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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단일후보 물어본 까닭은

민주당 미디어본부 ‘역전 드라마’ 막전 막후 … “TV 찬조연설 현역 의원 왕따시켜 완승”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일요일에 단일후보 물어본 까닭은

일요일에 단일후보 물어본 까닭은

2002년 12월26일 민주당사에서 ‘주간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한길 전 의원.

2002년 9월 중순 서울시내 한 커피숍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김한길 전 의원이 만났다.

노당선자는 민주당 서울 구로을 지구당위원장인 김 전 의원에게 “대선 때 미디어본부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김 전 의원은 1997년 김대중 후보 TV토론대책팀장, 방송위원회 사무총장, 문화관광부 장관, 오랜 방송출연 경험, 베스트셀러 작가 등 미디어 분야에선 ‘독보적 경력’을 갖고 있었다. 김 전 의원은 노당선자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노당선자는 김 전 의원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TV토론 할 때 분장도 중요하다면서요?” 김 전 의원은 “분장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TV토론에서는 ‘이미지’가 아닌 ‘이슈’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이 답변은 노당선자를 흡족하게 했다. 이후 노당선자는 전속 분장사를 두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후보가 됐다. 대선후보 TV토론 때 한 방송사측은 당연히 대선후보측이 분장사를 데려오는 줄 알고 분장 준비를 하지 않았다. 노당선자는 토론장 주변에 있던 한 여성의 화장품을 빌려 분장했다.

미디어선거특별본부장을 맡은 김 전 의원은 선거기간 동안 노당선자 진영의 대표적 ‘전략가’로 통했다. 그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에 걸친 ‘노무현 역전 드라마’의 이면을 소개했다. 9월 중순 김본부장은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 처음 합류했다. “지더라도 정정당당하게 져서, 제대로 된 야당이 돼보자”는 말이 회의에서 자주 오갔다. 당시 노당선자의 지지율은 20% 아래로 처져 있었다. “앞으로 ‘진다’는 말은 하지 말자. 선대위는 선거에서 이기려고 만든 조직 아니냐.” 한 본부장이 제안했다. ‘만약 진다면~’이라는 말 안 하기. 민주당 선대위의 첫번째 원칙이 됐다.

‘낡은 정치 청산’ 함정 철새 잡혀



이 무렵 민주당 선대위에선 ‘탈DJ’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이해찬 의원 등 일부 본부장은 반대했다. 반면 신기남 의원 등 정치개혁추진위원회 멤버들은 ‘탈DJ’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내부에선 이들을 ‘탈레반’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본부장이 “민주당이 탈DJ 한다고 해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보다 더 탈DJ 할 거라고 국민들이 보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목에서 민주당 선거전략은 발상의 전환을 맞았다. 심야회의에서 김한길 본부장은 ‘3김+이회창’을 낡은 정치로 규정해 ‘낡은 정치 청산’을 선거 쟁점화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한 달 뒤 본격적으로 의원 영입에 나선 한나라당과 이후보는 ‘철새정치당’ ‘잡탕당’이라는 역풍에 직면했다. 민주당이 쳐놓은 ‘낡은 정치 청산’의 함정에 스스로 걸려든 것이다.

노당선자가 이후보를 역전한 결정적 계기는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와의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였다. 후보단일화 협상 과정에선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속출했다. 통합21측은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이후보 지지율이 그 무렵 각 언론사 여론조사의 이후보 평균 지지율(35%) 아래로 나올 경우 단일화 여론조사를 무효로 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런데 갑자기 통합21측은 이후보 지지율이 이후보 최저 지지율(30%) 아래로 나올 경우에만 무효로 하자며 훨씬 완화된 조건을 제시했다. 통합21측은 노무현, 정몽준 후보 간 양자 TV토론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정후보가 토론을 더 잘했다는 답변이 많이 나오자 조건을 완화한 것이었다.

민주당은 통합21측 제의를 수용했다. 토론회 다음 날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노후보가 토론을 더 잘했다는 답변이 더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노-정 TV토론에 대해 다음 날 조간신문들이 “노후보가 안정감을 보였다”고 평가한 점이 시청자들 판단에 영향을 준 것이다. 민주당은 ‘시청자들은 다음 날 신문의 보도 경향을 참고해 TV토론에 대한 최종평가를 내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요일에 단일후보 물어본 까닭은

민주당과 국민통합21 후보단일화 협상단이 2002년 11월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위).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오른쪽)가 김한길 전 의원과 TV토론 대책을 상의하고 있다.

