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9

2002.06.20

나 밝힌다! 어쩔래

‘여성 오르가슴 찾기…’ 3인의 당당한 주장 … 쾌락은 ‘원초적 본능’ 행복한 삶의 시작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0-13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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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밝힌다! 어쩔래
    옛날에 무덤 앞에서 부채를 쥐고 슬피 우는 여자가 있었다. 지나가던 장서방은 울음소리에 마음까지 찡해져 위로도 할 겸 사연도 들을 겸 여자에게 물었다. “곡소리가 어찌나 구슬프던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습니까?”

    그랬더니 여자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옷고름으로 닦으며 하소연했다. “제 남편이 죽은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죽으면서 하는 말이, 내 무덤에 풀이 다 죽거든 그때나 개가하라더군요. 그런데 3년상을 다 치르도록 무덤에 풀이 죽기는커녕 더욱 성성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제가 직접 이곳에 와서 부채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좀 빨리 말라죽을까 해서요. 벌써 몇 달째 이러고 있는데 한 귀퉁이만 조금 말랐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개가하기 어려울 것 같아 서러운 마음에 이렇게 울고 있답니다.”

    먹고 할 짓 없어 배부른 소리?

    나 밝힌다! 어쩔래
    이 말을 듣고 장서방은 어떻게 했을까. 행실 나쁜 여자라며 손가락질을 했을까. 아니, 장서방은 가지고 있던 도술부채를 꺼내 무덤에 대고 살살 부쳐 풀을 모두 죽여버렸고 여자는 좋아라 하며 산을 내려갔다.

    사랑에 솔직한 게 뭐가 나쁜가. ‘무덤에 부채질하는 여자’처럼 설화와 민담에 등장한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은 ‘내숭’과 거리가 멀다.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박미라 부사장은 각 지역의 구전설화를 채록하는 과정에서 “정절의 노예로 한숨짓기보다는 차라리 즐겁게 바람 피우는 여자를 발견했다”고 말한다(7년 전 ‘기센 여자가 팔자도 좋다’는 책으로 펴냈다). 그 내용을 추려 장차현실씨가 만화로 그린 것이 ‘색녀열전’이다. 여기서 ‘색녀’란 색녀(色女)가 아니라 찾을 색(索)의 ‘색녀’(索女)다.



    “통상 ‘밝히는 여자’라고 경멸했던 색녀에 대한 이미지를 과감히 뒤집었다. 제대로 밝히기만 한다면, 제대로 밝혀 일방적인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면 밝힐수록 좋다. 이제까지 제대로 밝히지 못한 여자들이 놀림감이 되고 피해자도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바라는 여자는 ‘밝히는 여자’이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여자’ ‘모색하는 여자’다.”(박미라, ‘색녀열전’ 후기)

    ‘색녀열전’이 우리에게 ‘제대로 밝히는 여자란 어떤 여자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면, 구체적으로 ‘밝힘증’을 가르치는 여자들이 있다. 자칭 ‘대한 여성 오르가슴 찾기 운동본부’를 표방한 팍시러브(www.foxylove.net)의 운영자 이연희(27)·이희영씨(26), 그리고 5년 전부터 ‘나의 복숭’이라는 아이디로 사이버 세계에서 필명을 날리고 있는 성칼럼니스트 이도희씨(54)가 주인공이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팍시러브 사이트는 남성의 관음증적 시각에서 운영하는 다른 성인 사이트들과 달리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의 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 팍시러브의 대장(팍시러브의 직함은 대장과 작전참모다) 이연희씨는 “남자의 성은 식욕처럼 본능적인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자의 성욕에 대해서는 ‘먹고 할 짓이 없으니까 배부른 소리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자의 성욕은 지극히 당연하며 여자도 적극적으로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어 이 사이트를 개설했다”고 말한다.

    이도희씨는 비엘커뮤니티에서 연재 중인 ‘도희의 솥뚜겅 칼럼’ 외에 아줌마닷컴, 475닷컴 등에서 솔직 당당한 부부의 성 이야기를 쓰고 있다. ‘악처부부일기’라는 책을 써냈고 2개의 팬클럽을 거느린 사이버 스타.

    이도희씨는 “오십이 넘은 사람에게 무슨 부부생활이 있나. 어차피 물기 없는 고목나무 신세인데…”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오십 넘으면 사람도 아닌가. 신식으로도 하고 구식으로도 하고 우리도 할 것 다 한다”고 응수. “신식, 구식의 차이가 뭐냐”는 질문에 대답 대신 특유의 경상도 말로 배꼽 잡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편이 장에 갔다 모처럼 영화에서 서서 하는 것을 본기라. 집에 돌아와 우리도 신식으로 한번 하자 해서 벽을 붙잡고 한참 하는데 그 바람에 찬장 냄비가 떨어져 하필이면 잠자고 있는 아들 이마를 친 기라. 아들 왈 ‘아부지 하던 대로 하소. 신식 찾다 아들 잡소’ 했다지.”

    나 밝힌다! 어쩔래
    ‘밝히는 여자가 팔자도 좋다’는 주제로 이야기판을 벌이자고 했더니 세 사람은 만사를 제치고 달려왔다. 이들은 여성의 밝힘에 대한 편견 혹은 오해를 없애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의기투합했다.

    연희: 밝힌다고 하면 이 남자 저 남자 가리지 않는 ‘옹녀’로 보는 시각부터 바뀌어야 해요. 나름대로 ‘밝히는 여자’를 재정의하면 ‘성에 대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닐까요?

