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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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동교동 “아 옛날이여”

개혁파 퇴진 압력에 무기력한 저항 … 한화갑 대표 2선 후퇴 약속 ‘몰락의 전주곡?’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1-02 12: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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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끝 동교동 “아 옛날이여”

    2002년 12월25일 한화갑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대표직 사퇴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몰락의 위기가 가져다준 부담감 때문일까. 동교동 좌장,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마침내 눈물을 흘렸다. 2002년 12월2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 재야 출신인 심재권 의원이 “그동안 애타게 당을 지켜온 한대표에게 물러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청을 돋우자 “그만 하라”며 제지하던 한대표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의총장 뒷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광옥 최고위원, 김옥두 박양수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도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30년 한국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던 동교동계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잔치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민주당에 ‘칼바람’이 인다. 칼바람을 주도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개혁세력은 선명한 개혁깃발을 들고 당내 세력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승자가 걷는 당연한 수순이다. 그 앞에 동교동계가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이하 후단협)도 예외는 아니다. 개혁세력은 그들을 낡은 정치세력으로 분류한다. 그들을 ‘걷어내야’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고 본다. 개혁과 정치대변혁이란 명분으로 포장했지만 그 속에는 냉정한 권력의 법칙도 숨어 있다. 이긴 자가 주류로 서는 것은 권력세계의 불변의 법칙이다. 그러기에 구주류인 동교동계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전불사를 외치며 결사항전에 나선 동교동계 주변에서는 과거의 힘이나 위엄을 찾아보기 힘들다. 외부환경도 생각보다 척박하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선거 전과 후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며 고통과 번민의 지난 며칠을 회고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선 이후 동교동계는 겹치는 악재에 숨돌릴 틈이 없다.

    최근 통원치료를 받던 권노갑 민주당 고문이 사실상 정계은퇴 의사를 밝혔다. 대선 직후 나온 그의 은퇴 의사를 동교동계 인사들은 미리 귀띔 받았다고 한다. 한 측근이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만류했지만 권고문은 “더 이상 끌려다닐 수 없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미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전락했지만 그의 정계은퇴 선언은 가뜩이나 불안한 동교동계를 자극할 수 있는 악재였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청와대(DJ) 의중은 무엇인가”라며 밀사를 보내자는 제안을 내놓았다가 “정치와는 담을 쌓는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란 다른 인사의 설명에 입을 다물었다. 임기가 끝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병풍역을 맡을 수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동교동계의 실질적인 좌장인 한대표 주변에 특히 악재가 겹친다. 한대표는 대선 직후 김대통령의 업적과 그동안의 역할을 강조하며 “DJ 정부의 성공적 임기 마무리에 힘을 보탰다”고 자평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직후 조순형 신기남 의원 등 개혁파 의원들은 DJ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규정했다. 한대표의 한 측근은 이를 “뒤통수를 때리는 악의적인 행위”로 해석했다.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제안했다. 손도 안 대고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을 무장해제시키겠다는 의도다. 나아가 이들은 김대중 정권 부패 및 실정세력 책임론도 제기했다. 이 보고를 받은 동교동계 한 중진의 첫 반응은 “이놈들이…”였다.

    공천 따내려 자주 찾던 의원이 이젠 만남조차 거부

    한대표의 눈물은 냉정한 권력 법칙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다. 내분과 배신으로 인한 자괴감이 눈물샘을 자극한 면도 없지 않다. 범동교동계로 분류되던 한 인사는 개혁파들의 주장이 거세지자 동교동계와 거리를 두는 ‘스탠스’를 취했다. 2000년 공천을 따내기 위해 한대표 자택을 부지런히 드나들던 모 의원은 대선 후 한대표의 부름에 선약을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난망해하는 동교동계에 시대적 요청과 대세론을 명분으로 한대표의 2선퇴진론이 날아들었다. 이긴 자의 밀지를 갖고 온 인사는 다름 아닌 한대표의 측근으로 활동하던 인사였다.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며 울분을 토해내지만 귀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칼자루를 쥔 개혁파들은 오히려 고삐를 죄며 동교동계를 압박한다. 그들은 과거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새로운 잣대를 들이댄다. 물론 선두에 선 사람은 노당선자다. 그는 “가치지향이 분명한 사람이 윗자리에 가야 한다”며 주류사회의 교체를 은연중 시사한다. 정치적 이념이나 살아온 길을 중시하는 노당선자의 인사관(人事觀)을 기준으로 보면 동교동계는 ‘구악’이자 ‘낡은 정치’의 상징이다. 개혁파들은 “인적 청산이 없으면 미래가 없다”며 동교동계가 무릎 꿇을 때까지 몰아붙일 태세다. 동교동계와 후단협은 그물에 걸린 고기에 비유된다.



