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1

2004.02.12

‘태반주사’ 지나친 기대는 금물!

‘만성통증·피부미용 등에 좋다’ 입소문 타고 인기 … 건강하고 피부 좋은 사람은 맞아봤자 효과 없어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4-02-05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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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반주사’ 지나친 기대는 금물!
    아이가 태어났을 때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 버려지던 태반이 요즘 의학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태반에서 필요한 성분을 뽑아내 만든 태반제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한 것.

    국내에서 태반이 의약품으로 쓰이기 시작한 지는 불과 2~3년밖에 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반을 취급하는 병원이 드물었고, 태반치료 전문병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부터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태반치료 열풍은 삽시간에 서울을 휩쓸고 전국으로 번졌다. 최근 한두 달 사이 피부과, 성형외과, 내과 등을 중심으로 태반제품에 대한 주문이 쏟아지면서 수입 태반제품의 품귀 현상이 일어날 정도. 관련업계 종사자들은 “요즘에는 서울 병원뿐 아니라 지방 병원에서도 태반을 주문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태반 수입업체인 그린 트레이딩 김주희 대표는 “태반제제가 공식적으로 수입되면서 두세 달 사이 전국적으로 200여개 병원에서 태반을 이용한 치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단시일 안에 이렇게 많은 곳에서 태반을 쓰게 된 상황을 붐(boom)이라는 말로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갑작스런 태반 열풍의 이유를 세 가지 측면에서 찾고 있다. 우선 ‘사람의 장기를 질환 치료에 사용한다’는, 태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어느 정도 완화되면서 그 치료 효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점을 들 수 있다. 감염에 대한 공포 등이 사라지면서 태반의 효능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늘어난 것.

    제품 대부분 일본서 수입 ‘값비싸’

    또 그동안 주로 부유층에서만 쓰이던 태반제제에 대해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아진 점도 한 요인이다. 만성적인 통증이나 위염, 갱년기 증상 등에서 태반의 치료 효과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이 인터넷을 타고 번지면서 ‘기대하는 환자층’이 넓어졌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병원들이 진료영역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태반주사 치료를 활발히 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태반은 임신 중 모체의 자궁 내에 임시로 생기는 장기로서 영어로는 플라센타(Placenta)라고 한다. 판매가 허용돼 주사제로 쓰이는 태반제제는 태반을 120℃에서 20분간 네 번 이상 삶아내는 철저한 멸균과정과 바이러스 불활성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쓰이는 제품들은 모두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다.

    ‘태반주사’ 지나친 기대는 금물!
    그렇다면 태반이 실제로 인체 질환에 대해 치료 효과가 있는 것일까? 태반이 갖고 있는 특이한 치료 효과는 다양하지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세포성장인자 작용’과 ‘활성산소 제거작용’이 바로 그것. 세포성장인자란 수정란이 태아로 성장하는 10개월 동안 태아의 뇌, 심장, 간, 신경, 뼈, 피부 등 모든 장기들을 만들어내는 필수적인 요소다. 활성산소 제거작용은 체내의 염증이나 노폐물 등 유해물질을 없애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활성산소가 노화나 질병의 주범이라는 연구결과는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이런 작용 때문에 태반은 만성통증, 만성위염, 노화, 피부미용, 갱년기 증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게 되었고, 그 효과가 특정 과에만 편중되지 않아 개원의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는 것. 서울 청담동에서 개업 중인 성형외과 전문의 김모씨(42)는 “태반의 치료 효과가 점점 인정을 받으면서 이에 대한 환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부작용이 적고 시술이 비교적 간단하다는 점에서 제2의 보톡스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태반주사’ 지나친 기대는 금물!

    현재 통증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태반제제도 전문성이 확보되어야 제 효과를 낼 수 있다.

    태반제제는 값이 비싼 반면 큰 부작용 없이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주사제라는 점에서 종종 보톡스와 비교된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일부 강남 부유층이나 연예인들이 단체로 일본이나 유럽에 가서 태반주사를 맞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만 보톡스의 주 환자층이 30대 이상의 여성인 반면, 태반주사는 40대 이상의 남성과 20, 30대 젊은 여성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태반 열풍에 대해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또한 실제 태반에 대한 과도한 기대 때문에 치료를 받고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시술을 잘못 받아 문제가 생긴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건강하고 좋은 피부를 갖고 있던 회사원 이정순씨(24ㆍ여)는 평소 아는 언니가 태반주사를 맞고 피부가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그 병원을 찾았다. 진찰 결과 특별한 피부 트러블도 없고 피부상태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지만 더욱 좋은 피부를 갖고 싶어 태반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주 2회씩 치료를 받았음에도 이씨의 피부에는 별다른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결국 이씨는 수십만원의 주사비만 날린 셈. 병원측은 “피부가 좋은 사람에겐 태반주사가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일본에서 태반 관련 연구를 마치고 3년 전 국내에 태반전문병원을 개설한 레만클리닉 한상욱 원장(대한태반의료연구회 이사)은 “태반치료의 핵심 원리는 몸을 정상에 가장 가까운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몸의 기능을 정상에 가장 가깝게 만들어줄 뿐 본래보다 더 낫게 업그레이드시켜 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태반 전문가들은 이렇듯 태반 효과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또 태반주사는 단순 주사제가 아니기 때문에 환자의 특성과 질병 정도에 따라 맞춤 치료를 해야 하는 전문영역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태반주사는 의사의 숙련도와 주사 사용 방법, 용량 등에 따라 가벼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태반주사를 맞고 식욕이 좋아져 살이 찐다거나 피부미용 목적으로 잘못 맞을 경우 여드름이 생기거나 기름기가 도는 게 바로 그것. 또 부작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확한 통증점을 찾지 못할 경우 일시적으로 통증이 악화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통증 부위를 정확히 찾아 제대로 주사를 놓기가 어려운데도 대부분의 의사들이 이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고 환자들 또한 이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는 점. 실제 주사제를 먼저 들여놓고 나중에 사용법을 묻는 의사들도 꽤 있다는 게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대한태반의료연구회 한국남 회장은 “태반이 아무리 좋은 치료제라 할지라도 환자의 증상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그에 대한 적절한 처치요법이 전제되지 않으면 치료 효과를 볼 수 없다”며 “태반주사의 치료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수많은 임상경험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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