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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경제 이야기|‘허드서커 대리인’ &‘에린 브로코비치’

돈 둘러싼 음모와 배신… 대기업은 늘 그래

  • < 이명재/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 mjlee@donga.com

돈 둘러싼 음모와 배신… 대기업은 늘 그래

돈 둘러싼 음모와 배신… 대기업은 늘 그래
엔론에 이어 월드컴 등 유수의 미국 대기업들에 의한 회계 스캔들은 우선은 미국 주식시장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후유증은 아마도 글로벌 스탠더드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던 미국 대기업에 대한 신뢰의 붕괴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물론 일부 기업의 경우지만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에 ‘선진경영’의 모범으로 제시됐던 미국 기업들의 체면은 이번 사태로 형편없이 구겨졌다.

비단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 기업은 흔히 주주의 이익을 신탁처럼 떠받들고 유리처럼 투명한 경영을 한다는 듣기 좋은 수사(修辭)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도 드러났듯 사실 그 수사 뒤의 커튼은 속을 들여다보기 힘든 철옹성이다. 기업공개를 하고, 보기 좋게 꾸민 경영실적표를 내놓지만 그 성 안의 깊숙한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 얼마나 바깥으로 알려지는 것일까. 어쩌면 온갖 기업 감시제도는 역설적으로 기업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크린 위에서 퍼즐게임을 펼쳐 보이는 듯한 장기를 발휘하는 코엔 형제는 그 성 안의 풍경을 특유의 독설과 희화로 풀어냈다. 몇 년 전 개봉된 ‘허드서커 대리인’은 바로 기업의 심장부인 이사회의 풍경을 야유와 풍자로 클로즈업한 영화다. 이사회가 열리는 회의실 안은 그들이 즐겨 다루는 갱 영화의 한 장면을 빌려온 듯 마피아 집단을 연상케 한다.

영화는 회장이 자살한 뒤 2인자인 시드니(폴 뉴먼) 등 이사회가 회사 주식을 폭락시켜 죽은 회장의 지분을 헐값에 사들이려고 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은 허수아비 사장으로 앉아 회사 가치를 떨어뜨려줄 얼간이. 희생물로 선택된 가련한 주인공은 순진한 노빌(팀 로빈스)이다.



그러나 노빌-최근 실제 인물이 사망했다-이 엉뚱하게도 희대의 히트상품 훌라후프를 발명해 회사 주식값을 폭등시키자 이사들은 계략을 꾸며 그를 수렁에 빠뜨린다. 결국 노빌-혹은 정의-은 승리하고 사랑도 얻는다는 할리우드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영화는 이사회 혹은 대기업 내부의 세계를 풍자하는 현대판 우화로 읽힌다.

‘허드서커 대리인’에서 카메라가 기업의 ‘안’에 앵글을 맞췄다면 작년 줄리아 로버츠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카메라는 기업이 외부 세계와 만나는 접점을 잡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대기업은 여주인공의 상큼한 미모와 대척점에 서면서 시종 파렴치한 집단으로 묘사된다.

아이가 셋 딸린 가난한 이혼녀 에린이 사소한 부동산 거래 서류를 뒤지다가 대기업의 엄청난 음모를 알게 되고 주민들과 합세해 소송을 제기하려고 하자 대기업은 몇 푼의 돈으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한다. 법률 지식으로 무장한 회사측 일급 변호사들에게 에린은 “푼돈으로 주민들의 목숨을 사려고 하기 전에 당신 자신들의 척추와 자궁의 가치를 한번 따져보라”는 독설을 퍼붓는다. 에린과 주민들은 결국 32억 달러라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손해배상을 받는다.

‘허드서커 대리인’이나 ‘에린 브로코비치’의 해피엔드에서 관객들이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영화가 거대조직에 맞서는 개인들의 승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그 상대가 정부를 대체하는 신흥권력으로 군림하는 대기업이라면 그 카타르시스는 더 고조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꽃’으로 주로 기업을 그려왔던 할리우드는 이번 회계 스캔들로 새로운 소재의 샘물을 찾았을지 모른다.



주간동아 344호 (p79~79)

< 이명재/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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