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4

2003.10.09

“그 돈이 그 돈, 차라리 나가서 치자”

  • 이조년/ 골프칼럼니스트 huskylee1226@yahoo.co.kr

    입력2003-10-02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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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돈이 그 돈, 차라리 나가서 치자”

    최근 골프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피지의 한 골프장. 인천공항에서 골프클럽을 신고하기 위해 줄 서 있는 여행객들(오른쪽).

    골프클럽을 소지하고 해외 골프투어를 나갈 때는 반드시 골프클럽을 공항 세관에 신고해야 한다.

    인천공항에서 골프클럽을 신고하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는 세계 어느 공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골프클럽을 세관에 신고하지 않고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올 때 적발되면 밀수꾼으로 오인받아 봉변당하기 십상이다.

    국세청은 세관 접수자료를 바탕으로 해외 골프투어를 나가는 골퍼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연 3회 이상 외국으로 골프여행을 다녀온 골퍼들이 무작위로 세무조사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골프여행을 자주 다녀왔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해외 골프여행에 대한 이 같은 제재에도 올 상반기 동안 약 5만명의 골퍼가 해외에서 라운드를 했다. 이런 추세라면 골프클럽을 신고하고 해외로 골프여행을 떠난 골퍼가 연말까지 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관련업계에선 골프클럽을 소지하지 않고 나가는 골퍼들을 포함하면 연 20만~25만명이 원정 골프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골프클럽을 소지하고 출국한 10만명을 제외한 사람들은 골프클럽을 렌털해서 라운드에 나선다. 하루 렌털 비용은 20달러 정도. 3일간 골프클럽을 빌려 쓰면 1인당 60달러를 쓰게 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처럼 쓸데없이 외화가 낭비되고 있다는 얘기다.



    세관신고제도는 실효성이 거의 없는 ‘미련한 짓’이 아닌가 싶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일 뿐더러 외화 유출을 오히려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더 이상 세관신고를 통해 골퍼들을 감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열악한 골프 환경이 골퍼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 골프를 한 번 치려면 보통 25만원이 든다. 3일짜리 골프 휴가를 즐기려면 적어도 75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75만원의 비용으로 동남아시아 국가에선 항공요금을 지불하고도 5회 정도 라운드를 할 수 있다. 그것도 좋은 호텔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가면서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외로 나가는 골퍼들이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국내의 골프 여건이 개선되지 않고, 세관신고제도가 계속 시행되는 한 골퍼들의 ‘몰래 골프투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외화를 쓰고 오는 골퍼들을 비난하기보다는 골프 대중화 시대에 걸맞은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더 시급하지 않을까.

    얼마 전 모 경제부처 공무원과 골프를 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실명으로 하기가 꺼림칙하다”며 이름을 바꿔 신청한 후 라운드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골프장은 공무원들로 넘쳐나고 있는데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골프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맞게 골프를 치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값싸게, 그리고 눈치보지 않고 편하게 라운드에 나설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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