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2

2002.09.19

앗! 여성 사설탐정이 떴다

여자로선 첫 민간조사원 합격 고은옥씨 … “미개척 분야 자긍심, 독립업체 만드는 게 꿈”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4-09-24 14:2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앗! 여성 사설탐정이 떴다
    국내 최초의 여성 사설탐정 고은옥씨(24)의 외모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아온 탐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깃을 세운 버버리 코트나 두꺼운 안경 대신, 171cm, 50kg의 늘씬한 몸매와 긴 생머리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누가 보더라도 그녀가 사설탐정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고씨는 “이런 외모가 범죄자를 찾는 데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녀는 지난해 4월 한국PI(민간조사원·Private Investigator)협회가 주관하고 한국능률협회가 후원한 2기 민간조사원 교육과정을 마친 후 탐정의 길로 들어섰다. PI자격 검증시험도 당당히 통과했다. 아직까지 사설탐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관계로 사설탐정을 남의 신상 비리나 캐는 심부름센터 직원쯤으로 생각하는 고객을 만날 때가 가장 괴롭지만, 이런 경우 그녀는 단호히 조사를 거부한다. 사건의 진위를 파악한 후 변호사나 경찰 등의 합법적인 소장이 있어야 업무를 진행한다.



    보험사기 등 1년간 20여 건 해결


    “엄청나게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변호사 사무실의 조사대행이나 보험회사 조사 업무에서부터 심지어 산업스파이·사이버 범죄·기업의 비리까지 조사 영역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익혀야 할 분야도 끝이 없었다. 범죄심리학·지문감식법·사격술은 기본이고, 보험범죄학·사이버범죄론·법의학 등 관련 학문과 각종 법에 대해 배워야 했다. 교통사고 조사를 위해 고등학교 수학교과서를 다시 꺼내 공부한 기억도 있다. 브레이크 흔적을 보고 사고 지점을 추정해내기 위해서는 수학적 계산이 필수인 까닭. 이렇게 적극적이다 보니 1년여 동안 벌써 20여 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이중에는 미아 찾기, 이산가족 찾기, 교통사고 피해조사 같은 것도 끼여 있지만, 그녀가 가장 자신 있고 재미있어하는 분야는 역시 보험금을 노리고 사기행각을 벌이는 범죄인을 조사하는 보험조사 업무.



    하지만 탐정이라는 직업이, 그것도 여성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다. “경찰은 용의자를 바로 연행해 수사할 수 있지만, 탐정은 단서가 나오기 전까지는 섣불리 행동에 나설 수가 없어요. 그게 잠복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죠. 차 안에서 밤을 새우거나 하루 종일 차 안에 갇혀 있는 일도 예사예요. 이때 생리현상을 참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아예 사생활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힘든 탐정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그녀의 체력 단련은 듣기만 해도 입이 딱 벌어진다. 새벽 6시에 일어나 10km를 달리고 주말에는 어김없이 태권도장을 찾는다. 태권도 공인 4단인 그녀와 대련하면 웬만한 장정들도 나가떨어진다.

    사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그녀를 사설탐정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도 바로 이 태권도였다. 고씨는 지난 96년 용인대 경찰행정학과에 합격했지만, 주변의 만류와 언니의 권유로 명지대 경영관리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끼’가 어디 가랴. 사설 경호 직업이 차츰 각광받기 시작하자 그녀는 주저 없이 사설 경호원을 지원했다. 유단자에 용모까지 수려한 그녀를 한국경호협회가 거부할 리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한국PI협회의 존재를 알고 탐정으로 나선 것.

    탐정생활을 하면서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 인내심도 생겼다는 그녀는 앞으로 3, 4년 PI 경험을 쌓은 후 미국 유학을 단행할 생각이다. 고씨는 “미국에서 제대로 공부한 후에 국내로 돌아와 사설탐정 업체를 만들어 독립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 사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