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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수사 ‘너 밟고 나 살자’

검-경,‘실적 올리기 경쟁’ 무리한 단속 여론… 조직 위상 싸움에 ‘인권침해’ 우려 목소리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사이버 수사 ‘너 밟고 나 살자’

사이버 수사 ‘너 밟고 나 살자’
회사원 김모씨(44)는 7월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몇몇 언론사의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모 대선후보 관련 글 때문에 갑자기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것. 경찰은 김씨가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상습적으로 인터넷에 게재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이 문제 삼은 글은 “모 후보의 출세 비결, 친일 부역자 아버지 덕… 114평짜리 초라한 빌라(?)에서 가난하게 사는 척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기사를 쓰지 않으면 창자를 뽑는다고 협박한다…” 등.

그러나 김씨는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올린 것뿐인데 왜 명예훼손이 되느냐”며 “경찰이 명예훼손의 증거자료라고 제시한 글 가운데 내가 직접 쓴 내용은 10%도 채 안 된다”고 반박했다. 법원도 김씨에 대한 영장을 기각해 김씨는 체포 하루 만에 유치장에서 풀려나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마녀사냥식 사이트 적발 폐쇄

S사이버대학 학생 서모씨(29)는 9월1일 검찰에 의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당했다. 서씨의 혐의는 기말고사에서의 ‘커닝’. 검찰은 “서씨가 6월 시험 때 친구들과 PC방에 모여 답안을 의논하고 같은 답을 쓰는 등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며 “이는 대학의 학생평가 업무를 방해한 범죄”라고 기소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서씨뿐 아니라 해당 대학측도 검찰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대학 관계자는 “시험 관리는 대학 고유의 학사행정”이라며 “지금껏 다른 어느 대학의 시험 부정에 검찰이 개입한 적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S대학 등 관련 사이버대학들은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사이버 공간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남용을 제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 특히 일반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단속의 경우 무리하게 사법적 조치를 강행,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높다.

사이버 수사 ‘너 밟고 나 살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이은우 변호사는 “최근 화제가 됐던 자살·음란·폭탄 사이트에 대한 일제 단속도 법리적으로 볼 때 문제가 많은 것이었다”며 “범죄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해당 사이트를 적발, 폐쇄토록 하고 마치 모든 사회악의 온상처럼 몰고 간 것은 여론을 이용한 마녀사냥이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법률적으로는 자살 사이트에 가입한 네티즌이 자살한다고 해도 운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 변호사의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자신이 개설한 자살 사이트를 통해 만난 남녀 3명이 동반자살한 후 자살방조 혐의로 긴급체포됐던 모 사이트 운영자 성모씨(19)도 “자살방조의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됐다.

문제는 이처럼 법률적으로 무리가 있는 수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 관계자들은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사이버 범죄 수사를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실적 올리기’ 경쟁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현재 우리나라 사이버 범죄 수사의 두 축은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한봉조 부장검사)와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대장 하옥현 총경). 원칙적으로는 경찰이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지만사이버 수사 부문의 경우 규모나 역사 등에서 경찰 조직이 오히려 검찰을 능가한다.

때문에 경찰 쪽에서 주요 사이버 범죄 사건을 해결할 경우 검찰은 사회적으로 주목을 끌 수 있는 사건을 처리해 조직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래서 일단 여론을 리드할 수 있도록 사건을 이슈화하는 데 주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수사팀장 양근원 경정은 “경찰은 1995년 해커수사대를 조직한 후 컴퓨터범죄수사대, 사이버범죄수사대를 거쳐 현재의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이버 범죄 수사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해왔다”며 “현재 우리 경찰의 사이버 범죄 대응 능력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뒤늦게 사이버 수사 영역에 뛰어든 검찰도 자존심을 걸고 지적재산권 침해 사범 일제 단속 등 ‘기획수사’ 분야에서부터 수사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사이버 수사 ‘너 밟고 나 살자’
이들의 치열한 경쟁에는 두 조직 사이에 자리잡은 깊은 감정의 골도 한몫한다.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 출범 초기 수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사이버 범죄 수사를 둘러싼 경찰과의 구원(舊怨)을 털어놓았다. 검찰이 사이버 범죄에 전문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컴퓨터수사부를 출범시킨 2000년 2월21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것은 오히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였던 것.

“하필이면 바로 그날 박태준 당시 국무총리가 경찰청을 방문한 겁니다. 사이버수사대를 찾아가서 브리핑을 받고 파격적인 조직개편과 예산지원을 약속한 거죠. 아직 검찰 조직이 없을 때니까 사이버 범죄 관련 대형 사건은 모두 경찰이 해결할 때 아닙니까. 총리가 그 내용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위상을 더 높여준 거예요.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 볼 때 경찰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죠. 새 조직을 띄우는 날 의도적으로 총리를 모시고 검찰을 물먹였으니….”

이때부터 검찰 내부에서는 ‘어디 두고 보자’, ‘우리도 한건 제대로 터뜨려주마’ 하는 심리가 싹텄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말이다.

사이버 수사 ‘너 밟고 나 살자’
경찰 입장에서도 ‘사이버 범죄 수사’는 놓칠 수 없는 영역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를 번번이 막는 검찰에게 ‘경찰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 보안업체 집단 해킹 사건, 780만명분 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 국내에서 발생한 대형 해킹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온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한 수사관은 “검찰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를 거부하면서 내심 ‘경찰은 무능력하다’고 말하고 싶어한다”며 “하지만 최소한 사이버 수사 영역에서만큼은 검찰이 경찰을 따라올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경찰들에게 자부심을 주는지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문제는 이 같은 두 기관의 자존심 경쟁이 무리한 수사와 인권침해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모 대선후보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씨의 소송대리인 최병모 변호사는 “이 사건은 정치인에 대한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공권력에 의해 ‘사이버 테러’로 돌변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검찰이나 경찰이 실적을 높일 목적으로 주요 인터넷 게시판의 정치적 표현을 단속한다면 상당수 네티즌이 명예훼손 혐의를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경찰청이 발표한 사이버 범죄 검거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이 적발한 사이버 범죄는 모두 2만2693건으로 2444건에 그친 그 전해의 10배에 이른다. 검찰 역시 검거 실적이 급증해 올 상반기중에 적발한 명예훼손사범 적발 건수가 509건에 달했다. 지난해 적발 건수 231건을 2배 가까이 넘어서는 수치다(표 참조).

사이버 범죄 대응조직 일원화를

이와 관련, 시민단체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국장은 “1년 만에 사이버 범죄가 5배, 10배로 급증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 적발 건수 중 상당부분은 아마 예전에 인터넷 자체 정화나 행정지도 등을 통해 해결해온 사소한 문제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과 검찰이 경쟁적으로 조직 강화를 꾀하며 적발 건수를 높이는 과정에서 통계상으로만 사이버 범죄가 급증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장국장은 사이버상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법적 대응 기준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인터넷의 특징인 개방성과 토론문화로 인해 발생하는 사소한 명예훼손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간섭을 배제하고, 해킹이나 반국가적 테러 등 명백한 범죄에 대해서만 강력한 수사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

한편 법조계에서는 수사 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기중 변호사는 “우리나라 사이버 범죄 수사 인력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검찰, 경찰, 행정부와 민간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기구를 통해 이들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범죄 대응 조직을 일원화하고, 남는 인력은 사이버 테러 대응이나 국가 기간 통신망 보호 등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 김변호사의 주장이다.

검찰과 경찰은 자기 조직 위상 높이기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시민단체나 법조계의 합리적인 제안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주간동아 2002.10.31 357호 (p44~46)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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