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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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禁女의 벽’ 이렇게 높아서야…

전체 후보자 중 겨우 3.6% … 당선 가능성 낮다는 선입견 가장 문제

  •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04-10-13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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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 ‘禁女의 벽’ 이렇게 높아서야…
    2002년 6월 한국 지방선거에서 여성은 없었다. 이번에도 여성은 ‘아웃사이더’였고 선거는 남성, 그들만의 잔치였다.

    여성은 16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한 명의 후보도 내지 못했다. 232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8명(3.4%)이 고작이었다. 이중 민주당과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후보는 4명뿐, 나머지는 무소속이다. 4대 선거와 비례대표의 총 입후보자 1만918명 중 여성후보는 394명, 3.6%에 지나지 않았다.

    왜 여성은 안 되는 것일까. 자질이 부족해서일까. 여성후보들과 여성단체의 입장에서 볼 때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남녀차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데 정치권만은 여성을 배척한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禁女의 벽’ 이렇게 높아서야…
    서울시의원 송미화씨는 이번 선거에서 서울 은평구청장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남자가 허들 1개를 넘을 때 여자는 10개를 넘어야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다’는 현실을 송씨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송씨는 2001년 환경운동연합, YMCA 등 시민단체가 선정한 시의회 의정활동 우수의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서울시의원 104명 중 시정질의를 가장 많이 했던 그는 행정부에 대한 정책비판과 대안 제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도록 지역 구민들을 찾아다니며 표밭 다지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그녀는 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서울시의원 벤치마킹 대상 1호는 송미화’라는 매스컴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남편 임근묵씨(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아내의 ‘정치적 야심’을 이해해 주고 집안일을 맡아주었다.



    그러나 민주당 구청장 경선의 뚜껑을 열어보니 송씨는 5명 중 3위였다. “나는 구청장 공천을 받기 위해 지난 4년간 지역봉사에 앞장섰다고 자부한다. 유권자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한때 구청장 후보는 송미화뿐이라고 당에서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은평구에도 ‘노풍’(盧風)이 불어 민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너도나도 구청장 공천을 받겠다고 나섰고, 나는 이들 후보들에게 힘없이 패배하고 말았다.”(송씨)

    송씨는 자신의 실패 원인을 ‘남성 중심 정당 구조’에서 찾는다. 민주적 경선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후보 선출권이 있는 대의원들, 대의원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한 지구당위원장은 남성후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禁女의 벽’ 이렇게 높아서야…
    여성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남성에게 없는 세 가지 장벽을 극복해야 한다고 한다. 첫번째는 남편과 시댁의 동의를 받아내야 한다. 두 번째, 능력과 성실성, 상품성에서 남성 경쟁자들을 압도해야 한다. 남성 정치인은 정치권 내 인맥 쌓기, 자금 동원력에서 대개 여성 정치인보다 훨씬 우월하다. 따라서 여성 정치인이 돈과 조직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유권자들을 직접 상대해 대중적 인기를 얻는 방법밖엔 없다. 이는 송미화씨가 택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관문은 ‘여성후보를 내면 당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편견이다. 특히 정치적 의미가 큰 기초단체장, 광역단체장 공천에서 이 마지막 장벽은 여성후보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는 명분으로도 작용한다.

    “남성 정치인들은 지역구에서 대의원들, 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기성 정치인들 혹은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스폰서들과 술자리 등 허물없는 자리를 끊임없이 가지면서 ‘형님, 동생 문화’를 만들어간다. 대체로 정치란 ‘끈끈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수혜와 반대급부의 거래’로 여긴다. 신참 여성 정치인은 이러한 ‘밤의 정치문화’에 동참하기 어렵다. 배타적 이너서클 문화에 익숙해 있는 주류 남성의 눈에도 여성 정치인은 달가워 보이지 않는다. 지역구에서 가장 큰 정치적 감투인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 공천이 여성에게 돌아오지 않는 것은 이런 요인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런 환경에서의 정당 경선은 본질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하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김영옥 국장)

    지방선거 ‘禁女의 벽’ 이렇게 높아서야…
    여성은 정치적 후발주자이면서도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은 진입장벽 앞에 서 있다. ‘이를 모두 거쳐 끝내 당선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은 여성의 도전 자체를 가로막는다.

