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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ㅣ 코미디언

괴로워도 슬퍼도…“웃겨야 산다”

코미디언들의 슬픈 자화상…‘분노’와 ‘하품’사이의 줄타기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 < 구미화 기자 > mhkoo@donga.com

괴로워도 슬퍼도…“웃겨야 산다”

괴로워도 슬퍼도…“웃겨야 산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그런데 가까이서 보시면 더 못생겼습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일단 와보시라니깐여”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등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씨가 남긴 유행어들을 곱씹을수록 지난 30년 동안 그가 국민들에게 선사한 웃음 보따리는 커 보였다.

빈소에서 한 코미디언은 “코미디를 하면서도 코미디를 우습게 알았다. 나도 빨리 떠서 방송 진행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주일 선배님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코미디를 사랑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KBS ‘개그콘서트’의 작가 장덕균씨는 추모 열기를 씁쓸하게 바라보는 쪽이다. “한 코미디언의 죽음을 이처럼 전 국민이 애도하는 것을 보면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왜 이제서야’라고 묻게 된다. 살아 있을 때는 ‘유치하다’고 비웃다가 임종이 가까워오니까 갑자기 ‘진정한 엔터테이너’라며 추켜세우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괴로워도 슬퍼도…“웃겨야 산다”
사람들은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하늘나라를 웃기러 떠났다”고 말한다. 지상에서는 웃기고 싶어도 더 이상 웃길 무대가 없다. 코미디는 90년대 중반 이후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각종 버라이어티쇼와 토크쇼, 시트콤, 심지어 코미디 영화까지 코미디적인 요소는 넘쳐나지만 정작 코미디다운 코미디 프로그램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놀랍게도 공중파 방송 3사의 정통 코미디물은 KBS의 ‘개그콘서트’와 MBC의 ‘코미디 하우스’ 2개뿐, SBS는 아예 없다. 현재 3년째 시청률 20%대를 지키고 있는 ‘개그콘서트’가 그나마 정통 코미디의 자존심을 지키며 외로운 독주를 하고 있는 상태.

지난해 가을 SBS가 젊은 코미디언들을 대거 기용해 ‘코미디 쇼! 오 해피데이’를 편성했으나 시청률이 저조하자 채 10회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 일도 있다. 설 수 있는 무대가 좁아지니 자연히 코미디언들간에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순발력이 떨어지는 데다 시청률을 좌우하는 10대들의 성향과 맞지 않는 고참들은 일찌감치 무대 밖으로 밀려났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젊은 코미디언들조차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현재 KBS 희극인실 소속 코미디언만 150여 명. 그러나 ‘개그콘서트’ 외에 MC, 보조MC, 리포터, 각종 프로의 게스트로 고정 출연하고 있는 코미디언은 30명이 채 안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코미디언들은 둘만 모이면 한국 코미디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심지어 “한국 코미디는 끝났다”는 말도 나온다. 승승장구하는 ‘개그콘서트’조차 예외는 아니다.

공중파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 2개뿐 ‘명맥만 유지’

괴로워도 슬퍼도…“웃겨야 산다”
물리학자 정재승씨(고려대 연구교수)는 2년 전 미국에 머물 때 최고의 즐거움이 ‘개그콘서트’를 보는 일이었다. 매주 새 비디오가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TV 앞에 앉았다. 그는 남의 나라에서 보니까 한국 코미디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쓴 칼럼에서 “나는 아직 한국 코미디만큼 수준 높은 개그를 본 적이 없다. 섹스에 관한 농담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풍자를 거세당하고도 한국 코미디언들은 어떻게 그렇게 재미있는 개그를 쏟아내는지. 뒤통수를 치는 재치와 반전을 즐기다보면, 하루 종일 실험실에서 찌든 머리가 맑아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요즘은 웃음의 강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코미디의 생명력은 80%가 반전에 있다. 즉 뒤통수를 치는 의외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코미디는 캐릭터가 정형화되고, 아이템만 조금씩 달라지는 식이어서 시청자들은 어느 대목에서 웃어야 할지 미리 알고 있다. 지나치게 순간적인 재치,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코미디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때 정치인들의 성대모사로 이름을 날린 최병서씨도 ‘요즘 코미디’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코미디언은 자신이 아프고 슬플 때도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 이주일 선배도 아들을 잃은 다음 다음날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무대에 섰다. 자신의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코미디언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다. 하지만 최근 방송마다 코미디 프로그램 자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그나마 몇 안 되는 코미디 프로조차 연예인들 모아놓고 게임이나 운동하는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코미디의 핵심인 콩트와 풍자가 사라지고 30대 이상이 즐길 수 있는 코미디가 없어진 게 아쉽다.”

사회 풍자 개그를 주로 했던 고영수씨는 “과거에는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고, 자다가도 떠오르면 혼자 웃게 되는 여운이 남는 코미디를 했다. 그런데 요즘 코미디는 망가지면서 말초적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제작진도 현장의 즉각적인 반응에만 급급하다 보니 그런 것을 선호한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괴로워도 슬퍼도…“웃겨야 산다”
내부에서는 시청률 압박, 밖으로부터는 코미디다운 코미디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코미디 프로 제작진들의 사기도 크게 저하된 상태다. 21년째 코미디를 쓰고 있는 장덕균씨는 “코미디를 코미디로 봐주지 않는 것이 가장 괴롭다”고 말한다.