    개혁 성향의 의원들은 개혁 성공을 위해서는 확실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혁파들은 정치변혁이라는 민심에 부응하지 않고는 5년의 노무현 정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노당선자의 개혁 의지를 전면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당내 권력을 장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동교동계와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인 후단협을 ‘처리’해야 한다는 확실한 계산서를 손에 쥐고 있다. 특히 개혁파들은 이번 대선을 통해 지금의 동교동계, 즉 ‘호남당’으로는 지역주의 청산이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벼랑끝 동교동 “아 옛날이여”
    개혁파의 강경노선은 단순히 개혁의 속도와 절차만을 둘러싼 대결이 아니다. 그 속에는 신흥주류로 부상하기 위한 개혁세력의 권력에 대한 욕망도 꿈틀거린다. 차기 정권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권력다툼이다. 당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동교동계, 특히 대표 원내총무 등 주요 당직을 독점하고 있는 동교동계를 무장해제 시켜야 신흥세력의 등장이 가능해진다. 선대위를 해체하면 노당선자가 천명한 당정분리 원칙에 따라 당은 다시 이들 손에 맡겨진다. 노당선자가 청와대로 들어가는 순간 정치 주도권을 뺏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기에 정면대결로, 그것도 속전속결로 처리하자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동교동·후단협 공동 보조 … 묘수 찾기는 힘들어

    당연히 동교동계의 위기감과 반발은 거세다. 한대표는 후단협과 공동 보조를 취하며 대응에 나섰다. 정균환 총무와 한광옥 최고위원 등도 세(勢)대결을 준비한다. 정총무는 12월26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한 음식점으로 이윤수, 설송웅 의원 등 후단협 멤버 12명을 부부동반으로 초청, 오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점령군같이’ ‘한국의 탈레반’ 등 격한 표현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교동계의 저항은 너무나 무기력하다. 반발을 위한 반발 이외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26일 한대표가 차기 당권 포기 입장을 재확인한 것은 현실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다. 한 측근은 “백기항복에 가까운 것”이라고 자조한다. 그러나 강경파의 ‘즉각 사퇴’ 요구는 일축했다. “2선 후퇴를 약속할 테니 퇴로는 열어달라”는 주문이자 협상 제의다. 그러나 물러나는 자의 마지막 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개혁파 인사들은 새해 초부터 더욱 강경한 당내 개혁작업을 전개할 태세이기 때문이다. 개혁파들은 신년 초부터 인적 청산 프로젝트를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그 속에는 김대통령의 측근과 장남 김홍일 의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상자기사 참조).

    노당선자는 지역구도 타파를 자신의 ‘정치 브랜드’로 삼아왔다. 집권하면 지역구도만큼은 반드시 타파하겠다는 것이 노당선자의 일관된 의지다. 노당선자는 그 승부처로 2004년 총선을 생각하고 있다. 노당선자는 26일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을 제의했다. 큰 명분을 내건 한판 승부에 능한 노당선자는 여기에 개헌 카드까지 곁들였다. 그만큼 노당선자는 2004년 총선에 승부수를 띄웠다는 의미다. 지역구도 해소라는 정치적 명분은 민주당의 총선 승리라는 정치 현실과 이어진다.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영남 의석을 독식하는 상황이 재현될 경우 민주당의 과반 의석 달성은 매우 어려워진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국회를 지배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노당선자가 목표하는 각종 개혁은 입법과정에서 차질을 빚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역대 최약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섬뜩한 전망을 이미 던져놓은 상태다. 노당선자측은 그래서 당내 개혁에 더 집착한다. 개혁세력들도 민주당의 1월이 온통 전쟁터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26일 63빌딩에서 모임을 가졌던 한 동교동계 인사는 “상도동계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자던 동교동계가 어쩌다가…”라며 장탄식을 쏟아냈다. 5년 전 상도동계가 갔던 그 길을 가고 있는 동교동계는 ‘역사는 돌고 도는 것’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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