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1

2003.11.27

돼지저금통 깨고 봉사 손길 보태고

시민 정성 밑거름 ‘순천 기적의 도서관’ 개관 … 방문객 폭주로 정상운영은 12월에나

  • 글·사진/ 순천=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11-20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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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저금통 깨고 봉사 손길 보태고

    기적의 도서관 전경.

    도서관이지만 책을 읽으며 마음대로 떠들고 뒹굴 수 있다. 바닥은 온돌이어서 따뜻하고, 서고 옆에는 편안히 쉴 수 있는 소파가 있다. 키에 맞게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장애인 전용 책상도 있고, 큰 소리로 울어도 돌봐줄 자원봉사자 아주머니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발자국 소리에도 ‘정숙’을 요구하고, 서고보다는 수험공부를 위한 열람실 운영에 더 열심이던 거개의 도서관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도서관이 들어섰다. 11월10일 전남 순천 해룡면에 문을 연 영유아·어린이 전문 도서관인 ‘순천 기적의 도서관’이 바로 그것.

    1270평 부지에 연면적 395평의 2층짜리 건물인 이곳은 외양부터 한껏 멋을 부렸다. 철제 빔과 나무를 적절히 배합한 건물은 더없이 튼튼해 보이고, 대형 유리창을 통해 자연채광이 이뤄져 전체 분위기가 무척이나 밝다. 영유아실(아그들방)과 구연동화실, 강당과 원형 열람실, 동아리방, 게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 연결을 차단한 디지털정보실, 별나라방 등 다양한 형태의 실내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

    초등생부터 상인들까지 십시일반

    1만1000여권을 채울 수 있는 서고에는 현재 8500권의 책이 정리돼 있다. 책은 모두 선정위원회의 선정 기준에 따라 채택된다. 바로 이웃에는 동명초등학교가 있고, 작은 평수의 아파트들이 밀집한 지역이어서 아이들이 언제든 걸어서 찾아갈 수 있는 것도 이 도서관의 장점이다. 서울 사직동과 중계동의 어린이 전문 도서관 외엔 어린이 열람실을 갖춘 도서관이 드물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도서관의 등장을 더욱 반기고 있다.



    돼지저금통 깨고 봉사 손길 보태고

    순천 기적의 도서관 내부

    개관 이후 전국에서 방문객들이 몰려들고 있어 도서관 관계자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개관 첫날 방문객은 모두 4500여명, 둘째 날은 4000여명, 셋째 날은 2000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수용 인원은 250여명인데 이처럼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다. 도서관장을 겸하고 있는 양동의 순천시 문화홍보과장은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과 내부사정으로 12월에나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서관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면 ‘유아들을 위한 이야기 들려주기와 책 읽어주기’ ‘어린이 독서지도’ ‘학교공부와 책 읽기의 연결’ ‘어린이 사서 활동’ ‘젊은 주부를 위한 육아 돕기 프로그램’ ‘시가 있는 작은 음악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아이들은 꿈에 부풀었다. 동명초등학교 2학년 김다솜양(8)은 “점심시간에 올 수 있고, 책 읽기 편하고, 책도 많아 너무 좋다”며 즐거워했다. 어른들도 아이들 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주변 아파트값이 상승할 것이라 예상하며 잔뜩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인근 부영아파트에 사는 최의숙씨(39)는 “전에는 도서관에 가려면 버스 타고 가야 했는데 이제는 걸어서 갔다 걸어서 올 수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좋아 자주 오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저금통 깨고 봉사 손길 보태고

    2층 열람실에 있는 탁자는 모서리를 둥글게 해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 1호는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상임대표 도정일, 이하 책읽는사회)측이 MBC의 교양오락 프로그램 ‘! 느낌표’와 손잡고 시작한 어린이도서관 설립 프로젝트의 첫 결실이다. 올해 1월20일 ‘주민이 많고 도서관이 없는 곳,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나 민간이 건립부지를 제공하는 곳’ 등의 후보지 자격심사를 거쳐 이 지역이 도서관 설립지로 선정됐고 7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4개월 만에 도서관이 완공됐다. 순천시는 도서관 건립을 위해 5억원과 부지를 제공했고, 책읽는사회는 모금액을 포함해 15억원을 투자했다. 여기에는 올해 1월부터 ‘! 느낌표’를 통해 매달 발표하는 권장도서의 판매수익금과 인세도 포함됐다.

    시작은 책읽는사회와 방송사가 주도했지만 기적을 일구고 마침표를 찍은 이들은 지역주민들과 학생들이었다. 동명초등학교 학생 1200여명은 돼지저금통을 털어 400만원을 내놓았고, 주민들은 몇 만원씩 쌈짓돈을 모았다. 해룡면 새마을부녀회와 농업경영인회는 200만원과 나무를 내놓았다. 중소 상인들도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거금을 보탰다. 27만여명 규모의 중소 도시에서 지난 몇 개월 새 거둬들인 모금액만 무려 1억1200만원. 부녀회 회원들은 공사장에 나와 인부들의 간식과 밥을 해 날랐다. 40여개 업체와 출판사 등도 공간소독기 컴퓨터 등 각종 설비와 어린이 도서를 무료로 내놓았다.

    자원봉사자 50여명 상시 대기

    시공회사인 유탑엔지니어링은 설계가가 25억원인 이번 공사를 17억원만 받고 시행했다. 모득풍 현장소장은 “공사기간 4개월 중 30일이나 비가 내려 공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좋은 일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건축가 정기용 소장(기용건축)도 적은 대가만 받고 설계작업에 나섰다. 그의 고민은 세계적으로도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 드물어 참조할 만한 모델이 없었다는 것. 그의 고민을 해결해준 이들은 수년 동안 30~40평의 작은 도서관을 꾸려온 설문대도서관 허순영 관장, 파랑새도서관 전영순 관장,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 관장, 새벗도서관 신남희 관장 등이다. 정소장은 이들에게서 체험에서 우러난 조언들을 듣고 그것을 설계로 옮겼다.

    “그들을 통해 어린이도서관에는 아이들이 책 읽는 공간뿐 아니라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공간과 유모차를 끌고 온 어머니가 아이를 재울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흙장난하다가도 그대로 들어가 책을 만지기 때문에 입구에 세면대도 있어야 한다더군요.”

    도서관을 운영하는 모든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특히 도서관 운용에 민간 운영위원회가 반드시 참가하도록 하고, 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상시 대기해 아이들의 독서와 안전관리 등을 맡도록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어린이에 관한 상식이나 책 읽어주는 요령 등에 대해 18시간 동안 교육받고 도서관에 투입된다.

    기적의 도서관 건립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도정일 대표는 “불우한 환경과 차별, 기회의 박탈, 무관심 등으로 소외된 아이들이 없도록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자는 취지가 첫째다. 그리고 그동안 일반 도서관에서 냉대받았던 영유아들에게도 도서관에서 이야기를 듣고 교육받을 권리를 되찾게 해주자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은 사회가 육아를 돕는 사회적 부모(social mother) 개념의 일환이다”고 밝혔다.

    기적의 도서관 출범을 계기로 문화관광부에서 어린이도서관 건립 지원을 위한 예산안을 편성했으며, 부평과 고양의 경우 지자체가 건물 건축비 전액을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이번 1호관 개관을 계기로 기적의 도서관 유치 경쟁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2호관은 12월중에 제천에 들어서고, 진해 청주 제주 서귀포 등 12곳이 차례로 문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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