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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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특허 ‘풍요 속 빈곤’

원천·핵심기술 적고 단순 개량형이나 유사 출원 많아 … 돈 될 만한 기술 찾기 어려워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4-02-05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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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전화 특허 ‘풍요 속 빈곤’

    원격 진료에 이용되는 스마트폰 등 컨버전스된 휴대 단말기가 주목받고 있다.

    용산전자상가 상인들 사이에서 휴대전화 제조업체 A사는 가끔 웃음거리가 된다. 한창 TV광고를 내보내며 바람몰이를 하는 상황에서 신제품에 자잘한 문제점이 드러나 물건을 회수하는 경우가 이따금 발생하기 때문. 새로 출시된 휴대전화에 심심찮게 버그가 나타나는 것은 기술경쟁이 치열한 까닭이다. 휴대전화는 출시 이후 3개월 안에 전체 물량의 70% 이상이 소화되는 터라 남보다 빨리 기발한 제품을 내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기술혁신과 특허확보가 경쟁력의 원천인 것.

    음성통화 도구였던 휴대전화가 인터넷과 컴퓨터의 기능을 흡수, 다기능 정보기기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업체들간의 기술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누가 먼저 제품을 개발했느냐, 즉 기술혁신과 특허소유 여부에 따라 제품과 기업의 경쟁력이 좌우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LG전자의 한 간부급 엔지니어는 “기술혁신이 삼성을 누를 유일한 방법”이라며 “휴대전화를 먼저 개발하고도 삼성에 밀린 이유는 수요예측 실패로 과감한 투자에 나서지 못해 기술이 뒤처진 것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동영상 압축 해제 기술 ‘유일한 핵심기술’

    업계에 회자되는 ‘전설적인 특허’는 1996년 아카데미 영화시상식에서 전격 발표된 모토로라의 ‘스타택’.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세계 최초의 폴더형 단말기 특허를 보유한 모토로라는 폴더형 전화에 대한 특허로 휴대전화의 역사를 새로 쓰며 경쟁업체를 따돌렸다. 모토로라는 97년 퀄컴이 스타택을 도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법정다툼을 벌인 끝에, 퀄컴이 전화기 제조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만들기도 했다. 모토로라를 베꼈다는 의혹을 받았던 퀄컴 역시 CDMA 원천기술 특허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명품’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수출전선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휴대전화에 앉혀진 ‘국산 특허’에는 어떤 게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삼성전자가 특허를 갖고 있는 ‘천지인(天地人)’ 한글입력 시스템. 애니콜 사용자들이 다른 기종으로 제품을 바꿨다가도 다시 애니콜로 되돌아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특허 때문이다. 천지인은 ‘ㅣ’ ‘ㅡ’ ‘·’의 세 가지 키로 모음을 모두 입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업체의 한글입력 방식에 비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소유한 국제표준 특허로는 동영상 압축 해제 기술인 MPEG-4 관련 특허가 있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올해부터 로열티를 받는다. 적지 않은 로열티 수익이 예상되는 MPEG-4 관련 특허는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계열이 공히 확보하고 있다. MPEG-4 관련 기술은 한국이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핵심기술 특허다.

    LG전자는 숫자를 누르면 해당 숫자를 음성으로 불러주는 기능, 액정화면에 표시되는 숫자를 서로 다른 컬러로 표시하는 기능, LCD 화면의 밝기를 자동 조절하는 기능 등과 관련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LG전자는 또 제3세대 이동통신 분야의 표준화기술과 관련된 3GPP/3GPP2 특허를 출원 중이며 일부는 특허 등록돼 있다. LG전자측은 “멀티미디어 기술 중심으로 많은 특허를 출원할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이며 제3세대, 제4세대 이동전화 표준 관련 특허 획득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팬택 계열은 비디오·오디오 기능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MP3 음악을 듣던 중 전화가 걸려오면 음악감상을 중단하고 음성통화로 전환할 수 있는 ‘MP3 음악파일 재생휴대전화’, 사용자가 자신의 얼굴과 배경을 선택적으로 전송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2개의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 등이 팬택이 자랑하는 특허들이다. SK텔레텍은 회사 역사가 5년여밖에 되지 않아 등록된 특허 건수가 20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스카이’ 브랜드의 인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국내·외에 내세울 만한 특허를 보유하지 못한 것.

