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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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전파 월북 막아라”

북에서도 남측 단말기 사용 가능 … 수상한 전파 하루 4000여개, 추적장비 개발 뒤처져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3-11-20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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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전화 전파 월북 막아라”

    불법전파가 나오는 곳을 찾기 위해 설치한 고정 방탐장비의 안테나.

    기자는 해외취재를 갈 때마다 휴대전화를 들고 나간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휴대전화를 꺼서 가방 안에 집어넣고, 귀국하자마자 메시지를 확인해본 뒤 여러 곳으로 전화를 건다. 해외출장이 잦은 사람은 로밍서비스(roaming service·서로 다른 통신사업자의 서비스 지역에서 통신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서비스)까지는 이용하지 않더라도 기자처럼 휴대전화를 갖고 나갈 것이다.

    이러한 가정을 해보자. 한국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던 누군가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거액을 받고 자신의 휴대전화를 그에게 준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휴대전화 분실신고를 하지 않아 휴대전화 요금이 통장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게 해두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낸다. 그러는 사이 북한 공작 조직이 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남북을 정확히 나누는 군사분계선(MDL) 2km 후방에 남방한계선이 있고 그 뒤에 전방 사단이 포진해 있는 민간인통제구역이 있다. 남방한계선과 민간인통제구역 안에는 휴대전화 통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지국이 없어 휴대전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017은 군 예비통신 성격이 있어, 민간인통제구역 남쪽에서는 통화가 되도록 해놓았다.

    이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휴대전화의 전파가 북한으로 넘어가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취한 조치들이다. 서울에서 임진각을 잇는 자유로변인 경기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에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을 마주하고 있는 통일전망대가 있는데, 그곳에서부터 강화도까지는 한강이 비무장지대와 민간인통제구역을 대신해주고 있다(지도 참조).

    80년대 北서 발사된 삐삐전파 서울서 포착



    “휴대전화 전파 월북 막아라”
    통일전망대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로 휴대전화가 터질 수 있도록 인근에 기지국이 설치돼 있다. 휴대전화 전파는 산이나 건물이 없는 완전 평지에서는 30km를 나갈 수 있다. 통일전망대에서 강화도 사이에 있는 한강은 완전한 평면이고, 폭이 4km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한강 하류 건너편 북한 땅에 있는 누군가가 한국의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면, 그는 그 휴대전화를 이용해 한국 전역에 있는 사람과 통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으로 침투한 북한 공작원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정보 보고를 할 수도 있다. 과연 북한의 대남공작조직은 한국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을까.

    “휴대전화 전파 월북 막아라”

    북한공작조직이 한국 휴대전화를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

    1980년대 한국에서는 삐삐가 유행했었다. 삐삐는 휴대전화처럼 기지국을 통해 연결됐는데, 삐삐 송수신을 위해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는 삐삐 사업자들에게 일정한 주파수를 할당해주었다. 88 서울올림픽이 코앞에 닥친 1980년대 후반 당시 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이하 안기부)를 비롯한 방첩기관은 북한 해주에서 삐삐용으로 할당해준 전파가 발사되는 것을 포착했다. 이 전파는 서울은 물론이고 수원에서도 포착되었다.

    삐삐는 숫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장비였다. 그런데 숫자는 사전에 약속돼 있을 경우 암호로 사용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삐삐에 1940008이라는 숫자가 찍히면 ‘A요원을 암살하라’는 지령이 되고, 0094021이 찍히면 ‘B시설을 파괴하라’는 지령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972년 서독에서 뮌헨올림픽이 열렸을 때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검은 9월단’은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습격해 2명을 살해하고 11명을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에 구금된 팔레스타인 게릴라 200여명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서독이 특공대를 투입해 진압작전을 펼쳤는데 그 과정에서 검은 9월단이 11명의 인질 전원을 사살하였다. 이 충격으로 뮌헨올림픽은 24시간 동안 중단되는 등 큰 혼란을 빚었다. 잘못하면 서울올림픽이 제2의 뮌헨올림픽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안기부는 황급히 북한발(發) 삐삐전파를 방해하는 시설을 파주에 건설했다. 이 시설이 건설되면서 북한의 삐삐전파는 무력화됐다. 이따금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다 보면 ‘왈왈왈’ 하는 소리를 내는 채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방해전파를 받은 주파수다.

    한 전파 전문가는 “한국의 휴대전화는 1초에 1000여 번씩 주파수가 바뀌는 CDMA 방식을 택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 기술로는 이렇게 변하는 주파수를 따라갈 수가 없으므로, 특정한 통화 전파를 향해 방해전파를 쏠 수가 없다. 북한이 갖고 있는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를 안다면 통신센터를 통해 감청할 수 있다. 그러나 전화번호를 모른다면 북한의 공작조직이 한국 휴대전화를 북한으로 가져가 사용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전화번호 모르면 ‘주파수 따라가기’ 불가능

