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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ㅣ 급류 타는 한반도

한꺼번에 물꼬 터진 ‘교류협력’

남북한 공존공영 협력 시대 활짝 … 쌀 40만톤과 경의선 연내 개통 ‘빅딜’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한꺼번에 물꼬 터진 ‘교류협력’

한꺼번에 물꼬 터진 ‘교류협력’
남북한 접촉에 봇물이 터졌다. 9월 한 달만 7차례나 예고돼 있다. 남북장관급회담과 이어진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2차 회의, 단 두 번의 회의는 ‘준(準)전시상태’의 남북을 2000년 ‘정상회담 때의 좋았던 분위기’로 돌려놓았다.

서해교전으로 인한 ‘빙하기’를 단번에 뛰어넘어 한반도 이곳저곳을 무대로 급진전되고 있는 남북 간의 각종 교류 움직임은 어떻게 정리될 수 있으며, 그 배경은 무엇일까.

최근 남북이 공동 추진키로 합의한 내용은 세부적으로, △경의선·동해선 철도 및 도로연결 공사, 9월18일 동시 착공 △경의선 철도와 동해선 도로 연내 개통 △개성공단 연내 착공 △임진강 수해방지 노력 △임남댐(금강산댐) 공동조사 △경제협력 제도적 보장을 위한 4개항 발효 △쌀 40만t과 비료 10만t 제공 △북측 경제시찰단 방문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회담 개최 △남북축구대회 개최(9월7일) △부산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 및 응원단 참가(9월29일) △한국 방송위원회와 북한 조선중앙방송위원회 간 방송교류 등 수십 가지다.



군사적 긴장완화 빠졌지만 휴전선 붕괴 예고




남북한 합의 내용 중 남측이 북측에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성격의 사업은 쌀 40만t 유상 지원, 비료10만t 무상 제공(200억원대), 임진강 치수용 묘목 제공, 경의선·동해선 철도 및 도로공사용 자재 및 장비 지원 등이다.

이중 규모 면에서 단연 주목을 끄는 것이 쌀 제공 건. 북측이 나중에 쌀값을 갚는 차관 방식이지만 쌀은 3개월 내 제공되고, 쌀값은 10년 거치 20년 분할상환에 연리 1%의 파격적 조건이다. 40만t은 국내 수매가격 기준으로 7244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북측에게선 1272억원만 받기로 했다. 800억원의 쌀 포장 및 수송비도 남측이 부담키로 했다. 즉, 40만t 쌀 지원사업은 남측이 현금이나 다름없는 수천억원대의 이익을 북측에 무상 제공하는 셈이다.

한 대북문제 전문가는 “북한의 입장에서 봤을 때 쌀 40만t 제공 건과 그 밖의 다른 모든 남북 현안들이 ‘빅딜’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북한은 쌀 배급제 폐지, 대폭적 물가 인상, 근로자 급여 인상 등 건국 이래 가장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요컨대 자체 물자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가격과 임금을 동시에 올렸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방지와 경제개혁 성공을 위해선 해외로부터의 대규모 물자 지원이 필수였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북·일 정상회담 역시 경제적 요인(30억~100억 달러에 이르는 식민지 배상금 제공 등)이 주요 성사 배경”이라고 추정했다. 경제개혁을 단행한 이상 쌀과 달러가 더 절실해진 북한의 상황은 왜 현시점에서 남북교류에 가속도가 붙는지 설명해준다는 것.

2차 경추위를 앞둔 시점에서 남측 협상관계자는 “30만t 이상의 쌀 지원은 힘들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제공된 규모는 40만t에 이르렀다. 북측이 가장 원한 것이 쌀이었다면, 무리를 해서 10만t을 더 얹어준 남측의 입장에선 무엇을 가장 원했느냐가 궁금해진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쌀의 파트너는 경의선이었다”고 말했다. 즉, 경의선 착공시기를 못박아줄 것, 연내 경의선 개통이 가능토록 할 것 등은 남측이 쌀을 준 대가로 가장 원한 사안이었으며 남측의 요구대로 합의를 얻어냈다는 것이다.