    희영: 많은 남자들이 여자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자아도취에 빠져 여자를 만족시켰다고 떠들죠. 팍시러브 게시판에도 밤 11시에 호텔에 들어가 새벽 3시까지 여섯 번을 했다는 둥 정력을 자랑하는 남자들이 많은데, 정작 여자들에게는 하룻밤에 몇 번, 한 번에 몇 시간 이런 게 중요하지 않아요.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만족감이 있어야지.

    연희: 그러니까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잠자리에 들어오는 남자들에게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여자가 되자는 게 저희 운동의 취지예요. 아직까지 그런 말을 드러내놓고 하면 ‘선수 아냐?’는 부정적 시각으로 보니 유감이지만.

    도희: 맞습니다. 남자들의 의식부터 바뀌어야 해요. 여자들이 오르가슴에 솔직하지 않은 것은 남자들의 이중적 태도 때문이죠. 만약 신혼 첫날밤 첫 섹스에서 여자가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해요. 여자가 표현을 할까요? 못 느끼는 척하겠죠. 오해받을까봐.

    연희: 여자들의 성의식도 문제예요. 솔직히 저 역시도 가끔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처녀가 섹스를 하고, 좋으니 나쁘니 이야기를 하고, 적극적으로 오르가슴을 추구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이죠.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여자는 늘 수동적인 섹스밖에 할 수 없어요. 결혼해서 애 하나 낳으면 저절로 오르가슴을 알게 된다고 하는데, 요즘은 결혼해도 아이를 안 낳거나 늦게 낳는 경우도 있잖아요. 이미 20대부터 성생활을 즐기는 분위기이고, 애를 낳을 때까지 마냥 남자만을 위한 섹스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요즘은 여자들도 자아의식이 발달해 어떻게 하면 잘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배우려고 해요.

    희영: 하지만 여자가 성적 쾌락에 눈뜨는 것을 남자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도희: 남자들이 뭘 몰라서 그러지, 결혼하면 밝히는 게 당연하죠. 성적으로 잘 맞으면 사는 게 얼마나 즐거운데.

    연희: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죠. 정말 사이 좋은 남녀라면 섹스도 좋을 것이고, 섹스가 만족스러우면 두 사람 사이에 못할 이야기가 없으니 관계도 돈독해지잖아요. 섹스란 말 대신 몸으로 하는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해요.

    도희: 97년 외환위기 때 남편의 사업 실패로 우리 집 쫄딱 망했어요.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빈 몸으로 도망치듯 대구에서 의정부로 이사했죠. 그런 상황이니 남편은 의기소침하고. 그때 제가 먼저 ‘돈 없는 우리가 여행을 가겠나, 외식을 하겠나. 돈 없이 즐길 것은 이것밖에 없다, 섹스라도 즐겁게 하자’며 적극적으로 나갔더니 남편도 ‘옛날처럼 돈은 못 벌어 주어도 내가 아직 쓸 만하구나’라는 생각에 자신감을 얻고 다시 일을 하더군요.

    연희: 부부생활에서 섹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결혼하신 분들이 더 잘 아실 거예요. 섹스가 만족스러운 부부는 어떤 위기가 닥쳐도 함께 이겨내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중요한 섹스를 너무 무지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문제지만. 남자들은 단순 삽입행위로 여자를 만족시켰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오르가슴을 아는 여자라면 그런 일방적인 섹스를 거부하죠. 여기서 여자의 클리토리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실 여자의 오르가슴을 좌우하는 곳이 클리토리스인데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남자들이 수두룩해요. 결혼생활에서 우연히 클리토리스 자극에 의한 오르가슴을 경험했다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그 재미를 영영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어요. 팍시러브에서 ‘즐딸’(여성의 자위행위)을 권장하는 것은 자신의 성감을 찾아내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죠. 어떻게 해야 오르가슴에 도달하는지 알고 있는 여자라면 파트너와의 섹스에서도 적극적이 되죠.

    희영: 여자들은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남자에 대해서도 무지해요. 남자의 성기를 눈으로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고, 그러다가 상대가 원하니까 몸을 내주는 식으로 첫경험을 하죠.

    연희: 어릴 때부터 거기에 손도 못 대게 하는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자신의 몸에 대한 금기가 섹스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고, 결혼해서는 의무감 때문에 하고….

    세 사람의 대화는 적극적인 성이 여자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손바닥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듯 여자를 성적 쾌락에 무지한 상태(남자들이 순수하다고 믿는)로 묶어놓으면 남자가 아무리 카사노바라 한들 그 섹스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행복한 삶을 위해 밝히는 여자가 되자’는 구호를 외치며 이들은 오르가슴 찾기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여자의 쾌락을 곧장 외도, 불륜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프’의 박미라 부사장의 충고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자가 쾌락을 제대로 알면 아무하고나, 아무데서나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자도 마찬가지다.” 저서 ‘해피 섹스’에서 섹스를 하려면 제대로 하자고 주장했던 김이윤 목사는 인간의 몸을 악기에, 섹스를 연주에 비유했다. 같은 악기라도 연주자의 실력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을 창조해내듯, 같은 사람이라도 섹스를 하는 상대방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훌륭한 음악가는 함부로 악기를 바꾸지 않으며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의 성질과 특성을 잘 알고, 심지어 연주하는 장소의 특성까지도 고려해 완벽한 연주를 한다. 두 사람이 함께 맛보는 오르가슴은 최고의 연주에 대한 박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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