    정부에 근무하는 또 다른 전파 전문가도 “국가정보원과 군 등 안보 관련 기관들은 한국의 휴대전화 전파가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꽤 많은 방책을 세웠지만 100% 완벽하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수십 개 사단이 휴전선을 지키고 있어도 간첩이 침투하듯이, 우리의 전파 방벽에도 어디엔가 허점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의 휴대전화 전파가 북한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허점은, 우리보다는 북한 땅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으므로 그들이 이를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보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하루 평균 한국에서는 4000여개의 수상한 무선전파가 발생한다고 한다. 수상한 전파는 전파법에 따라 허가받지 않은 전파를 말하는데, 이중에는 허상전파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허상전파에는 기생전파와 혼(混)변조가 있다. 무선전파를 쏘면 기본파 주변에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많은 기생전파가 발생한다. 또 몇 개의 전파가 합쳐져 새로운 전파를 만드는 혼변조도 생긴다. 기생전파와 혼변조, 그리고 진짜로 수상한 전파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같은 주파수로 수상한 전파가 발생한다면 이는 조사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수상한 전파의 발신지를 찾아야 한다. 동물원에서 키운 곰을 지리산에 방사할 때 목에 전파발신기를 채우고 수신기를 이용해 방사한 곰이 어디에 있는지 추적한다. 수상한 전파 추적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하는데, 이때 꼭 필요한 것이 방향탐지기, 줄여서 방탐기(方探機)로 불리는 장비다.

    A방탐기로 수상한 전파가 오는 방향을 확인하고, 다른 곳에 있는 B방탐기로 확인해본 후, 두 방향을 교차시키면 어디에서 수상한 전파가 발생하는지 추정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나온 지점도 현장에 가보면 골목골목으로 이어진 복잡한 지역이거나 여러 층으로 포개진 아파트 지역일 수 있다. 따라서 현장에서는 이동 방탐장비를 이용해 또다시 정밀추적을 해야 한다.

    정통부의 중앙전파관리소는 전국을 상대로 수상한 전파가 나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 고정방탐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 고정방탐기들은 대개 88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에서 긴급 도입해 설치한 것이라 최신 장비로 교체해주어야 한다. 보다 개발이 용이한 것은 고정방탐기다.

    1999년부터 2001년 사이 정통부는 117억원을 투입해 ETRI로 불리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LG이노텍으로 하여금 고정방탐기를 개발토록 했는데, 두 기관은 2001년 말 예정대로 이를 개발했다고 보고했다. 이어 최근에는 5년간 115억원을 들여 국내산 이동방탐기를 개발하겠다며, 이를 위한 1차 사업비로 23억원을 배정해달라는 요구를 2004년도 예산안에 포함시켰다.

    북한과 치열한 전파전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이 고정방탐기를 개발한 데 이어 이동방탐기를 개발하겠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먼저 개발된 고정방탐기의 성능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향후 개발하겠다는 이동방탐기 사업도 빛 좋은 개살구가 될지도 모른다. 고정방탐기 사업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런 지적을 했다.

    “1988년에는 아날로그 방식의 휴대전화가 사용됐으나 지금은 CDMA의 디지털 방식이 보편화되었다. 문제는 국내에서 개발한 고정방탐장비가 디지털 방식은 추적하지 못하고 아날로그 방식만 추적하는 방탐기라는 점이다. 관계자들은 1980년대 후반에 사용됐어야 할 장비를 2000년대에 개발해놓고, ‘성공했으니 이번에는 이동방탐기를 개발하겠다’며 예산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렇게 국고가 낭비돼도 되는 것인가.”

    개발하려는 추적장비 웬 아날로그형?

    국책사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새만금 현상’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국책사업을 추진하기 전에는 일단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받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예산 결정이라는 방법으로 사업허가권을 가진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 이들은 가급적 사업비를 적게 보고한다. 그리하여 일단 예산이 배정돼 사업이 시작되면 서서히 사업비를 늘리는 식으로 본색을 드러낸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이미 투자한 게 너무 많으므로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새만금 현상이라고 한다(이는 새만금 사업이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와는 무관한 비유다).

    때에 따라서는 대마불사론을 펴며 질질 끈 사업이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현재 한국이 세계적인 통신대국이 된 것은 1980년대 개발한 TDX 전(全)전자교환기 덕분이다. TDX를 개발할 당시 ETRI를 비롯한 개발기관들은 거액의 개발비를 사용하고도 실패를 거듭해 대마불사론을 외치는 ‘돈 먹는 하마’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ETRI는 깨끗이 TDX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통신 한국’의 길을 여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비록 개발에 든 금액은 적지만 대마불사론을 원용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것이 방탐기 개발 사업의 오늘인 것이다. 11월12일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은 국회에서 북한공작조직이 한강 하구 북쪽에서 한국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해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 이의원은 이날 또 하나의 문제를 던져놓았는데, 그 문제는 방탐기 개발에 관여한 인사의 말을 통해 직접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은 도합 8년간 고정용(117억원)과 휴대용(115억원)을 합쳐 230여억원을 투입해 방탐기를 개발하겠다 한 것인데, 이는 웃기는 이야기다. 이미 개발됐다는 고정방탐기는 물론이고 앞으로 만든다는 이동방탐기도 아날로그용이다. 외국에서는 1000억원 이상을 투입, 10년 이상 연구를 해 디지털용 방탐기를 개발해냈다. 한국은 디지털 통신에 가입한 사람이 3200만명에 이르는 나라인데, 왜 거의 쓰이지도 않는 아날로그 통신을 위해 300억원에 이르는 돈을 써야 하는가. 이는 국책사업의 방향을 잘못 설정함으로써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권력 핵심부에서 일어난 일이 이틀 만에 북한 로동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다. 권력 핵심부에 북한의 끄나풀이 들어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빨리 북한에 국내 상황이 보고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북 간 전파전쟁에서 한국은 생각만큼 북한을 앞지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허점을 안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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