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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 사면 기대 ‘배 째라’ 너무해”

빚 받아 주는 ‘채권추심원’ 24시 … 거액 숨기고 ‘오리발’ 채무자도 부지기수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신용 사면 기대 ‘배 째라’ 너무해”

“신용 사면 기대 ‘배 째라’ 너무해”

빼곡이 적혀 있는 채무자 명단(위)과 불시에 채무자 집을 찾아 문을 열고 있는 채권추심원.

”열심히 빌려 쓰셨으니까 이젠 열심히 갚으셔야죠?”

“채무자가 또 잠적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좋은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12월26일 오전 8시30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 고려신용정보 3층 채권관리팀. 채무자와 채권추심원, 채권추심원과 채권자의 통화로 사무실은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경력 8년차의 베테랑 채권추심원 김형균씨(34)는 ‘금일 계획’을 수첩에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11:00 실사, 13:00 집행, 15:00 집행, 독촉전화, 입금 확인…’. 수첩에 가득 적힌 일정을 모두 소화하려면 오후 9시까지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투자한 시간이 곧 급여와 연결되는 터라 출근 후 동료들과 잡담을 나눌 틈조차 없다. ‘돈 받을 사람’ 명단과 파일을 꼼꼼히 챙긴 김씨는 변제금을 입금하기로 한 채무자에게 일일이 재확인 전화를 하고 만나기로 한 채무자들에게도 다시 한번 ‘컨펌’을 했다.

과거엔 채권자를 대신해 빚을 받아 주는 사람들을 ‘해결사’라고 불렀다. 언뜻 조직폭력배가 연상되는 표현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카드발급과 가계대출이 늘면서 ‘빚 받기’가 반듯한 고소득 직종으로 주목받고 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 전문적으로 채권을 회수하는 사람들을 ‘채권추심가’ 혹은 ‘채권추심원’이라고 부른다.



LG 삼성 국민 등 대형 카드사들은 대략 1000명 이상의 채권추심원을 두고 있고, 순수민간투자 추심업체만 9개사에 이른다. ‘BJR(배 째라)’와 ‘MDR(맘대로 해라)’로 무장하고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채권추심원들의 추적을 피하는 연체자 채무자와 채권추심원들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이 시간에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2월26일 오전 김씨가 ‘실사’를 나간 곳은 안성에 공장을 두고 있는 한 제조업체의 ‘비밀 사무실’. 법인 등기부등본을 열람해 공장과 서울사업소를 찾았지만 업체 대표 K씨의 소재는 오리무중이었다. ‘추적’이 지지부진하던 터에 간신히 법인차량의 주소지를 알아내 채무자를 찾아가는 길이다. 김씨는 “K씨의 채무액은 2000여만원 정도인데 다른 빚도 많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서울 강남구 ××동 680번지 1호’ 지도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꼼꼼히 다시 확인해보지만 30분을 헤맸는데도 좀처럼 사무실을 찾을 수 없다. “지번이 이렇게 엉망이라니까요. 강남이 이 정도니 ‘산 1번지에서 1234호 찾기’는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나 다름없어요. 5~6시간씩 번지수와 씨름한 적도 있습니다.”

“귀찮게 하기는 옛말 … 심리전술 필요”

김씨는 채권추심원이 되기 전까지 의류업체에서 지점 관리를 하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당시에 지점 채권회수 일을 맡았던 인연으로 추심업체에 발을 들여놓았다. 김씨가 1년에 회수하는 금액은 6억원 정도로 성과에 따라 받는 연봉은 6000만원 가량이다. 회사 내에서 중상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는데, 전 직장과 비교하면 수입이 갑절로 는 것이라고 한다.

‘실사’에 실패한 김씨는 서둘러 점심을 때우고 ‘집행’이 있는 안양으로 향했다. 이날 ‘집행’은 개인채무자로부터 압류한 가전제품과 가재도구에 대한 감정 작업. 승용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전화벨이 다시 울려댄다. 채권자한테서 걸려온 독촉전화다. 그는 “채권자들한테서 걸려오는 전화가 가장 큰 스트레스”라며 “우리가 무슨 해결사인 줄 아는지 3~4일 내에 빚을 받아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 바람나 집 나간 아내를 찾아달라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단다.

