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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간판과 디자인’ 전

세련된 ‘도시의 얼굴’ 너무 부러워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세련된 ‘도시의 얼굴’ 너무 부러워

세련된  ‘도시의 얼굴’  너무 부러워

독일 로텐부르크 거리(큰 사진). 언뜻 보면 간판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빨간색 자동차를 비롯해 거리 곳곳에 간판들이 교묘히 숨어 있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의 도시 환경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도시인들부터가 공감하고 있다. 빽빽한 빌딩숲과 항상 차로 꽉 찬 도로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도시의 풍경은 왜 이리 삭막하고 어지러운가. 빌딩 꼭대기에는 영상 광고판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밤이면 현란한 네온사인으로 도시 전체가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인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리는 ‘간판과 디자인’ 전은 이 같은 우리의 도시환경에 작은 물음표를 던진다. 그리고 ‘이렇게 한번 고쳐보자’고 제의한다. 2000년에 열린 ‘간판을 보라’ 전이 우리 도시환경의 문제점을 제기했다면, 이번 전시는 그 후속타 격이다.

‘보기 좋고 알기 쉬운 간판’ ‘아름다운 거리의 빛깔’ ‘간판의 공공성’ ‘시각 장애인을 위한 간판’의 네 가지 주제로 나뉘어진 이 전시는 우리 도시 간판들이 왜 무조건 크고 번쩍거리기만 하는지, 건물 전체가 간판으로 뒤덮인 경우는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지, 외국의 간판들은 어떻게 거리 전체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등등을 보여준다. 그래서 전시장 안은 여느 디자인전과는 달리 국내외 도시들의 전경 사진과 도표들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보는 전시라기보다는 공부하는 전시,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전시다. 예술의전당측도 “행정 담당자나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와서 봐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세련된 디자인 작품을 감상하려 했다면 실망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차를 타고 달리면서 보이는 간판의 이미지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간판들을 직접 실험하면서 우리의 도시환경을 되짚어볼 수 있다.

우리 도시환경 바로 보는 기회

“우리나라 간판의 디자인이 최근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는 이 예쁜 간판들이 거리의 분위기, 도시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판이 주변의 환경과 어떻게 하면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가 이번 전시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죠.” 전시 큐레이터인 예술의전당 문창국 과장의 말이다.



디자이너들은 흔히 ‘좋은 간판은 눈에 안 보이는 간판’이라고 말한다. 즉 꼭 필요한 사람의 눈에만 띄고 다른 사람에게는 띄지 않아야 정말 뛰어난 간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의 간판들은 하나같이 크고 번쩍거리는 데다 한눈에 척 알아볼 수 있는 단순한 구조다. 이는 매사를 빨리빨리, 화끈하게 해치우는 우리 민족성과도 연관이 있다.

“문제는 모두들 자신의 간판을 더 크고 눈에 잘 띄게 만들려 하다 보니 점점 무질서하고 복잡해져서 나중에는 아무 간판도 안 보이는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는 점이죠. 심지어 눈에 띄기 위해 간판을 거꾸로 매다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전시기획자인 김영미 숙명여대 기업정보디자인센터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세련된  ‘도시의 얼굴’  너무 부러워

서울의 밤거리(큰 사진). 너나 할 것 없이 큰 간판을 달아 어떤 간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반면 우리보다 간판의 역사가 오랜 서구의 도시들은 간판과 도시환경을 조화롭게 공존시킨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이처럼 ‘그림 같은’ 서구의 간판들을 보는 데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한 영화 광고는 빌딩 외벽 전체에 벽화처럼 붙어 있다. 푸른색의 포스터는 푸른색이 주조를 이룬 도시의 이미지와 큰 무리 없이 어울린다. 광고가 보다 아름다운 도시환경을 창조해낸 셈이다. 요즈음 서울 거리의 문제점으로 떠오른 대형 영상광고판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건물 전체가 간판으로 덮여 있기가 예사인 우리 도시에 비해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에서 간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거리의 간판들은 대단히 교묘하게, 그리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숨어 있다. 공구상점에는 끌과 망치 등 공구 도안이 글자 대신 달려 있고 구둣방에는 구두가, 모자가게에는 모자가 매달려 있기도 한다. 이 간판들은 ‘모자’나 ‘공구’ 같은 재미없는 글씨보다 훨씬 더 인상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독일 로텐부르크의 한 선물가게는 아예 간판 대신 빨간 클래식 카 한 대를 선물처럼 꾸며 가게 앞길에 주차시켜 두었다. 이 역시 훌륭한 ‘간판’이다. 지붕 위에 선물들을 가득 싣고 있는 클래식 카를 보면 절로 그 가게 안으로 발길이 향할 것 같다.

많은 국가들은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건물 외벽의 간판 형태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파리의 경우 건물의 1, 2층 사이에만 간판을 달 수 있으며 보스턴도 건물 상층부에는 간판을 달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서울시 역시 여러 가지 법안으로 간판의 난립을 막으려 하고 있지만 규제를 위한 규제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빨간색 규제’ 해프닝은 그 대표적인 경우다. 현재 서울시는 간판 전체 면적의 2분의 1 이상 ‘적색’을 써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정해 간판에 빨간색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이 조례 발표 후 서울 거리는 주황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빨강 속에도 채도에 따라 수많은 색깔들이 존재하는데 무조건 ‘빨강은 안 된다’는 식의 규제가 별다른 실효성을 거둘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간판 문제는 개인의 재산권 행사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단시일 내에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관이 개입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다만 내 재산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간판이 아니라 도시의 공공환경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간판이 된다면 모두가 이기는 윈-윈 게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영미 연구원은 “일본도 1964년 도쿄올림픽 직후 간판과 도시 미관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겨우 몇 년 전에야 각 지자체별로 도시 고유의 색과 이미지를 정하기 시작했다”며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예술의전당은 자체 간판 정비 사업에 들어갔다. 붉은색의 큰 입간판을 철거하고 ‘휴먼 스케일’에 맞는 작은 간판으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흔히 도시의 얼굴이라고 불리는 간판. 이제 우리는 한껏 화려하게 꾸민 얼굴 대신 은은하고 우아하게 치장한 우리 도시의 얼굴을 보고 싶다.





주간동아 367호 (p76~77)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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