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1

2002.11.28

스피드의 향연, 스릴의 무대

  • 허시명 / 여행작가 storyf@yahoo.co.kr

    입력2002-11-21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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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피드의 향연, 스릴의 무대

    굉음을 내며 달리는 차들은 순간속도가 시속 250km에 달한다.

    올해에는 굵직한 세계 스포츠대회가 국내에서 2개나 열렸다. 한·일 월드컵과 부산아시아경기대회가 바로 그것. 이들 대회가 열리는 기간중에는 온 나라가 후끈 달아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 개최되지 않은 세계 대회가 하나 남아 있다. 11월22~24일 경남 창원시 두대동에서 열리는 국제자동차경주대회다. 각 나라에서 열린 자동차경주대회 최고수들이 참여해 세계 챔피언을 가리는 국제대회다. 정식 이름은 인터내셔널 포뮬러3 코리아 슈퍼프리 대회다.

    유럽에서는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빅 스포츠로 자동차경주대회를 꼽는다. 자동차경주대회는 자동차의 발달사와 함께할 만큼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최초의 자동차경주는 1900년에 미국의 뉴욕헤럴드 신문사 사주였던 제임스 고든 베네트가 유럽 지역의 신문 보급과 선전을 위해서 파리에서 열었다. 현재 가장 권위 있는 자동차대회는 1950년대부터 국제대회로 승인되어 9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F1 그랑프리 대회다. 이 대회는 전 세계 16개국을 한 차례씩 돌면서 1년에 14∼17번 게임을 치른다. 여기서 세계 챔피언이 되면 핸들 재벌이 되고, 챔피언이 탄 자동차를 제조한 업체는 브랜드 가치를 한껏 올려 높은 매출을 기록한다.

    그런데 F1 대회는 세계 순회 대회라 한 해에 한 나라에서 한 번씩만 개최된다. 그러다 보니 국내 챔피언전이 열리는 F3 대회가 훨씬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F3 대회는 10월까지 각국에서 국내 대회를 통해 챔피언을 선발하고, 11월 셋째 주에 마카오에서 1차로 세계 챔피언을 가린 뒤, 곧바로 경남 창원에서 최종 세계 챔피언을 가리면서 시즌을 마감한다. 그러다 보니 창원 F3 대회에서는 각국의 자동차경주 마니아들과 자동차 제조업체,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명예와 부를 걸고 각축을 벌이게 됐다. 30여개국의 200여개 미디어 매체에서 몰려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속 250km … 눈 깜짝할 새 저만치
    스피드의 향연, 스릴의 무대

    자동차경주에서는 한순간의 방심이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안방을 내주면서도 우리는 자동차경주에 오불관언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설령 대회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어도 자동차경주를 즐기는 방법을 몰라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11월10일 2002 한국모터챔피언십 최종 결승전이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경기장에서 열렸다. 올해 7차례의 한국모터챔피언십 대회가 모두 그곳에서 열렸다. 이 밖에 오프로드 랠리가 춘천·평창·화성에서, 사륜지프대회가 인제에서 열리고 있다. 태백시에서는 내년 개장을 목표로 자동차경주장이 건설중이다. 그리고 창원에 F3 세계 대회를 열 수 있는 경주장이 있다. 이 정도가 우리나라 자동차 경주장의 현주소다.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경주장은 에버랜드 정문 주차장 맞은편에 있다. 에버랜드를 찾아온 손님들이 언덕 위에다 차를 대놓고 구경하고, 참가 선수들의 지인과 후원사 사람들이 경기장 안에 모여 경기를 즐긴다. 야구장이나 축구장의 일사불란한 분위기와는 다르다. 응원하는 선수가 볼 수 있도록 멀리서 깃발을 흔들거나 플래카드를 내걸어두고, 경주용 차들이 출발선에 서면 레이싱걸들과 감독, 응원단들이 차로 다가와 격려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출발 5분 전, 30초 전, 5초 전의 카운트다운이 이뤄지고, 곧이어 차들이 굉음을 내며 맹렬하게 내달린다.

    스피드의 향연, 스릴의 무대

    환송을 받고 있는 출발선 위의 카레이서들.

    이때 응원하는 차가 있어야 경기가 재미있어진다. 경마장과 경륜장에서 응원하는 선수가 없으면 아무런 재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동차경주장은 돈을 거는 어수선한 베팅장은 아니다. 선수들은 목숨을 걸고 달리고, 관객들은 그 놀라운 스피드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것이다. 속도보다 더 관중을 긴장시키는 것은 자동차들이 내는 엄청난 굉음이다. 단언컨대 자동차경주는 가장 시끄러운 레포츠다. 폭발적으로 내달리며 내는 배기음에 귀가 먹먹하다. 어느 폭격장, 어느 채석장보다도 더 요란하다. 소리만 들으면 소음이다. 그러나 쏜살같이 직선주로를 달리다가 곡선주로에서 휘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소음들이 마치 악기소리처럼 들리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자동차경주의 매력은 인간과 기계의 혼연일체라고 한다.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차체 속에 자신의 몸뚱이를 밀어넣는 카레이서들에게 혼을 빼앗기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혼을 뺏기고 나면 자동차 굉음은 기계와 인간이 내는 합창으로 들리게 된다. 경기가 끝난 뒤 샴페인이 터지고 적막이 찾아오면, 세상은 왜 그렇게 조용한지, 세상은 왜 그렇게 요지부동 움직일 줄 모르는지 낯선 기분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스피드의 향연, 스릴의 무대

    기계의 딱딱함을 완화하려는 듯, 자동차 팀들은 레이싱걸을 대동하고 등장한다.

    자동차경주는 구경하는 레포츠다. 규칙이나 선수 이름, 성적 등을 모르고 야구를 보면 재미없듯이, 자동차경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F3 국내 자동차대회는 없고, F3보다 아래 등급인 F1800 대회, 그랜드투어링 대회(GT1·GT2), 투어링(A, G) 대회, 신인전 대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자동차 생산 5위국이다. 그러나 자동차 문화는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과속과 음주운전, 그리고 높은 사고 사망률…. 자동차를 단순히 이동수단으로만 생각했지 자동차의 복합적인 기능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단적으로 자동차경주가 없는 나라는 자동차 문화가 없는 나라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자동차경주 대회장에 가면, 누가 왜 어떻게 속도를 내는지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그런 경주 한번 보고 나면 내가 잡는 핸들이 사뭇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22일 열리는 창원 F3대회는 모든 카레이서들이 참여하고 싶어하는 꿈의 경기다. 그런 꿈의 대회가 우리 가까이에서 열린다니, 주말 시간을 비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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