안양에 사는 채무자 J씨는 집의 등기를 아내 앞으로 옮겨놓은 뒤 2000여만원의 돈을 갚지 않고 ‘배 째라’로 일관하는 경우. 여러 번 독촉전화를 하고 방문도 했지만 빚을 갚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압류 절차를 밟은 것이다. ‘집행’을 할 때는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찾아가는 게 원칙이다. 채무자들이 알면 물건을 빼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열쇠로 열고 들어가 ‘집행’을 마친 뒤 다시 문을 잠그고 나오면 그만이다. 김씨는 “과거처럼 ‘귀찮게’ 하는 방식으로 일하면 곧바로 감독기관에 신고가 들어간다”며 “채권 추심은 고도의 심리적 전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정하는 데는 10분 가량 소요됐다. 냉장고 10만원 텔레비전 5만원 하는 식으로 순식간에 값이 매겨진다. 김씨는 “J씨의 물품에 대한 감정가는 100만원 남짓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가재도구에 대한 압류는 대부분 ‘압박용’이다. 집안 물품에 압류딱지가 붙게 되면 자식들 보기 부끄러워서라도 돈을 갚는다는 것. 친지나 친구 집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엔 채무자가 사용하는 방의 물품을 모두 압류한다. 가족과 이웃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집행’은 채권추심원들이 가장 꺼리는 일이다. 이날도 노모와 아이들이 지키고 있는 집을 헤집고 다닌 게 영 찜찜한 표정이다.

“신용 사면 기대 ‘배 째라’ 너무해”

대형 카드사들은 1000여명 이상의 채권추심원을 두고 있다.

서울 사무실로 돌아온 김씨는 본격적으로 ‘전화 작업’에 들어갔다. 채권추심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물론 배째라족이다. ‘돌려막기’ 등이 곤란해지면서 갚을 돈이 없어 파산상태인 사례도 있지만 돈이 있는데도 개인채무자 구제방침 등에 기대어 버티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개인워크아웃제도가 도입되면서 배째라족이 더욱 늘었고, 신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인 신용 사면을 기대하며 ‘빚 갚기’를 거부하는 모럴 해저드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채무자를 배째라형, 오리발형, 양치기소년형, 회피형, 읍소형, 노력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배째라형은 당연히 카드사와 채권추심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타입. 재산을 친구나 친지의 이름으로 은닉해 놓고 무조건 갚을 돈이 없다고 우긴다. 고단수 배째라형의 경우엔 압류당해 경매에 나온 물품 혹은 부동산을 친구 이름을 빌려 되살 정도로 치밀하다. 이들은 재산도 명의이전, 가등기, 근저당 설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숨겨놓아 채권추심원들의 애를 먹인다. 벤츠 등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면서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들도 종종 있다.

양치기소년형은 “다음 주까지 갚겠다” “한 달 안에 갚겠다”를 연발하며 시간을 끄는 타입. “지금 은행 앞이야. 10분만 기다려보게”라고 너스레를 떠는 채무자도 부지기수다. 회피형은 독촉전화를 무조건 피하는 스타일이다. 최근 휴대폰 발신전화 표시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회피형 연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읍소형의 경우는 실제로 돈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채권추심원들을 안타깝게 한다. 노력형은 하루 단위, 일주일 단위로 꼬박꼬박 돈을 갚는 ‘모범 채무자’들이다.

목소리 크거나 싸움 걸면 갚을 능력 있어

김씨는 채무자의 특성에 맞춰 목소리 톤을 바꿔가며 통화를 했다. 채무자의 유형에 따라 돈 받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목소리가 크거나 싸움을 걸어오는 사람은 돈 갚을 여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재산이 전혀 없는 실업자나 회사가 부도난 경우에는 재산 추적을 하며 장기전에 돌입한다. 재산 추적 노하우에 대해 추심원들에게 물으면 한결같이 ‘노코멘트’라고 답한다. 금융자산 등 채권추심원들이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을 편법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재산이 없다고 판단되면 매월 채무의 일부를 할부식으로 변제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버는 족족 받아내는 셈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거부하면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에서 채무자들을 ‘귀찮게’ 하는 것이다.





주간동아 367호 (p42~43)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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