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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디즈니와 차별되는 ‘자연예찬’

  •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디즈니와 차별되는 ‘자연예찬’

디즈니와 차별되는 ‘자연예찬’
일본 영화가 개방되기 이전 국내 영화 애호가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은 전설 그 자체였다. 그의 걸작 애니메이션들이 정상적 루트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지 못하고 음성적으로 나돌 때, 그의 작품들을 불법 복제품으로나마 소장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국제영화제 같은 일종의 ‘영화 해방구’에서도 그의 작품이 상영될 때면 일찌감치 입장권이 매진되곤 했다.

그런데 일본 영화가 개방되고 그의 대표작들이 국내 극장에서 정식으로 상영되었지만, 어쩐 일인지 열광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매년 한두 편씩 찾아오는 디즈니 제작의 장편 애니메이션에 관객이 꾸준히 몰리는 것에 비하면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홀대는 좀 의아스러울 정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각인시킨 그의 장편 데뷔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78년)가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화질이 떨어지는 복제품에 열광하던 마니아들, 입장권을 구하려고 야단법석을 떨던 마니아들에게 정식 개방된 일본 영화는 더 이상 숭배의 대상인 ‘컬트무비’가 아니라 일반 관객과 똑같이 관람료를 내고 보는 문화상품에 불과했다.

디즈니와 차별되는 ‘자연예찬’
그러나 마니아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고 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성마저 퇴색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여전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넘어 세계 애니메이션사의 지평을 넓히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의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일본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는가 하면,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2002년)에서 금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흥행성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끊임없이 추구해 온 문명비판 내지는 자연예찬의 분위기가 가득 넘쳐나는 영화다. 말하자면 문명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의 고통을 감싸안으려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도회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이사 가던 치히로 가족이 길을 잘못 들어 기이한 광경의 공간으로 빠져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마을은 꽤 번화한 듯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럽다. 게다가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다.

디즈니와 차별되는 ‘자연예찬’
치히로 가족은 마을을 헤매다 산해진미가 차려진 한 식당에 이르게 되고, 허기를 참다 못한 치히로의 부모는 앞뒤 가리지 않고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데 그만 돼지로 돌변하고 만다. 다행히 화를 면한 우리의 주인공 치히로는 부모를 환생시키기 위해 모험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이 영화의 중심 얼개다.

그러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감상하는 재미는 이런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있지 않다. 열 살 난 소녀 치히로의 종횡무진 활약으로 결국 부모를 구출한다는 설정 자체가 중요한 감상 포인트가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그랬더라면 이 영화는 어린이들에게만 재미를 주는 평범한 만화영화에 머물렀을 것이다.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는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이 작품에 금곰상을 갖다 바친 까닭은 다른 데 있다.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이 작품 속에 구현돼 있다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일본적인 근대의 풍경을 배경으로 해 자연과 문명의 충돌, 플라톤이 구분한 바 있었던 감각계와 예지계의 공존, 일본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의 혼용이라는 훨씬 심각한 주제의식을 아우르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일본적인 근대의 풍경이란 온천장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목욕문화를 말한다. 이 온천장이 작품의 주된 배경을 이루는데, 치히로는 온갖 신들을 위한 목욕탕을 운영하는 마녀 유바바의 주술을 풀기 위해 이곳에 위장취업을 했다. 특히 각종 산업폐기물로 인해 오물신으로 전락한 ‘강의 신’을 치히로가 목욕시키는 장면은 그 코믹 효과와 더불어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한 경고로 읽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 인간세계(감각계)와 영혼세계(예지계)의 조화로운 공존 가능성을 모색한 점이 돋보인다. 이 두 세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것이 애니메이션에 독특한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마녀 유바바가 치히로의 본명을 센으로 전유(專有)함으로써 그녀를 지배하고, 역으로 치히로가 자신의 본명을 되찾음으로써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설정은 일본이 근대화되면서 서구적 주체성을 확립한 것의 상징이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주는 자연친화적 분위기는 너무나 독창적이어서 판에 박힌 디즈니 식의 인공성과는 차별된다는 점이다. 자연미가 승리한 것이다.





주간동아 341호 (p80~81)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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