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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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조 골동품에 방송사 놀아날 뻔

‘TV쇼 진품명품’서 7억원 감정 고려청자 알고 보니 1천만원짜리 … 北서 밀반출 후 中서 변조‘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10-01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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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조 골동품에 방송사 놀아날 뻔
    TV쇼 진품명품’(이하 ‘진품명품’). 시청자들이 집안 대대로 보관하고 있거나 우연찮게 구입한 골동품, 문화재들을 가지고 나오면 전문가들이 그 가격을 감정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때로는 억대에 달하는 진짜 문화재가 나와 패널들을 흥분시키기도 하고, 조상에게 물려받았다던 서화작품이 겨우 몇 천원짜리로 밝혀지기도 한다. KBS 제1TV의 이 프로그램은 일요일 오전 11시로 방영시간이 바뀌기는했지만 크게 기복을 보이지 않고 8년간 꾸준히 방송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진품명품’을 통해 고미술계 전체가 들썩거릴 만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부산의 회사원 박모씨가 감정을 의뢰한 고려청자가 무려 시가 7억원에 달하는 ‘상감청자 동채운학문매병’으로 감정된 것. 7억원은 그동안 ‘진품명품’에서 나온 감정 최고가인 5억5000만원을 훨씬 뛰어넘는 가격이다. 제작진은 이 청자의 어깨 부분에 들어간 진사(구리를 재료로 붉은색 문양을 넣는 기법)가 극도로 희귀한 것이어서 이처럼 높은 가격이 산정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8월29일 녹화된 이 최고가 경신 장면이 미처 방송을 타기도 전에 또 한 번의 해프닝이 일어났다. 문제의 청자가 9월23일 재감정을 통해 ‘겨우’ 시가 1000만원 정도의 변조작품임이 드러난 것이다.

    ‘진품명품’의 박용태 PD는 “이제까지 재감정을 거쳐 감정가가 바뀌는 해프닝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너무도 정교한 위작이라 감정위원들도 순간적으로 속았던 셈이다”라고 밝혔다. 박PD는 또 “의뢰인 역시 위작이라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재감정을 위해 도자기의 균열 부분을 긁어보겠다고 양해를 구했는데, 만약 의뢰인이 위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순순히 긁어보라고 허락했겠느냐. 의뢰인도 대단히 낙망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방송 전에 사실 밝혀져 그나마 다행



    변조 골동품에 방송사 놀아날 뻔

    TV쇼 진품명품’의 한 장면. 프로그램 관계자는 “재감정을 거쳐 감정가가 바뀌는 해프닝은 방영 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소장자인 박씨는 애당초 이 청자를 도자기 애호가인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소장 경위를 밝혔다. 그러나 사실 이 도자기는 두어 달 전 인사동 고미술상가에서 거래된 물건이다. 한국고미술협회의 김종춘 회장은 “이 도자기는 중국에서 들어와 인사동 상인들을 거쳐 현재의 소장자인 박씨에게 팔려나갔다. 당시 판매가는 2300만원 선이었다”고 밝혔다. 김회장의 말에 따르면 당시 이 청자를 거래했던 인사동 고미술상들은 진품이 아니라 중국에서 만들어진 변조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 ‘진품명품’의 감정위원으로 이 도자기를 감정했던 이상문 명품옥션 대표는 “감정을 하다 보면 100% 정확한 감정이 어려운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 도자기에는 균열이 간 부분이 적지 않았는데 사실 정확하게 감정하려면 균열의 수리 부분을 약물로 완전히 벗겨내야 한다. 청자가 제작되던 당시에 들어간 진사는 약물로 벗겨내도 손상을 입지 않지만 나중에 덧입힌 진사는 약물처리를 하면 벗겨진다”고 설명했다. 이대표는 이 도자기가 의심스러웠던 이유로 진사가 도자기의 몸체 전체에 퍼져 있지 않고 어깨의 구름 문양에만 들어간 점, 그리고 깨진 부분 주위에 중점적으로 진사가 들어가 있었던 점 등을 꼽았다. 재감정 과정에서 X-레이 촬영을 해보니 이물질이 묻어 있었고 균열 부분의 유약을 긁어본 결과 유약이 긁혀 나왔다고 한다. 진짜 고려청자는 칼끝으로 긁어도 유약이 묻어나오지 않는다. 이대표는 “‘진품명품’에 출연하는 4명의 감정위원들은 방송 전 물품의 사진을 보고 진품 위주로 감정할 작품을 택한다. 그러나 감정할 물건을 실제로 보는 것은 방송시간뿐이어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변조 골동품에 방송사 놀아날 뻔