설문문항을 결정하기 위해 민주당 협상단 홍석기씨와 국민통합21 김행씨는 밤샘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김행씨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대항할 후보로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를 설문문항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단순지지도에선 노후보와 정후보는 백중세였고, 이후보와의 경쟁력에선 정후보가 앞서고 있었다. 민주당측은 김행씨의 설문문항을 이후보와의 경쟁력을 묻는 질문으로 보고, 강하게 반대했다.

이때 김한길 본부장이 김행씨에게 “설문문항을 직접 글로 써보라”고 했다. 김행씨가 쓰자, 김본부장이 “그걸로 하자”며 협상을 끝냈다. 김본부장은 김행씨가 제시한 설문문항은 여론조사 응답자들 입장에선 ‘뒷문장이 강조되는’ 쪽으로 들리기 쉽다는 점을 간파했다. 이 설문문항은 사실상 단순지지도를 묻는 문항이라는 것이다.

여론조사 시기 협상에서도 민주당은 통합21보다 한 수 위로 드러났다. 통합21은 샘플 수를 5000명으로 하자고 요구했고, 민주당은 이를 수용했다. 5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려면 낮 시간대부터 할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주부층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는 정후보가 절대 유리한 상황이었다.

민주당은 11월26일 언론사의 마지막 여론조사 발표 때 단일후보가 이후보를 앞서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와야 후보단일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논리를 폈다. 맞는 말이었지만 여기엔 다른 의도가 깔려 있었다. 26일 언론 효과를 위해선 25일 단일후보가 결정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24일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가 실시돼야 한다는 얘기였다. 여론조사 날짜를 월요일인 25일에서 일요일인 24일로 하루 앞당기려는 의도였다. 일요일은 노후보의 주 지지층인 20, 30대 직장인 남성이 집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 요일이었다. 결국 이런 지략 대결 끝에 24일 노당선자는 여론조사 승리자가 됐다.

“이제는 인사가 곧 정책이고 비전”

정몽준 대표가 공동유세에 나서는 과정에서 정대표측은 민주당에 하나를 요구해서 받아들여지면 협상팀을 바꿔 또 다른 요구를 해왔다. 최종적으로 통합21측은 ‘각서’를 써달라고 했다. 차기 정권에서의 몇몇 자리를 문서로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민주당은 “정치판에서 각서라는 것은 찢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각서 무용론’으로 맞서면서 끝내 각서를 써주지 않았다.

11월27일 대선 선거운동이 공식 개시되면서 TV 찬조연설은 유권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한나라당은 찬조연설자를 모두 현역 의원들로 채웠다. 민주당에서도 찬조연설을 하고 싶다는 의원들의 요구가 쇄도했다. 그러나 민주당 미디어본부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민주당 미디어본부 회의 때 참석자들은 귀고리를 한 30대 남성,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한 20대 등 ‘튀는’ 세대들이었다. 이들은 “우리나 유권자나 국회의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첫 찬조연설 대결에서 민주당의 ‘자갈치 아지매’는 한나라당을 시청률에서 압도했다. 미디어본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응이 좋지 않을 경우 민주당 의원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올 판이었다. 에어로빅 시범을 보인 민주당 30대 여성 찬조연설자도 한나라당을 이겼다. “너무 튄다”는 만류의 보고가 세 번 올라왔다. 그러나 미디어본부 수뇌부는 “재미있을 것 같다”며 강행했다.

TV토론을 앞두고 노당선자는 서울 여의도 맨하탄호텔에 투숙해 예행연습을 했다. “깽판 쳐도 좋다” “굽실거리지 않겠다” 등 과거 노당선자의 과격한 말에 대해 상대후보가 공격해올 경우의 대응 방안이 논의됐다. 참모들은 “말실수가 아니었다고 하지 말라. 말실수가 ‘불법’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되면 ‘세련되게’ 말하겠다고 하라”고 조언했다. 노당선자는 금세 체득한 듯했다. 노당선자는 당선 확정 뒤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후보 때의 말과 당선자의 말은 다르다”고 말했다.

김한길 본부장은 “선거나 정치는 ‘비전’의 승부”라고 정의한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의 ‘새로운 대한민국, 낡은 정치 청산’ 비전이 한나라당의 ‘나라다운 나라, 안정이냐 불안이냐’ 비전보다 나았다는 게 김본부장 분석이다. 노당선자는 당선 뒤 ‘정치개혁, 국민통합’을 노무현의 새 비전으로 내세웠다. 이를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수단은 ‘인사(人事)’가 될 것이라고 한다. 김본부장은 “현 상황에서 인사가 곧 정책이고 메시지고 비전이다”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367호 (p26~27)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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