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1

2003.11.27

‘仁術 코리아’ 타밀족 아픔 보듬었다

한방의료봉사단 스리랑카 ‘자프나’서 봉사활동 … 삶의 희망 안겨준 ‘사랑의 진료’

  • 자프나=글·사진/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11-20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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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仁術 코리아’ 타밀족 아픔 보듬었다

    현지인을 진료하고 있는 임일규 한의사, 스리랑카의 명물 ‘툭툭’ 삼륜차, 이은방 한의사 (위 부터 시계방향).



    스리랑카 타밀족 중년남성 쉬바네센(40)의 눈빛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10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그는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 같았다. 그는 오른손을 끊임없이 떨고 있었고, 밤마다 환청에 시달리느라 깊이 잠들지 못한다고 했다.

    “1987년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노동자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93년 내전 중에 형제 네 명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고국으로 달려왔습니다. 이 증세는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11월5일 오전 10시(이하 현지 시각) 스리랑카 북단 자프나의 싯다(SIDDHA·타밀족 전통의학) 교육병원. 1994년 네팔에서 처음 의료봉사를 시작해 캄보디아 등 22개국에서 의료활동을 해온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KOMSTA·단장 김호순)의 51회째 봉사 현장이다. 싯다병원은 내전이 시작되기 전에는 제법 의료시설을 갖춘 전통의학 병원이었지만 지금은 건물 지붕이 날아가버리고 벽 곳곳에 총탄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선풍기조차 갖춰지지 않아 의료진과 환자들이 30℃가 넘는 기온을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전으로 피폐 20년간 의료혜택 못 받아



    타밀족의 어두운 현재를 상징하는 듯한 쉬바네센의 목소리는 후텁지근한 병실에서 진료하던 임일규 한의사(69)와 쉬바네센의 타밀어를 영어로 통역하던 전통의학 박사 라타, 그리고 영어를 다시 한국어로 통역하던 국제교류협력단(KOICA) 단원을 암담하게 만들었다. 임원장은 “정신과 육체를 안정시키고 근심을 빨리 떨쳐내야 한다. 자신감을 되찾으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짧은 진료 시간 동안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그런 위로의 말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가미소요산 며칠 분이 전부였다. 그러나 쉬바네센은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11월4~6일 내전으로 피폐한 자프나에서 인술(仁術)을 펼친 이들은 스리랑카봉사단 단장인 이병직 한의사(40)를 비롯해 임일규·신현기·김광락·김길섭·김신형·박기태·윤제필·이은방·손원락·강희만 한의사, 김종수 한의대생, 흥승혁 극동제약 이사, 정지현 KOMSTA 대리 및 이상호 정부파견 한의사, 9명의 KOICA 단원들.

    인술의 현장인 스리랑카는 지난 19년 동안 인구의 74%를 차지하고 있는 싱할라족(1380만명)과 자프나에 근거지를 둔 타밀족(18%, 300만명) 간의 분쟁을 겪었다. 그 연원은 두 민족을 분리 통치한 영국 식민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직접적인 발단은 1983년 타밀분리주의자들이 자프나에서 정부군 13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인종 폭동이 발생했고 지난해 2월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7만여명이 희생됐다.

    현재 양측간의 평화협상이 진행중이어서 스리랑카 정부군이 장악한 자프나 시내의 치안에 큰 문제는 없다고 스리랑카 관리들은 밝혔지만 이방인들의 눈에 자프나는 여전히 전운에 휩싸여 있었다. 청사조차 없는 자프나공항에는 군인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고, 시내로 이동하는 길가는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지붕이 날아간 채 뼈만 앙상히 남은 건물들, 코코넛 잎으로 가린 난민촌 집들,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가난의 냄새는 내전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짐작케 했다. 산호가 많은 세계적인 미항이었던 판나이도 지금은 철책선이 가로놓여 초라한 모습이었다.

    ‘仁術 코리아’ 타밀족 아픔 보듬었다

    폭격당한 건물 앞을 지나는 자프나 사람들(아래 왼쪽)과 스리랑카 의료봉사단. 김길섭 한의사, 자프나대 전통의학부 학생들, 시내의 힌두교 사원, 병원을 지켜준 정부군 군인과 이병직 단장(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자프나 지역 스리랑카 정부 책임자인 틸라가나야감(59)은 “이곳 사람들은 20년간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데다 집이 너무 많이 파괴됐다. 교육과 건강, 농업과 산업 등을 하루빨리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타밀족 사람들의 입가에는 언제나 미소가 감돌았다. 하루에 두세 차례 ‘티타임’을 가질 만큼 느긋한 성품의 이들은 11월4일 새벽부터 화환을 만들고, 소똥과 샌들나무 가루를 미간에 찍는 성대한 환영의식으로 봉사단을 맞이했다.

