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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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시장’ 무방비로 내주나

WTO서 국가간 양자협상 진행 … 내년 3월 양허안 제출까지 관련단체 등 입장 조율 시급

  • <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4-10-13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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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비스 시장’ 무방비로 내주나
    7월22일부터 26일까지 제네바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 분야 개방에 대한 국가간 첫 양자협상이 진행된다. 이번 협상에서 우리 대표단은 미국 중국 일본 EC(유럽공동체) 캐나다 호주 대만 등 우리 정부에 개방 요청안을 제출한 주요 국가와 양자협상을 가질 예정이다. 2000년 2월부터 우루과이라운드(UR) 후속 협상의 하나로 진행돼 왔던 서비스 시장 개방 협상이 본격 시작됨으로써 국내 서비스 시장 개방이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서비스 시장이 유통 등 상당부분에서 자발적 자유화가 이뤄지긴 했지만 여전히 취약한 분야가 많아 선진국들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될 경우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국내 법률이나 의료서비스에 대한 이용자의 불만이 계속됐고, 매년 증가하는 해외유학 및 조기유학이 교육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대변하고 있어 이들 분야에 대한 협상 결과가 주목된다. 스크린 쿼터제가 최대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시청각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공감대’조차 형성 안 돼

    협상대표단 수석대표인 민동석 외교통상부 도하개발아젠다(DDA) 담당 심의관은 출국 전 “이번 제네바 협상은 서로의 요구사항을 확인하는 탐색전이 될 것”이라며 “각 분야마다 성격이 다르지만 서비스 시장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개방에 따른 긍정적 요소를 생각하고 능동적으로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계속될 협상에서 우리 인력의 해외 진출을 막는 진입장벽을 제거하거나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우리가 취약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방 속도를 늦추고 단계적인 개방을 유도하면서 타협점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이미 상당부분이 개방된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개방수준을 조절한다면 충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양허안을 제출해야 하는 내년 3월까지 업계나 시민단체 등과 관계 부처의 입장 조율이 전제돼야 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김준동 선임연구위원은 서비스 시장 개방으로 인한 긍정적 요소를 강조하면서도 아직까지 서비스 시장 개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 차원의 전략과 대국민 설득 작업이 병행되지 않으면 농업협상처럼 국내에 엄청난 반발과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관련 업계나 단체들의 대비 상황은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나름대로 대책반을 만들고 공청회를 여는 등 노력을 기울여오긴 했으나, 어느 정도까지 개방을 받아들여야 할지조차도 의견 접근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 가령 변호사 업계의 경우만 해도 대한변호사협회가 법률시장개방위원회를 만들어 법률시장 개방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연구 차원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변호사 업계가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은 내부적인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소 규모의 법무법인에 소속되어 있는 한 변호사는 “법무법인의 규모에 따라 입장이 다르고, 경영자와 고용 변호사 사이에서도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비스 시장’ 무방비로 내주나
    법무법인 한강의 최재천 변호사는 “시장 개방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2, 3년 전 법률시장을 개방한 일본의 경우처럼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이 법정에 설 수 없도록 하는 등의 규제장치를 두고 점진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 것. 그는 또 “개방을 하더라도 외국 법률가들이 언어소통의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없고, 국내 시장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동안 전문분야를 특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비영리단체로 운영되고 있는 교육분야에 대한 외국의 개방 압력도 거세다. 당초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 분야 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일부 국가가 중등교육 분야까지 대상을 확대한 것. 게다가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외국의 우수 대학원을 국내에 유치하기 위해, 설립 요건과 운영에 대폭적인 특례를 인정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교육 분야의 문호 개방은 시대흐름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김병주 책임연구원은 “대학교육을 비롯한 고등교육이 보편화되고, 양적 발달을 질적으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제화를 통해 지역 대학을 육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외국의 관련 법률을 이해하는 등 깊이 있는 연구로 밀려오는 외세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화 분야에서는 벌써부터 시장 개방에 대한 ‘저항’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문화 관련 시민단체와 영화, 연극, 문학, 방송 등 관련 13개 단체가 모여 만든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는 6월30일, 정부에 “문화부문에 대한 WTO 양허요구안 제출을 중지하라”며 WTO에서 영화를 비롯한 문화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 각 국가의 독자성과 세계 문화 다양성을 위해 문화는 무역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업계 경쟁력 향상 최우선 과제

    이에 대해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문화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문화의 산업적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우리 문화 분야를 상당부분 개방한 상태에서 WTO 협상을 중지하라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

    하지만 스크린 쿼터제가 얽혀 있는 영화 상영 부분에 대해서는 개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KIEP의 김준동 연구위원은 “스크린 퀴터제 철폐 등을 통해 경쟁국에 비해 부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문화적 개방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협회, 간호사협회, 병원협회, 한의사협회 등 관련 단체의 입장이 서로 다른 의료 분야는 보건복지부와의 갈등까지 겹쳐 있어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아무것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의사협회는 개방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주수호 공보이사는 “국경간 환자 이동과 전문인력 이동에 대해 찬성하기 때문에 의료시장 개방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고 한다.

    의사협회의 이런 입장은 보험수가가 낮기 때문에 급여 대상 진료 항목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보험 비급여 대상 진료 항목이 많은 성형외과나 고가의 검사, 라식수술 등에 개방 요구가 집중될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었던 김태홍 의원(민주당) 보좌관 허윤정씨는 “ 의료시장을 개방하면 비급여 대상 진료 항목에 대해 질 좋은 서비스와 다양한 지불방식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돼 지금의 서비스 수준으로는 국내 의료계가 모두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서비스 분야 양자협상을 계기로 국내 관련 업계는 경쟁력 향상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에 국내 시장 보호를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능하지 않게 된 만큼 개방에 대비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경쟁력 향상은 그동안 서비스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소비자(환자나 의뢰인 등) 위에 군림하던 태도를 고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정부 역시 한중 마늘협상 비공개 파문을 교훈 삼아 투명한 협상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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