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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장우성, 리커란展

만났다! 한·중 거장의 삶과 예술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만났다! 한·중 거장의 삶과 예술

만났다! 한·중 거장의 삶과 예술

장우성, 눈, 1979, 종이에 수묵(왼쪽).리커란, 루쉰 고향 소흥, 1962, 종이에 수묵.

때로 천재의 고독은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의 인간적 삶이 삭제된 채 천재로서만 세상에 알려지는 데서 비롯되기도 한다. 지금 국립현대미술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장우성, 리커란전’에 참여한 한국과 중국의 거장 장우성(1912~)과 리커란(1907~1989)의 삶을 돌아보며 떠올린 생각이다.

‘장우성, 리커란전’에는 장우성과 리커란의 작품 150점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두 사람은 리커란이 죽기 직전 중국에서 조우한 적은 있지만 지속적으로 예술적 교류를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을 묶는 기획이 이뤄진 것은 두 사람이 한국과 중국, 양국 미술사에서 비슷한 위치에 있었고 비슷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두 사람 모두 현대화, 또는 서구화의 길을 걷게 된 동양의 역사 속에서 예술가로서 ‘전통’과 ‘혁신’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혔고 평생 이 화두를 붙잡고 살아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화의 거장 장우성과 중국 근대미술운동의 주역 리커란은 이미 청년기에 예술가로서 천재적인 재능을 드러내, 젊은 시절부터 양국의 주류 문화계에서 활약했다.

당대 최고의 대가였던 김은호에게 사사한 장우성은 그림을 배운 지 1년 만인 20살에 조선미전(선전)에 처음 입선하고 1941~44년 4회 연속 특선을 수상하면서 단연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다. 1946년엔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로 취임하고,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의 심사위원도 맡았다.

천재적 재능·미술계 역할 닮은꼴



리커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총명해서 스승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18세에 사범학교의 미술교사가 됐는가 하면, 진보적 청년미술단체를 통해 항일선전활동에도 나서게 된다. 또한 그는1950년 공산화된 중국에서 마오쩌둥의 문예강화를 따르는 중앙미술학원이 창립되자 여기서 수채화를 가르치는 교수가 된다.

즉 인생에서 상당히 긴 시간을 예술가이면서 정치적 격동의 중심에 선 교육행정가로서 살았던 것이다. 한 사람은 자연이나 인물 같은 서정적인 소재를 통해, 또 한 사람은 노골적인 프로파간다 그림을 통해 가장 정치적인 활동을 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 정치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림의 소재도, 화풍도, 주장까지도 변화를 겪었다. 일제시대에 사실적인 선과 새로운 감각의 채색으로 동양화 쇄신에 앞장섰던 장우성은 해방 후 다시 전통으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교수직을 그만두고 미국에 다녀온 그는 문인화의 정신을 주창하며, 색과 형태를 점차 덜어내는 ‘신문인화’에서 뛰어난 작품을 보여주게 된다. 이 같은 정신은 최근의 물질주의, 환경문제 등을 비판하는 담백하면서도 풍자적인 그림에까지 이어진다.

리커란은 중국화(서양화에 대칭되는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화 이후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중국화 개조의 제1 기본조건은 인민들의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중국이 우경화되거나, ‘문화혁명’ 같은 극좌적 변화를 겪을 때마다 그가 추구하는 중국화도 달라졌다. 특히 그는 중국의 산수에 먹색을 많이 썼다는 이유로(검은색은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대치되는 색으로 인식된다) 비판을 받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장우성과 리커란은 온갖 정치·사회적 변동을 작품에 반영하도록 강요받거나 스스로 반영하면서 매우 독특한 전통화의 경지에 이른다. 그들의 작품은 매우 다르다. 장우성이 여백의 심미주의로 진전했다면 리커란은 먹색의 미학을 이뤘다고 할까. 어느 쪽이든 먹색은 두 사람에게 ‘컬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고, 그들의 성취는 보통을 뛰어넘는 노력과 재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국과 중국이라는 두 나라 거장들의 삶과 작품을 비교하고 반추해보는 경험은 미술관계자뿐 아니라, 보통사람들에게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근대화가 시작된 지 100년이 넘어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전통과 혁신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화두이기 때문이다.

2월29일까지, 문의 02-779-5310



주간동아 419호 (p114~115)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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