“우리끼리 도둑, 거지 아니면 코미디 소재가 없다고 한탄한다. 바보 캐릭터는 애들이 흉내내서 안 되고, 여장 남자는 혐오감을 주어서 안 된다. 넘어지고 자빠지면(슬랩스틱 코미디) 유치하다고 하고 음식을 소품으로 사용하면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친다’고 야단맞는다. 하지만 누구나 위대한 배우라고 하는 채플린도 바보 캐릭터에 슬랩스틱 코미디를 했다. 시사코미디가 없다고들 하는데 시청률을 의식한 방송의 자체 검열이 80년대보다 더 심하다.”

정통 코미디의 위축은 기울인 시간과 노력만큼 효과(시청률)가 나타나지 않는 데도 이유가 있다. ‘개그콘서트’처럼 라이브로 매주 15개 이상의 코너를 진행해야 하는 프로를 만들려면 출연진은 일주 내내 한 작품에만 매달려야 한다. 월요일 녹화가 끝나자마자 다음날부터 아이디어 회의가 이어지고 대본 연습, 리허설, 주말에는 코미디언들끼리 자체 연습, 월요일 녹화 이런 식이다. 김미화씨는 “개그콘서트는 오로지 아이디어 짜기와 연습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신인들을 캐스팅해서 성공했다. 이 프로를 기획하면서 시간 나는 대로 후배들과 인터넷 뒤지고, 영화 보고, 연극 보고, CF를 분석했다. 보고 나면 모두 패러디 소재가 됐다”면서 “그러나 잘 나가는 코미디언들은 공부할 시간이 없다. 조금만 인기를 얻으면 MC를 하지 코미디는 안 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코미디에는 애드리브가 없다. 관객들 혹은 시청자들이 코미디언들의 순발력에 감탄하는 부분도 사실 철저히 계산된 웃음이다. 개그계의 대부로 불리는 전유성씨는 “7분짜리 코미디를 성공시키려면 꼭 25번 웃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 25번을 위해 코미디언들은 끊임없이 연구한다. 고인이 된 이주일씨가 우스꽝스러운 오리춤 하나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소재를 구할 만큼 철저히 웃음을 연구한 코미디언이었다. 80년대에 데뷔해 20년 넘도록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이홍렬씨는 데뷔 초기 구성작가라는 개념도 없이 코미디언들이 매일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직접 대본도 쓰면서 훈련을 쌓은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코미디계에서는 경력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원로배우라고 해서 웃기지도 않는데 웃어주는 사람도 없고 초보라고 해서 넘어가주지도 않는다. 지금은 캐나다로 떠난 이성미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연기자들은 처음에 못해도 신인이라고 이해하지만 코미디언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돼 있지 않으면 비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그래서 코미디언들은 슬플 때조차 웃겨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 이주일씨의 빈소가 마련된 일산 국립암센터. 조문객들을 안내하고 음식을 나르는 일을 맡은 KBS 16, 17기 개그맨들은 누군가와 눈만 마주치면 경쟁적으로 서로를 웃기려고 애썼다.

KBS 16기 개그맨 허승재씨는 “아직 무명이지만 직업상 언제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장례식장의 엄숙한 분위기에서도 뭔가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신인 개그맨이 “기회를 줘야 보여주지”라며 끼여든다. “이쪽 분야는 위에서 누르고, 밑에서 치고 올라와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창의력, 연기력을 키우면서 5년이고 10년이고 버티면 반드시 기회가 올 거라고 믿는다.”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화제를 모았던 연극 ‘개그맨과 수상’은 웃음에 집착하는 코미디언과 비웃음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을 풍자한 작품이다. 작품을 쓴 김재엽씨는 “4년 전 한 30대 코미디언이 출연 교섭을 받지 못하는 것을 비관해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잘 나가는 몇몇 코미디언들이 TV를 독점하고 무명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 웃음도 권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우스운지 모르고, 코미디언은 웃기려 하는데 잘 안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웃음의 본질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재엽씨는 웃음을 기다려주지 않는 시청자나 관객들의 문제도 지적했다. “지루하더라도 참고 기다리다 어느 순간 반전의 상황을 만날 때 그 웃음은 깊고 통쾌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10~15초짜리 CF의 호흡에 길들여져 기다릴 줄 모른다. 당장 웃기지 않으면 야유한다. 순간적인 웃음을 위해 감각에만 의존하는 코미디는 점점 웃음의 강도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있는 셈이다.”

박성봉 교수(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는 ‘느낌표의 예술’이라는 책에서 코미디로 대표되는 대중예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코미디언들은 우리의 응어리를 건드려 재미를 주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치게 건드리면 우리는 분노했고, 조금 싱겁게 건드리면 우리는 하품했다. 코미디의 역사는 분노와 하품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온 역사다. 이것은 대중예술의 역사이기도 하다.”

배추머리 김병조씨는 “코미디언은 남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괴로움을 감내해야 하는, 의외로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이라면서 “특히 가난과 설움을 이겨낸 이주일 선배는 ‘진정한 코미디는 울음 속에서 나온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남겼다”고 말한다. 지금 코미디의 위기는 진정한 웃음을 얻기 위한 고행의 과정일까. 황제가 떠난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한국 코미디의 부활을 기대한다.





주간동아 2002.09.12 351호 (p60~63)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 < 구미화 기자 >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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