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1

2002.09.12

긴급수배! 뭉칫돈 300조원 돌아오라

저금리로 유동성 자금 부동산 거품 일으켜… 통화당국 금리인상 검토 등 자금 유인책 고심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09-30 16: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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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수배! 뭉칫돈 300조원 돌아오라
    지난 8월30일 전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증권사 및 투신사 사장단과의 간담회에서 “부동자금의 증시 유입 방안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전 부총리는 이날 “부동산시장의 거품은 경제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만큼 부동자금을 증시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번에는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부동산시장의 거품을 잠재우기 위해 금리에 손댈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박승 총재는 “시중 유동성이 풍부하고 금리가 낮아 부동산값에 거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와 통화당국의 고민은 부동산시장으로 몰린 돈을 어떻게 빨아들일 것이냐로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정부가 ‘8·9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은 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부동산 대책이 시장에 먹혀들지 않고 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게다가 정부는 최근 몇 년 사이 재건축을 일종의 경기부양 대책으로 써오면서 시중에 과잉 유동성을 초래한 장본인이나 다름없다. 이래저래 시중 부동자금 대책을 명쾌하게 내놓지 못하면 정부로선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부동산 안정대책과 숨바꼭질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시중을 떠돌고 있는, 이른바 부동(浮動)자금 규모는 대략 300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강남 집값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주범도 사실상은 실수요와 관계없이 높은 수익률만을 좇아 움직이는 이런 대기성 자금들이다. 그러나 이들 부동자금 중 정작 어느 정도가 부동산시장으로 몰려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 골칫거리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박사는 “청약경쟁률 등을 토대로 어느 정도 추정해본 적은 있지만 특정한 계정에 들어가 있는 돈이 아니다 보니 부동산 쪽에 쏠린 정확한 자금 규모를 추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가능한 방법은 취득세나 등록세 납부 현황 등을 토대로 사후 추정하거나 청약경쟁률 등의 지표를 이용해 평당 분양가를 곱해 부동산시장으로 몰린 자금을 추정해보는 방식. 그러나 이런 방식 역시 현재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떠도는 출처불명의 뭉칫돈들을 잡아내는 데는 역부족이다.

    긴급수배! 뭉칫돈 300조원 돌아오라
    부동산 전문가 네트워크 ‘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3000∼4000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도 실제 매물로 나온 경우는 20∼30개에 불과한 것을 보면 부동산 부동자금 규모는 실제보다는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국세청도 얼마 전 상습 투기 세력에 대한 자금 출처 조사를 벌이면서 상습적 부동산 투기꾼은 500∼900명선 정도라고 전망한 바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기 전인 지난해 분양권 시장에 몰려든 돈을 4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300조원 규모의 부동자금 중 부동산에 쏠린 돈의 규모는 실제로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규모와 관계없이 이 자금들은 정부의 부동산 가격 안정대책의 영향권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면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가 발표한 ‘8·9 주택시장 안정대책’의 영향으로 강남권 주택시장이 다소 진정되자 이미 이들 자금은 신도시와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주택시장 안정대책 발표 직후 강남권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발표 이전에 비해 절반 정도인 0.5%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강남구의 상승세만 주춤했을 뿐 종로(0.91%), 중구(0.76%), 강북구(0.62%) 등 강북 전 지역의 아파트값 상승률이 강남의 상승률과 자리를 맞바꿨다. 이 같은 상황은 수도권 신도시도 마찬가지. 산본·일산·분당 등 신도시 아파트들은 평당 매매가격이 700만원대에 육박하는 강세를 보였다. 한마디로 정부의 대책을 비웃으며 규제를 피해 부동산시장에 유입된 뭉칫돈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두더지 게임’과도 같은 양상이다.