    따라서 전국 대다수 지역의 결과는 자명했다. 여성후보들은 본게임에 올라가기도 전 정당 내 경선 과정에서 무더기 탈락했다. 기초단체장의 경우 민주당은 공천 희망자 11명 중 2명, 한나라당은 9명 중 2명이 공천에 성공했다. 4대 선거 공천 희망자 중 공천탈락 비율은 민주당이 70%, 한나라당은 65%(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자료)다. 무소속 등으로 어렵사리 본선에 참여한 여성후보들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선출직 공무원 자리의 30%를 여성에게 주자”는 것은 ‘페미니스트’의 주장만은 아니다. 특정 계층, 특정 출신지역, 특정 성별 중 어느 한쪽이라도 공무담임에서 지나치게 배제되는 것은 사회의 건강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대다수 나라가 현재 이를 실천하고 있다. 프랑스는 ‘시의원’의 47.5%(3만8106명)가 여성이다. 6월 현재 이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총선에선 577개 선거구 8456명의 국회의원 후보 중 3250명이 여성이다. 전체 후보의 38.5%다. 유엔개발계획(UNDP) 2000년 보고서에 따르면 ‘정치참여 여성 권한 척도’에서 한국은 0.8%(정무직 중 여성 비율)였다. 70개 국가 중 63위. 태국이 21%,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가 14.7%였다.

    여성단체들은 수년 전부터 ‘선출직 30% 여성할당제’를 들고 나왔다. 그 본격적 시험대가 이번 6·13 지방선거였다. 두 정당은 올해 초 여성계의 압력에 밀려 ‘지방선거 공천에서 여성에게 30%를 할당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으로 ‘정당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는 언어적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경기 안양에서 시의원 공천 약속을 받고 입당했던 한 여성단체 대표자는 나중에 해당 지구당이 경선을 하는 쪽으로 돌아서자 출마를 포기했다. ‘경선=여성후보 100전 100패’라고 확신했기 때문. 이 도시의 다른 시의원 여성후보는 경선과 비슷한 과정에서 낙마했다.

    지방선거 ‘禁女의 벽’ 이렇게 높아서야…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김영옥 국장은 “여성에게 본질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경선이 아니라 30% 할당이었다”고 말했다. 정당 공천제도가 지방선거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게 현 지방선거 구도다. 그런데 여성이 정당 내 경선을 통과할 가능성이 낮으므로 결과적으로 정당 공천제는 여성후보가 정작 유권자들을 상대로 심판받을 기회를 상당부분 박탈하는 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여성운동이 비교적 활발한 서울에서도 정당의 기초단체장 후보 경선을 통과한 여성은 민주당 이금라 강동구청장 후보 한 명뿐이었다. 강동구 길동사거리 이후보 사무실엔 ‘나와라, 여자 구청장’ ‘큰 그릇에 남녀 없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그러나 이후보 역시 완전무결한 개운함을 준 것은 아니었다. 이후보와 경쟁했던 남성후보측은 “이후보가 같은 지역구인 강동구 민주당 심재권 국회의원의 동생 부인”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이후보측은 “경선은 정당하게 진행됐다”고 반박했다.

    김명숙씨는 한나라당의 유일한 여성 서울시의원 후보가 됐다. 김씨의 남편 김화형씨는 현직 구의원. 지난 98년 남편 선거유세에서 찬조연설을 하다 자신에게서 ‘정치인의 끼’를 발견했다는 게 김명숙씨의 출마 동기다. 서울 관악구 구의원 재선에 도전하는 유정희 후보는 지난 4년간 도림천복원운동을 폈다. 그는 두 명의 여성을 설득해 관악 구의원에 함께 출마하도록 했다. 여성 정치참여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경기 고양시의원에 재출마한 김유임 후보는 일산 러브호텔 건립 저지운동을 벌여오면서 ‘생활정치’에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직접 정치를 하는 일에 매력을 느끼는 여성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에 남성중심적 정치문화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여성들은 왜 여성 도지사, 여성 구청장은 안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안양-군포-의왕 여성정치참여연대 박동순 부장은 ‘가부장적 남성 정치인들의 각성’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 시의원 중 여성후보가 47.5%나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당들이 반드시 여성을 50% 공천하도록 법으로 강제 규정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충격요법’이 필요하지 않은가.”(박동순 부장)

    여성 선출직이 늘었다고 프랑스 정치권이 더 무능해졌거나 부패해졌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6·13 지방선거에서 여성은 또다시 침몰했다. 그러나 노력했지만 실패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 역설적으로 지금껏 표출되지 못한 여성 내부의 ‘정치적 자아’를 비로소 일깨우는 계기로 작용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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