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9

2002.11.14

굴러라 바퀴야, 솟아라 몸!

  • 입력2002-11-08 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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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러라 바퀴야, 솟아라 몸!

    스케이트보드의 꽃, 알리. 높이 솟아오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인터넷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주문했다. 이틀 후에 택배로 물건이 도착했는데, 하필 상자를 먼저 열어본 사람이 아내였다. 아내는 상자 안에 사제폭탄이라도 든 것처럼 질겁을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아이는 헬멧을 쓴다, 작은 녀석은 무릎보호대를 두른다 하며 좋아라 하는데, 아내는 ‘절대 안 돼!’였다. 아내는 스케이트보드를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타는 놀이기구이며, 공부를 못 하게 만드는 불온한(?) 도구라고 여기고 있었다.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지만, 이어지는 아내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 앞을 나서면 차도인데 어디서 타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고, 전용 보드장에서만 타기로 하고 간신히 스케이트보드를 사수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인 아이와 나는 그 주말에 당장 엑스게임장으로 향했다. X-Game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스릴 넘치는 경기들을 지칭하는말로, 엑스게임장은 그러한 경기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함께 뒤섞여 즐기는 곳을 말한다. 스케이트보드, 묘기 자전거, 인공암벽등반, 인라인스케이트가 그 구성원들이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한번 즐길 수 있는 놀이들이 아니다. 보호장비를 철저히 갖추고, 거친 도전을 거듭해야 즐길 수 있는 놀이들이다. 대신 육체의 단련은 절로 이뤄진다.

    일요일 도봉산 상봉이 올려다보이는 도봉산역 앞의 엑스게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인공암벽에는 사람들이 거미처럼 매달려 있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이들은 게임장의 외곽을 맴돌고 있었다. 인라인스케이트는 롤러블레이드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어른들의 레저로 완전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에 비하면 스케이트보드는 아직 한국 사회에 안착하지 못하고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그 첫번째 도전이 보드를 알게 되면 공부할 시간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의 편견이고, 두 번째가 보드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 즉 공원의 부재이며, 세 번째는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굴러라 바퀴야, 솟아라 몸!

    큰 통 안에서 바퀴로도 타고, 판으로도 탄다. 그 모습이 그릇 속에서 빠져 나오려는 개미 같다.

    군사력에서뿐 아니라 프로 스포츠에서도 강대국인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스포츠맨은 타이거 우즈도 마이클 조던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토니 호크(Tony Hawk)라는 선수다. 프로 스케이트보드 선수인 그는 미국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스케이트보드가 미국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미국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처음 시작됐고, 1993년에 미국의 스포츠 전문 유선채널인 ESPN이 중계를 시작하면서 세계로 퍼져나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미국 청소년들은 거의 대부분이 성장기의 통과 의례처럼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도봉산 엑스게임장에 상주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스케이트보더 이상이씨(29)는 “미국 청소년 100명 중 한두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스케이트보드를 탑니다. 그들에게는 스케이트보드가 하나의 문화지요”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스케이트보드 인구는 1만명이 넘는데, 즐겨 타는 사람은 1000∼2000명 정도 된다.



    도봉산 엑스게임장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씩, 한 달 과정으로 스케이트보드를 가르친다. 비용은 10만원. 일주일만 배우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한 달 배우면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굴러라 바퀴야, 솟아라 몸!

    엑스게이머들이 하프파이프(큰 파이프를 절반으로 잘라놓은 듯한 곡면)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나는 당장 스케이트보드를 밀고 다니고 싶었지만 보드 위에서 균형 잡기조차 어려워 금세 보드 위에서 뛰어내려야 했다. 그래서 기본동작부터 배우기로 했다.

    기본자세에는 왼발이 앞으로 가는 레귤러 스탠스와 오른발이 앞으로 가는 구피 스탠스가 있다.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냐에 따라 다른데, 편한 쪽을 선택하면 된다. 처음 배우는 기술은 한 발을 보드 위에 올려놓고, 나머지 한 발로 바닥을 밀면서 나가다가 두 발을 보드 위에 올려놓고 가는 푸시 오프(Push off) 동작이다. 이때 힘을 앞발에 70%, 뒷발에 30% 안배한다. 시선은 진행 방향에 두고, 상체는 앞으로 조금 숙인다. 뒷발로 바닥을 힘차게 밀어주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상체를 앞으로 더 숙여 속도를 높인다. 이를 반복하다가 보드 위에 두 발을 올리고 가면 된다.

    빈 보드를 먼저 밀어놓고, 한 발은 올라타고 뒷발로 바닥을 밀면서 가는 것을 런 푸시 오프(Run push off) 동작이라고 한다.

    두 발을 보드 위에 올린 채로 어깨와 상체를 좌우로 틀면서 전진하는 ‘틱택’ 기술을 거쳐 엔드워크, 엔드오버, 파워슬라이드, 윌리 동작을 마스터하고, 구르는 보드 위에서 점프하여 다시 보드 위에 안착하는 ‘하이점프’ 기술까지 도달하려면 두 달 정도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그리하면 스케이트보드에 혼을 불어넣어 예술로 승화시킨, 알리(Ollie) 기술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알리는 보드와 함께 공중으로 뛰어오르기 때문에 에어(Air)라고도 부르는데, 이 기술이 선보이면서부터 몸을 뒤틀거나 언덕을 내려가는 여타의 동작들과 차별화된 명실상부한 기술 개념이 보드에 도입되었다.

    굴러라 바퀴야, 솟아라 몸!

    헬멧을 쓰고, 무릎과 팔목 보호대를 착용해야 한다. 초보자는 손목보호대까지 착용해야 한다.

    알리는 보드 위에 두 발을 양옆으로 벌리고 선 자세에서 시작된다. 우선 몸의 중심을 약간만 뒷발에 두고 앉았다 일어나면서 뒷발을 힘차게 밑으로 튕기면서 뛰어오른다. 이때 중심을 앞발 쪽으로 이동하면서 발목을 접어 보드를 위로 끌어올린다. 그러면 보드와 함께 몸이 솟아오르는데, 이 동작을 제대로 구사하려면 입문해서 석 달 가량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스케이트보드를 처음 타는 사람들은 이 동작에 매료되어 혼자 기를 쓰고 연습하는데, 이 동작은 한 번 됐다고 해서 계속 잘 되는 게 아니다. 우선 기본동작을 연습하는 게 중요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보드를 타기 시작해서 13년째 타고 있는 이상이씨는 입문해서 1년 반째가 고비라고 했다. 그때까지는 기술이 꾸준히 늘지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어려워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요즘은 좀더 배우기 쉬운 인라인스케이트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상이씨는 “지상에서 바퀴 달린 것 중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신나는 놀이가 바로 스케이트보드”라고 말했다.

    청소년 문제가 사회문제화될 때마다, 학교와 학원말고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다는 말들을 한다. 스케이트보드는 청소년 놀이문화의 대안으로 충분한 가치와 묘미를 지니고 있다.

    내가 초등학생 아이에게 보드를 권하는 것은, 공부하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컴퓨터 게임만 하지 말고 보드 타고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는 생각에서다. 아, 그리고 보드는 아이들만 타는 것이 아니다. 기술은 경력이 쌓여야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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