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9

2002.11.14

엄마가 아팠던 그곳 딸도 아프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유전 확률 50% … 무월경·무배란 증상 방치 땐 ‘불임’ 가능성 높아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2-11-08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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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의 건강은 행복한 삶의 기본 조건이다. 만약 부모나 조부모가 어떤 질환을 앓은 적이 있다면 자신과 아이 역시 그 질환에 노출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력’은 조부모, 외조부모에서부터 본인까지 3대에 같은 질환을 가진 사람이 2명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가족력’의 영향을 받는 질병만 무려 1만 가지. 가족력만 제대로 알아도 치명적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앞으로 4회에 걸쳐 대표적 가족력 질환에 대해 연재할 계획이다.
    엄마가 아팠던 그곳 딸도 아프다
    쭈뼛쭈뼛 어머니 손에 이끌려 부인과를 찾은 윤모양(16). 유난히 털이 많고 여드름도 많아 보였다. 윤양이 병원을 찾은 것은 지난 1년 동안 약간의 피만 비칠 뿐 생리다운 생리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기 때문.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양쪽 난소에 작은 물 주머니(난포)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이 발견됐다. 충격을 받은 것은 오히려 윤양의 어머니. 그녀 자신이 젊은 시절 같은 증세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로부터 유전된 이 질환의 이름은 ‘다낭성 난소 증후군’.

    가임기 여성 100명 가운데 5~10명에게서 나타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말 그대로 난소에서 배출되지 못한 난포들이 난소에 쌓여 발생하는 질환이다. 난포는 정상적인 배란 과정에서 성숙하면 난자로 바뀌는데, 난자가 되지 못한 난포가 난소를 채우고 있는 것. 다낭성 난소 증후군의 특징은 무월경, 무배란 등. 유전적 요인과 환경 요인, 내분비적인 인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하며, 여성불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윤양의 어머니 역시 불규칙한 생리로 인해 결혼 후 임신과 출산 문제로 고민했고, 그녀의 할머니도 같은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윤양의 어머니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생리를 거의 하지 않는 딸이 걱정되어 여고생인 딸을 데리고 부인과를 찾게 된 것이다.

    가임 여성 100명 중 5~10명에 나타나

    강서미즈메디병원 산부인과 이경호 과장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유전인자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며 “확실하지는 않지만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이 되어 이론적으로는 어머니와 딸에게 50% 정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한다.



    윤양의 경우 어머니, 그리고 자신이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갖고 있다.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외할머니 역시 다낭성 난소 증후군일 가능성이 높아 조부모를 포함한 3대 중 2대 이상이 같은 질환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가족력 질환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은 크게 세 가지 증세를 호소한다. 첫째 불임, 둘째 생리불순이나 무월경 등 불규칙한 생리와 이상 자궁출혈, 셋째 남성호르몬의 증가로 인한 남성화 경향. 남성화 경향은 팔, 다리에 털이 많아지고, 여드름이 많아지거나 드물게는 탈모증이 생기기도 하는 현상이다.

    문제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질환의 특성상 병이 생겨도 모르고 있다 임신을 시도하면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 설사 다낭성 난소 증후군임을 알더라도, 임신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은 어머니의 경우만 생각하고 치료를 하지 않은 채 방치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무배란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 할지라도 ‘임신에 별 영향이 없다’는 일반인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방치하면 불임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장기적으로 자궁내막암 등의 질환과 연관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엄마가 아팠던 그곳 딸도 아프다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정자들(위)과 난자를 뚫고 들어가는 정자의 모습.

    진단은 주로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로 하며 환자가 임신을 원치 않으면 규칙적인 생리만을 할 수 있도록 피임약으로 호르몬 치료를 하게 된다. 비만증이 있는 환자라면 체중을 3∼5% 정도 줄여야만 생리불순을 치료할 수 있다. 아기를 원치 않는 경우에는 난소 일부를 제거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또 생리가 불규칙적이면 3개월에 한 번씩, 생리가 규칙적이면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

    환자가 임신을 원할 때는 배란을 유도하는 치료법을 선택한다. 먹는 배란 유도제에서부터 재조합된 성선 자극 호르몬 주사제까지 단계적으로 사용한다. 강남미즈메디병원 산부인과 김광례 과장은 “배란 유도제를 쓸 때는 배란 유도 과정에서 수많은 난자들이 한꺼번에 자라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난소가 커지면서 배에 복수가 차는 과배란 증후군이 나타날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뚱뚱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우선적으로 체중감량에 신경을 써야 한다. 매주 3회 이상 운동을 해야 하는데, 손쉽게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으로 빨리 걷기가 있다. 식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탄수화물과 기름기가 많은 육류 섭취를 줄이고 생선이나 닭고기, 녹황색 채소, 당분이 적은 과일 등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가임 기간에만 찾아오는 질환은 아니다. 가임 기간중에는 무월경, 불규칙한 생리, 불임, 남성화 경향을 보이다 임신중에는 임신성 당뇨, 출산 후에는 인슐린 비의존성 당뇨가 유발되기도 한다. 폐경 이후에는 장기적인 대사 이상이나 심혈관계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여성은 보통 폐경 후 약 25년을 지내게 되는 점을 고려하면 가임기간이 지났다고 결코 방심할 수 없다.

    경기 고양시 화정 봄여성병원 권혁찬 원장은 “임신성 당뇨는 유전적 원인인자와 더불어 이의 활성화에 관여하는 환경적인 요인까지 태아에게 제공하므로 태아의 비만과 당 대사 이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진단한다. 이와 같은 태아의 비만과 당 대사 이상은 아기가 성장한 후에 비만과 다낭성 난소 증후군 등의 증세를 보일 가능성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대물리며 고통 적극적인 치료를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가 임신하면 임신성 당뇨에 걸릴 확률이 20% 정도다. 당 대사 이상까지 포함하면 이환율은 약 40%나 된다. 임신중 태아는 모체로부터 인슐린 대사 이상의 유전적인 소양을 물려받을 뿐만 아니라 태내 환경의 당 대사 이상이라는 환경적인 요인까지 갖게 되어 엄마와 같이 인슐린 저항성을 갖게 된다. 이 경우 비만한 아기가 태어나게 되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성인성 당뇨병을 비롯한 인슐린 저항성으로 인해 생기는 모든 질환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산모 역시 5년 내에 인슐린 비의존성 당뇨에 걸릴 가능성이 50%나 된다.

    가임기 여성 10명 중 1명꼴로 앓고 있다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 눈앞에 보이는 불임이나 생리불순만을 병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치료를 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의 위험과 다음 세대에 미치는 영향까지를 염두에 두고 환자나 의사 모두 적극적으로 전문적 치료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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