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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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00억원을 한 회사에 대출해줬나

㈜계몽사 사기대출 사건 갈수록 의문 … 썬앤문 그룹 회장 연루 철저 무시 상식 이하(?)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3-10-01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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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100억원을 한 회사에 대출해줬나

    구조조정이나 경매 부동산을 매개로 사업을 확장해온 썬앤문 그룹에 대한 의혹은 새정부 출범 이후 계속됐다. 농협대출 사기를 두고 회장과 전직 부회장이 벌이는 진실싸움의 파문이 점차 확대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당시 지점장님은 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농협중앙회(이하 농협) 직원은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피했다.

    4월3일 농협 서울 원효로 지점장이던 J씨는 대기발령을 받으며 지점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후 이어진 감사 결과 해직됐다. 정확한 해직 사유에 대해 농협측은 공개를 거부하고 있으나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37회에 걸쳐 ㈜계몽사에 대출된 115억원을 사기당했기 때문이란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금융권은 골프장 회원권을 분양받은 것으로 꾸며 이를 담보로 진행된 대출이 완전한 사기행각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또 그것이 장기간에 걸쳐 아무런 제지 없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사건의 배후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더구나 이 사건이 주목을 끈 까닭은 사기대출 논란에 휩싸인 인물들 때문이다. 대출금을 받아 사용한 것으로 지목된 이는 홍승표 회장으로부터 ㈜계몽사를 인수한 ㈜보나페이의 김성래 회장이다. 그리고 사기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담보로 사용된 양평 TPC골프장 회원권의 주인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호텔사업을 벌여 신흥재벌로 급부상한 썬앤문 그룹의 문병욱 회장과 자회사인 ㈜대지개발의 문병근 사장 형제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구속된 김회장은 대출이 이뤄지던 순간까지 썬앤문 그룹의 부회장 직함을 사용했을 만큼 문씨 형제의 친밀한 동반자였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부동산 경매 시장과 벤처업계의 큰손으로 군림하며 모기업인 썬앤문을 국내 굴지의 호텔ㆍ레저 회사로 성장시켰다.

    이례적으로 가압류 풀어준 농협



    그런데 3월11일 이후 이들은 서로의 약점 잡기에 혈안이 돼 고소와 맞고소가 이어지는 분쟁에 휩싸였다. 외부인들의 눈에는 단순히 썬앤문 그룹의 주도권 싸움으로 비쳤겠지만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고 정치권으로까지 파문이 확산되자 이 사건 뒤에 숨은 정치적 음모와 배신에 대한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우선 농협의 행보가 의구심을 자아냈다. 사기대출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농협은 사기를 당한 해당 지점장을 해임하고 구상권을 행사하겠다고 장담했으나, 의외로 피해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농협은 문회장측이 사기 혐의로 김회장을 고소한 4월4일, 수원지법 여주지원을 통해 양평 TPC골프장에 대해 115억9400만원의 가압류 조치를 신청했다. 위조서류에 의한 대출이었지만 김회장이 썬앤문 그룹 부회장을 역임했고, 양평 TPC골프장 골프장 회원권이 대출 근거였기 때문에 이 같은 조치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7월1일 농협은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골프장에 대한 가압류 조치를 말소시킨 것.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 여신부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우리는 문회장이 김회장의 사기행각을 묵인했다는 사전 공모관계가 밝혀질 때만 골프장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봤다. 결국 우리의 권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가압류를 말소했지만 언제든 소송을 통해 다시 가압류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농협 감사과에 근무했던 관계자도 “우리가 사기를 당했기 때문에 골프장에 대한 정당한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은 금융권은 물론이고 사건 관계자들한테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진위 여부를 따지는 사건에서 1심도 끝나기 전에 농협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 이렇게 쉽게 가압류를 풀어줄 경우 이후 소송에서 농협측이 불리한 입장에 처할 것이라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왜 100억원을 한 회사에 대출해줬나

    농협에 가압류됐던 양평 TPC골프장 등기서류. 1심 재판이 한창 진행중이던 7월1일 이 골프장에 대한 가압류가 해제된 이유에 대해 의혹이 일고 있다.

    처음부터 이번 사기대출 사건은 상식적인 범주를 넘어선 일이었다. 대출을 청구한 김회장이 양평 TPC골프장의 모기업인 썬앤문 그룹의 부회장이었다 하더라도, 골프장의 실소유주인 ㈜대지개발에 확인 한번 하지 않고 단지 위조된 이사회 의사록, 근보증서, 납입영수증만으로 100억원대의 대출이 이뤄졌다는 것은 금융권의 생리상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 농협의 한 관계자 역시 “아무리 담보가 확실하더라도 일개 지점장의 독단으로 100억원이 넘는 돈을 한 회사에 집중 대출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더구나 3월11일 이후 사기대출 사실을 알아챈 문회장이 김회장과의 협상을 통해 채권 보전책에 대한 합의서를 만든 사실도 의혹을 부추긴다. 당시 김회장은 자신이 갖고 있던 회사주식과 건물을 포기함으로써 ㈜계몽사를 지킬 의지를 분명히 나타냈는데도 고소가 이뤄졌고 결국 부도로 이어졌다.

    또한 협상 이후 3월 말까지 농협 대출이 지속된 사실은 단순히 위조서류를 통해 이루어진 대출이 아니었다는 추측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김회장을 고발한 문회장 또한 농협 대출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김성래씨 정치인 거명 수사 압박

    그러나 검찰의 칼날은 문회장을 비켜갔다. 서울지검 조사부에서 양평 TPC골프장 관련 수사를 시작한 것은 2001년 ㈜계몽사의 계열회사인 영아트개발이 썬앤문에 골프장을 팔아 넘기면서 불거진 배임사건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발생 초기부터 김회장측의 정치인이 관련됐음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진술과 홍승표-오현경 부부의 화제성으로 인해 폭발력이 컸음을 고려할 때 수사가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사건이 특수부로 배정되지 못한 점과 관련 검사가 문회장의 근거지인 이천과 양평을 관할하는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을 지낸 검사라는 사실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또한 김회장이 폭로한 각종 문회장 관련 비리 사건이 속 시원히 해결되지 못한 점도 의문으로 남는다. 김회장은 사건 초기 새 정부 관련 정치인을 거명하며 수사를 압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아직도 농협 대출금 115억원에 대한 계좌추적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지검 조사부 소병철 부장검사는 “수사 이후 정치인 관련설 및 대출압력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수사한 일도 없다”며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계몽사가 농협을 상대로 벌인 사기대출 사건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으며 수많은 의혹을 남겼다. 1심 재판이 끝나는 10월 말 어느 정도의 진실이 가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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