    특허청에 따르면 최근 특허 출원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제품은 카메라폰과 스마트폰이라고 한다. 특히 1997년 처음으로 기술이 등장한 카메라폰은 2002년 전년 대비 230%포인트가 느는 등 폭발적인 특허 출원 증가세를 보여왔다. 특허청 오상균 심사관은 “카메라폰의 특허권 확보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무선 인터넷콘텐츠 기술의 발달과 데이터 통신료 인하 등으로 인해 스마트폰과 모바일뱅킹 텔레매틱스 관련 특허신청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특허 ‘풍요 속 빈곤’

    시민들이 눈화장을 짙게 하고 앞 단추를 풀어헤친 모델의 모습을 카메라폰에 담고 있다.

    그렇다면 확보한 특허는 어떤 방식으로 거래될까. 삼성전자의 천지인 자판에 맞설 대항마를 갖지 못했던 LG전자는 한 벤처기업으로부터 자판 기술을 구입해 사용한다. LG전자는 별표와 우물 정자 버튼을 이용해 자음과 모음을 변화시키는 방식의 ‘나랏글’ 사용권을 구입하는 데 10억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 로열티는 업체들이 외부로 알리기를 꺼리는 사항이다. LG전자는 한꺼번에 사용료를 지급하고 영구히 사용권을 얻는 럼섬(lump sum) 방식으로 나랏글을 구입했다고 한다.

    국내업체들 특허 거래되는 경우 드물어

    특허를 보유하지 못한 기업이 사용권을 얻는 방식으로는 LG의 나랏글 경우처럼 영구사용권을 구입하는 럼섬, 제조 대수에 따른 로열티를 지급하는 러닝로열티, 경쟁업체와 특허권을 공유하는 크로스라이선스 등이 있다. CDMA 단말기를 생산하는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퀄컴에 지불하는 원천기술 사용료는 러닝로열티 방식이고, ‘듀얼폴더’라고 불리는 외부에 액정이 있는 단말기는 대표적인 크로스라이선스 상품이다. 듀얼폴더 특허를 갖고 있는 KTF와 천지인 특허를 갖고 있는 삼성전자가 각각 상대방의 특허를 교환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업체가 확보한 특허들은 거래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탁월한 기술이라기보다 따놓고 보자는 식의 특허가 많기 때문. 2월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선 재미교포 김모씨의 특허 획득 축하연이 열렸다. 김씨는 최근 ‘카메라폰’의 특허권을 따냈다. 김씨측은 노키아 삼성전자 모토로라 등 카메라폰 제조회사들로부터 연간 10억 달러의 특허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일장춘몽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허권을 비켜 제품을 제작하는 방법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제조업체들이 갖고 있는 특허 대부분이 이 같은 범주에 포함된다. 원천기술이나 핵심기술이 아닌 경우엔 작동되는 시스템이나 구조를 조금만 바꿔 다른 방식으로 제품을 제작하면 된다. 특허청의 한 관계자는 “휴대전화 관련 특허 출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나 단순 개량형 발명이나 유사 출원인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비켜갈 방법이 많은 도토리 키재기 식의 기술, 또는 생색내기용 특허가 많은 터라 돈을 주고 살 만한 특허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이와 관련해 한 휴대전화 제조업체 관계자는 “원천기술이나 핵심기술에 대한 특허는 대부분 외국업체가 갖고 있는 터라 비집고 들어갈 틈이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연간 5000건 정도 휴대전화 관련 특허가 출원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허거래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올린 경우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제3세대, 제4세대 휴대전화 시장에선 조립기술을 통해서가 아니라 원천기술, 핵심기술 확보를 통해 부가가치를 거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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