    감정가가 7억원으로 매겨졌다 변조작임이 밝혀진 문제의 고려청자.

    그렇다면 문제의 도자기가 ‘가짜’인데도 1000만원의 가격이 매겨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이 도자기가 근래에 만들어진 위작이 아니라 실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에 진사를 덧입혀 상품가치를 높인 ‘변조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종춘 회장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청자의 깨진 부분에 진사를 넣고 메운 변조 작품이다. 진사는 청자 중에서도 귀족들이 사용하던 최고급품에만 들어가는데 ‘진품명품’에 나온 문제의 청자는 형태상으로 볼 때 서민들이 사용하던 중급 청자였다”라고 말했다.

    중국에선 골동품 변조 전문가들 기승

    그렇다면 이 도자기는 과연 어디서 어떻게 변조된 것일까? 경기대 김대하 대우교수(전통예술대학원 고미술감정학과)는 이 도자기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어와 중국의 ‘변조 전문가’에 의해 변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밝혔다. 북한에서 고려청자가 주로 발굴되는 지역은 개성을 중심으로 한 황해도 인근이다. 고대 유물 발굴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북한에서는 휴전선 인근 군사지역에서 군사작전 도중 우연히 고려청자를 발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발굴된 고려청자들 중 많은 수가 중국으로 밀반출된다. 북한 정부는 외화벌이 차원에서 고려청자의 밀반출을 묵인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고려청자들이 중국의 ‘변조 전문가’들에 의해 수십, 수백 배의 희소가치가 있는 변조작품으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사실. 인사동 고미술상들에게 이 같은 ‘북한산 변조작’의 존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변조 골동품에 방송사 놀아날 뻔

    ‘진품명품’을 통해 거액의 가격이 매겨진 문화재들. 5억5000만원으로 감정된 병풍 ‘헌종가례 진하계병’(왼쪽). 3억원으로 감정된 해시계 ‘강윤제 휴대용 앙부일구’.

    “중국의 변조기술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수준입니다. 문헌을 보면 중국은 송나라 시대부터 변조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 역사로 보면 고려 초기에 변조가 이미 시작된 거죠. 도자기 외에 청동기나 서화를 변조하는 일도 많습니다. 청나라 황실에서는 아예 옛 문화재들을 정교하게 모방하도록 지시했다고 해요. 이 같은 변조작들은 18세기 이래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으로도 다수 나갔습니다. 심지어 유럽 굴지의 박물관에 중국산 변조작들이 소장되어 있는 경우까지 있죠.” 김대하 교수의 말이다. 김종춘 회장 역시 문제의 도자기가 북한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문제는 이 같은 중국 변조 전문가들의 변조작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는 추세라는 것. ‘진품명품’이 저지른 실수가 바로 그 증거인 셈이다. 변조작을 요구하는 수요도 있다. 인사동 고미술상들의 귀띔에 의하면 한국측 인사의 사주를 받고 중국 변조 전문가들이 북한산 도자기를 고가품으로 변조해주는 ‘커넥션’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상문 대표는 “이번 일로 인해 국민들에게 정교한 변조작들이 예상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 그나마 수확인 셈”이라고 말했다. 김대하 교수는 “변조작들의 수준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는 이상, 감정 역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며 국가가 인정하는 감정사 자격증제 도입 등 감정의 과학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역시 “국가에서 문화재 감정위원회를 구성해서 이들이 소신껏 감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품명품’ 팀이 재감정을 위해 도자기를X-레이 촬영하러 간 곳이 문화재 관련 기관이 아니라 한 정형외과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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