에서 보듯 대법원은 아직 이 부분에서만큼은 양보할 뜻이 없어 보인다. 당시 대법원은 현 사법체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재판 실무 능력이며 엘리트 법관 출신인 김용담씨를 대법관에 임명 제청해 뜻을 관철했다.

    현재 절대 다수 법관들의 정서도 대법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변호사를 역임하다 판사로 임명된 일부 법관들에 대한 엘리트 법관들의 의식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역임한 현직 부장판사는 “법관이란 기본적으로 원고와 피고의 주장 가운데 한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하는 ‘결정’인데, 이런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 가령 변호사 출신 판사들의 경우 이 결정을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관 임명도 중요하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들어 법조인 양성제도의 개혁을 통해 법관 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법조인 양성제도의 질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1995년 이후 사법시험 합격자 수만 늘린 결과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 부산대 법대 김창록 교수는 “합격자 수가 늘면서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합격자들의 서울 집중 현상이 더 심화됐다”면서 “이런 식으로 가다간 지방의 다양한 법률 수요에 대응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법연수원 교육에 대한 반성도 많이 제기돼왔다. “사법연수원에서의 교육이 법원 및 검찰 실무에 치우쳐 있어 국제화 전문화된 법조인을 양성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았던 것. 특히 이런 상황에서 잘못된 동류의식만 늘어 법조비리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법조계에서는 법관 사회의 다양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법조인 양성제도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 대안으로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게 바로 로스쿨 제도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인재를 로스쿨에서 법조인으로 양성한 후 이 가운데 일부를 판사로 임용하면 법관 사회의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것. 지난해 10월 발족한 사법개혁위원회에서도 법조인 양성제도를 개혁 과제의 하나로 설정, 현재 심도 있게 토론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진행 속도로 보면 올 10월 정도는 돼야 사법개혁위의 정리된 입장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러운 점은 법원이 이 점에 대해 과거와 달리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 법원행정처 사법제도연구관실 관계자는 “대법원 입장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사법개혁위에서 열린 자세로 논의해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 변호사는 “요즘에는 대법관들도 과거와 달리 로스쿨이나 배심제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배심제는 사법제도에 대한 문민통제를 위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왔다. 과연 이번에는 사법개혁위의 사법개혁 방안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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