    환영식에 고무된 봉사단은 오전 9시30분부터 진료에 들어갔다. 아침 일찍부터 장사진을 이루고 기다리던 환자들이 9개 진료실(40여개 병상)로 쉴새없이 밀려들었다. 3년 전 왼쪽 다리에 상처가 생긴 뒤 잘 걷지 못하는 카말라싱감(67)을 치료하던 박기태 원장(40·박기태한의원)은 “습열이 많은 이곳에서 맨발로 다녀 진피층이 손상된 것이 문제다”며 침을 놓고는 “필 베터(Feel better)?” 하고 환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환자가 이 나라 사람들 특유의 습관대로 빠르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으로 “예스(Yes)”를 대신했다.

    이번으로 3회째 해외의료봉사에 나선 김길섭 원장(40·길한의원)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데도 ‘보디 랭귀지’를 섞어가며 익숙한 솜씨로 환자들과 대화했다. 김원장은 “너무 많은 환자가 밀려 있어서 치료 시간을 길게 잡을 수 없다”며 “절반은 마음으로 치료한다”고 아쉬워했다.

    하필 비상사태 … 일정 하루 단축 아쉬움

    진료 보조에 나선 자프나대 전통의학부 여학생들은 한의학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내며 김원장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스리랑카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 부처에 전통의학질병구제부(장관 사랏찬드라 라자카루나)가 있을 만큼 전통의학에 대한 관심이 크지만 아직 현대화는 덜 된 상태다.

    첫날 봉사단원들은 578명의 환자를 보고는 녹초가 되고 말았다. 언어소통 문제, 환자들에게서 나는 참기 어려운 냄새, 한두 번의 진료로 치료하기 어려운 중병환자들을 대하며 생기는 허탈감 같은 것들이 이들을 힘들게 했다.

    더 큰 문제는 5일 아침에 일어났다.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국회 기능을 잠정중단시키고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이다. 이 사건은 타밀 반군단체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와의 평화협상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타밀 지역에 있는 봉사단의 신변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仁術 코리아’ 타밀족 아픔 보듬었다
    그러나 단원들은 민간봉사단의 활동에까지 여파가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예정대로 의료봉사를 계속했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비위생적인 환경과 영양결핍, 긴 내전 등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질병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윤제필 한의사(30)는 “류머티즘에 걸린 지 20년 된 한 환자는 면역기능이 완전히 파괴돼 관절이 변형되고, 만지면 관절이 삐걱거릴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며 “전공서적에만 있는 병을 처음 눈으로 보고 아연해졌다”고 말했다. 김신형 한의사(29·강남오당한의원)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하는 화병 환자들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께 이남수 대사는 단원들의 안전을 위해 진료를 끝내고 곧장 수도 콜롬보로 이동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알려왔다. 단원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격론이 일었다. 불안감도 고조됐지만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일단 다음날까지는 진료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셋째날 아침 병원에 군인들이 투입됐고, 이날로 진료를 마감한다는 ‘긴급공지’가 나붙었다. 그러자 11시께부터 환자들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해 병원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가 됐다. 현지인들은 “예정대로 하루 더 진료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한 할머니가 예진실 앞에서 새치기를 해 한바탕 소란이 일기도 했다. 박기태 원장을 보조하던 시바수포라마니암 자프나대 전통의학부 강사(30)는 “어머니가 수년 동안 피부병을 앓고 있는데, 8km나 떨어져 있는 곳에 있어 모시고 올 수가 없다. 자프나는 안전하니 하루만 더 진료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사안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의료진은 이날 몰려온 환자 1021명을 다 진료하고 어둑해진 하늘을 보고서야 병원문을 나섰다. 이병직 단장은 “좀더 완벽한 진료를 해주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의료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간단한 치료만으로도 삶의 희망을 안겨줬다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둬야 할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자프나 책임자 틸라가나야감은 “내전에 시달린 타밀 사람들이 이번 봉사활동으로 큰 은혜를 입었다. 당신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행복해졌다”며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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