경의선 연결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미 합의된 사안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철의 실크로드’ 구상을 국내외에 여러 차례 설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의선 연결공사는 남측 구간에서만 이뤄졌을 뿐 북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김대통령으로선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었다. 북측 구간 경의선 연결 공사는 남측으로선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수개월 전 남북이 경색된 상황에서도 경의선 연내 개통을 시사한 바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경의선 연내 개통에 대한 청와대의 강한 의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며 이번 2차 경추위에서 이러한 합의가 도출된 것이 사실 오래 전부터 기획돼온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다음은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 “남북한 문제는 실리와 상징성이 모두 중요하다. 남북정상회담이 현정부 대북정책의 하이라이트였다면 경의선 개통은 그 피날레가 된다. 남북의 끊어진 철도가 연결돼 서울역을 떠난 기차가 휴전선을 통과해 평양역(혹은 개성역)에 도착하는 모습이 실제로 연출된다면 대단히 극적이며 국민들에게 통일의 큰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 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마 자신의 임기 내에 이러한 일이 실현되기를 바랄 것이다.”

“유라시아철도는 동해선” 주간동아 보도 사실로 확인

특히 남북 양측이 경의선 개통 시점을 유독 올해 내로 못박은 점이 주목된다. 한나라당에선 “2000년 총선 하루 전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가 발표됐듯,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전, 경의선 개통 이벤트가 대대적으로 열릴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제기된 남북 현안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동해선 연결과 개성공단조성 합의는 남북 양측 경제에 큰 영향을 줄 만한 사안이다. 경추위에 앞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와 유럽을 잇는 유라시아철도는 중국 통과노선이 아닌, 남북한 동해선과 러시아 연해주를 잇는 노선이 될 것임을 선언했다.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추진하는 유라시아철도(철의 실크로드)는 경의선이 아닌 동해선”이라는 ‘주간동아’ 보도(2002년 6월6일자 337호 참조)가 사실임을 입증한 것이다. 당시 김위원장을 면담하고 돌아온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는 ‘주간동아’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 같은 김위원장의 입장을 전했었다. 최근의 북·러정상회담과 남북 경추위는 한반도-유럽연결 철도의 방향을 동해선으로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2002년 상반기 한국의 대중국 투자액은 3억 2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3% 증가했다. 한국 제조업체들은 생산기지를 앞다퉈 중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이는 국내산업 공동화의 위험을 현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경추위에서 개성공단 연내 착공이 합의됨으로써 남북경협은 국내산업 공동화의 위험을 막아줄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개성공단은 2000만 평의 대규모 산업단지로 개발될 예정. 경추위 합의안대로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이 중국 노동력보다 훨씬 값싼 17만명의 북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중국 대신 북한을 선택할 국내기업이 늘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장 신발(부산신발지식산업조합), 섬유(한국섬유산업연합회) 분야 등 노동집약적 국내기업체들이 개성공단 입주 의향서를 제출해놓은 상태다.

국내기업 대부분은 ‘북한 영토에 투자했을 경우 회수가 불가능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북한 투자를 기피해왔다. 경추위에서 남북한 정부가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등을 법제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이런 점에서 중요한 국면 전환이 될 수 있다. 스포츠(축구, 아시안게임), 인도적 문제(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환경문제(임진강 묘목 심기, 임남댐 공동조사), 언론문제(방송 교류) 등 남북 양측이 접촉 면을 다변화하고 있다는 것도 좋은 징조다.

최근 급진전되는 남북관계에 대해 평화정착의 ‘본질’인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해 ‘외화내빈’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봤을 때 남측은 북측을 위한 안정적 물자 공급처가 되고, 북측은 긴장완화에 동참하면서 남측 경제에 중장기적으로 돌파구를 제공하는 방식이라면 양측 모두 손해보는 일은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경추위 합의대로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면 (비록 일부 구간이지만), 휴전선이 무너진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남북의 신 데탕트에 우려보다는 기대가 큰 것도 바로 이런 ‘거대한 사건’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2.09.12 351호 (p30~32)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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