    금융권이나 투신사 등을 찾는 자금들도 단기부동화하기는 마찬가지다. 투신협회가 집계한 총수탁액 규모는 8월 말 현재 165조원 규모로 지난 두 달 동안 6조원 이상 늘어났다. 반면, 투신권 유입자금 중 대표적 단기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는 같은 기간 43조원대에서 47조원대로 3조원 이상 늘어났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MMF 증가율이 투신권에 몰려들고 있는 자금 전체 증가율의 두 배가 넘는 8.4%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대기성 자금 규모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만을 놓고 자금의 단기화에 대해 속단하기는 어렵다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 통화운영팀 관계자는 “6∼7월 두 달 동안 기업들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단기자산을 줄이고(6월) 부가세를 납부하는 등(7월) 자금수요가 몰리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단기자금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있는 증시를 피해 채권시장으로 몰려든 돈을 보더라도 최근 자금 운용형태가 장기상품보다는 단기상품 쪽으로 몰려드는 경향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장기 채권형 상품이 최근 두 달 동안 27조원에서 25조 6000억원대로 4.6% 줄어든 데 비해 단기채권형 상품은 27조 6000억원에서 31조원으로 오히려 11.8%나 늘어난 것.

    이러한 현상을 두고 삼성생명 신금덕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은 투자하기보다는 돈을 보유하고만 있으려고 하고 개인들은 불확실성 때문에 저축에 치중하고 있어 부동산으로만 돈이 쏠리는 일종의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처럼 부동산으로만 돈이 몰리는 현상은 거시 정책 운용에도 커다란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수밖에 없는데, 가뜩이나 기업들의 내년도 전망이 올해에 비해 어둡게 나오고 있는 현시점에서 금리인상이 성장속도가 둔화되고 있는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 역시 정부의 부동산 안정 대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시장의 기대수익률이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 등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한 대기성 자금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부동자금이 부동산으로만 쏠리는 현상은 궁극적으로 기업들의 설비투자를 유인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경기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당연히 최근 들어 기업투자가 위축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산업활동 동향에서도 설비투자 증가율은 올해 1/4분기까지만 해도 전년 대비 2.2% 증가하는 등 호조를 보였으나 하반기로 들어서면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6월에 -7.4%를 기록한 데 이어 7월에도 -3.3%를 기록, 두 달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긴급수배! 뭉칫돈 300조원 돌아오라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이 돈이 모자라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소기업 대출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대기업들은 자금을 대출받기는커녕 최근 들어 오히려 대출금을 상환하고 있는 데서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는 회사채시장의 경우 상환액이 신규발행액을 초과함으로써 올해 들어 6월까지만 4조원의 회사채가 순상환되었다. 은행 대출 역시 올해 들어 대기업 대출은 계속 감소세를 나타냈고 중소기업 대출만 20조원 이상 증가했다.

    정부는 부동산으로만 몰리고 있는 자금을 증시로 유인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전윤철 부총리는 “연기금이 제한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만큼 이를 확대하는 방안과 함께 자산운용업 제정을 강구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문제 인식은 업계의 요구와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투신협회 김정아 홍보팀장은 “개인투자가 증시 기반을 떠받치기는 어려운 만큼 장기투자가 가능한 연기금 등이 증시로 유입될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 결국 기관투자가를 육성해야만 증시를 떠받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조치가 ‘말로만’에 그친 경우가 적지 않았던 만큼 정부의 실천 의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

    부동산으로만 쏠리는 부동자금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증시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 조치들과 함께 궁극적으로 금리인상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금통위는 지난 5월 콜금리를 0.25% 인상한 것 말고는 올해 들어 금리에 손을 댄 적이 없다. 그러나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최근 들어 다시 금리인상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 역시 부동산 대책 발표와 함께 통화당국에 부동산시장의 이상 과열이 시중 부동자금 때문이라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리인상의 효과는 부동산시장뿐만 아니라 실물경제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부나 통화당국 모두 신중하기는 마찬가지다. 내년도 경제 전망과 관련해 경기 둔화에 대한 예측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만큼 신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 금리인상의 가능성과 금리인상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삼성생명 신금덕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금리가 오르더라도 현재 사상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투자와 소비가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박사는 “물가상승률과 성장률을 합친 적정금리 수준이 9%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금리 수준은 지나치게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책임연구원은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전통적으로 대통령 선거를 앞둔 1∼2개월 동안은 금통위원들이 독립성에 대한 오해를 받기 싫어서라도 금리를 손대지 않아왔다는 사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시장으로 쏠려 있는 부동자금을 빨아들이기 위해 한국은행이 ‘진공청소기’의 역할을 떠맡고 나설지 9월12일 열리는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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