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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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 없다” 경찰 특수과 변신은 무죄

고위층 비리 혐의 수사 과감한 행보 … 경찰판 ‘마니 풀리테’ 주역 남다른 각오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3-11-20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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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역 없다” 경찰 특수과 변신은 무죄

    경찰청 수뇌부가 조직쇄신 의지를 다지고 있다. 9월 23일 최기문 경찰청장의 국감보고 장면(왼쪽). 최성규 총경이 미국으로 도피하며 언론의 초점이 됐던 경찰청 특수수사과.

    전직 장관과 군장성, 대기업 고위간부 등 사회 고위급 인사들을 경찰이 줄줄이 소환·조사하면서 경찰 수사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동안 장관이나 군장성에 대한 수사는 주로 검찰이 맡아왔던 점을 고려하면 최근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흐름은 기존 경찰 수사에서 진일보한 게 틀림없다. 검찰이 정치권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로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듯이 경찰 또한 경찰판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를 선보일 각오를 밝히고 있다. 이는 수사권 독립을 꾸준히 주장해온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검찰과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곳이 바로 경찰청 특수수사과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권 당시만 해도 최성규 전 특수수사과장이 ‘최규선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고 미국으로 도피하면서 특수수사과는 ‘비리의 온상’으로 치부됐었다. 특수수사과는 또 ‘청와대 비선 라인’ 혹은 ‘제2 사직동팀’으로 불릴 정도로 과거 정권과 밀착된 조직이었다. 그러나 현 정권 들어 특수수사과의 행보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청와대 친인척 비리 등 하명수사에 얽매여 있던 과거와 달리 검찰과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고위급 인사에 대한 수사를 벌이는 데서도 이런 점이 입증된다는 것.

    정권 눈치 보는 하명수사 이제 그만

    특수수사과는 11월5일 김동신 전 국방부 장관을 소환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경찰 사상 최초로 전직 장관을 수사했기 때문. 김 전 장관은 최근 구속됐다가 풀려난 전 국방부 시설국장 신모씨(57)로부터 2000년 진급 청탁과 함께 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김 전 장관은 “진급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며 대가성이 없음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경찰은 대가성 있는 돈이라는 데 대해선 어느 정도 혐의를 입증한 상태다. 다만 돈을 받은 시기가 육군참모총장을 지내다 예편한 후인 민간인 신분인 때인 만큼 수뢰가 아니라 사후수뢰 혐의가 적용되는데, 현행법상 1000만원 사후수뢰는 구속사안이 되지 않아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못했다. 현 상황으로는 ‘경찰 최초의 전직 장관 구속’이 실현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특수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전직 장관의 구속 여부를 떠나 그를 소환하고 조사했다는 것 자체가 경찰 내부의 사기 진작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의 수사를 담당한 장재덕 경사는 “죄를 지으면 전직 장관이라도 수사하고 처벌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출석을 요구하자 정확한 시간에 맞춰 나타난 김 전 장관의 협조적 태도에 신선함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특수수사과의 과감한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특수수사과는 6월 진행된 인천신공항 외곽경계공사 관련 군장성 비리사건을 수사해 두 명의 군장성을 구속한 바 있다. 경찰이 군장성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한 것 역시 처음 있는 일이다. 특수수사과는 공사감독 설계변경 등 편의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H건설 상무 김모씨로부터 1억4000만원을 제공받은 혐의로 전 국방부 시설국장 신모씨와 전 연합사 공병부장 이모씨를 구속했다. 김 전 장관의 금품수수 혐의도 이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11월4일에는 전 국방품질관리소장 이모씨(57)가 다른 사람의 명의로 수십억원대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씨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리는 한편, 이씨 가족의 은행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잇따른 군 관계 인사에 대한 수사가 자칫 경찰과 국방부 간의 관계를 불편하게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우려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우리는 그저 주어진 사건에 대해 수사를 벌이는 것뿐”이라고 일축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건국대 재단 자금횡령 고발사건과 관련해 수사정보를 사전 유출한 혐의로 현직 치안감으로는 처음으로 직무고발된 이한선 치안감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것도 의미 있는 대목이다. 검찰이 아닌 경찰이 자체적으로 경찰 고위간부를 소환조사한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조직원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 경찰에 대해 ‘조직 쇄신 의지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현재 특수수사과가 관심을 두고 수사중인 또 다른 분야는 국영기업의 대규모 감사비리. 지난 10월 2년여에 걸쳐 회원들의 해외연수비 2억3000만원을 부풀려 받은 혐의로 한국감사협의회 최모 사무총장(64)을 구속했고, 자신들이 쓴 여행 경비를 허위로 올려 회사 예산을 받아 쓴 공기업 감사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공기업 비리에 대해 특수수사과 관계자는 “공기업 감사가 한 달 동안 법인카드로 1억원 이상 쓰는 것을 봤다”며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기 위한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합리한 수사 관행 하나둘 개선 노력

    특수수사과의 이 같은 독립적 행보에 대해 주상용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은 “특수수사과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비견되고, 특수수사과의 움직임이 수사권 독립과 연결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경찰의 소신 있는 행보는 수사권 독립을 위한 경찰의 노력과도 맞물리고 있다. 검찰에 종속돼 있던 기존의 불합리한 수사관행을 개선해나가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올해 초 경찰은 구치소에 수감된 인물을 수사하기 위해 일일이 검사의 승인을 받아야 했던 ‘구치소 접견 승인’ 관행을 깨뜨렸다. 사소한 수사를 하는 데도 검찰의 통제를 받는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 경찰이 이의를 제기한 것. 뿐만 아니라 한 달에 불과하던 체포영장의 유효기간도 ‘공소시효 만료 시점’으로 연장했다. 불합리한 작은 관행을 바로잡는 데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검찰과 경찰의 불평등한 관계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지가 경찰 내부에 퍼져나가고 있다.

    경찰판 마니 풀리테는 성공할 수 있을까. 한 경찰 관계자의 얘기가 의미심장하다.

    “수사관은 사건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처리될지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그 사람이 어떤 잘못을 했고, 그를 구속해야 하는지 여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죠. 경찰의 본분을 지키는 게 마니 풀리테의 시작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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