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7

2002.10.31

‘오군자 화백’의 서울 나들이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2-10-23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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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공주에서 활동중인 허유(54·한서대 교수) 화백이 오랜만에 중앙 화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80여점의 시·서·화 작품을 선보이는 ‘허유의 오군자’ 전시(10월30일~11월5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신관)와 함께 ‘화인 허유-가짜라 불리는 자네는 진짜인가’ ‘허유의 오군자’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출간한 것. ‘화인 허유’에는 글과 함께 그가 직접 그린 삽화 50여점도 실려 있다.

    “7년간의 대만 유학시절을 제외하면 저는 항상 산속에서 그림과 사색을 벗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림 속에서 본 나, 그리고 화가의 눈으로 본 세상 등을 쓴 책이죠.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은 그림으로 그렸고요.”

    부제인 ‘가짜라 불리는 자네는 진짜인가’는 마치 고승들의 선문답 같다. 그는 “요즘 세상은 진짜보다 가짜가 판을 치고 있지요. 어찌 보면 본연의 모습을 그리지 못하고 남의 화풍만 모사하고 있는 내 그림과 나도 가짜입니다” 하고 정말 선문답 같은 말을 한다.

    허화백의 명상적인 말, 그리고 시·서·화를 아우르는 작품세계는 젊은 시절 겪었던 좌절을 극복해가는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는 30여년 전, 군대에서 사고를 당해 몸의 오른편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그림도 모두 왼손으로 그린 것이다. 제대 후 독일로 유학 가 법철학을 공부하려는 포부를 갖고 있던 젊은이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이 같은 좌절을 서예에 몰두함으로써 극복했고 국비장학생으로 32세의 늦은 나이에 대만 국립사범대 미술과에 입학했다. 대만에서는 7년간 유학하며 호국민 부겸부 등 당대의 대가들에게 그림을 배웠다.

    “현재 한국에는 추사 김정희 이후로 시·서·화를 모두 하는 화가가 없습니다. 동양화도 서양화처럼 여백 없이 꽉꽉 채우는 게 유행이지요. 저는 동양화의 본모습인 선과 점의 묘미를 살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의 여백에 직접 지은 한시를 썼지요. 전시에 등장하는 한시도 100여편 가량 됩니다.”



    특이하게도 이번 전시에는 4군자 외에 연꽃 그림이 많이 등장한다. 그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4군자에 소나무나 연꽃을 더해 ‘5군자’라고 부르기를 즐긴다. “제가 살고 있는 공주 마곡사 부근 산장에는 10만여평의 소나무 숲이 있습니다. 소나무는 바람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자연의 소리를 냅니다. 또 연못에서 봄 여름 가을 동안 피고 지는 연꽃을 보면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포스터에도 연꽃을 넣었지요.”

    ‘30년 가까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지만 아직도 아마추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허화백,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거창한 의미보다는 삶의 좌절과 소외 등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나온, 삶의 부산물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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