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4

2002.03.07

아뿔싸! 다 된 밥에 코 빠뜨렸네…

류시훈 7단(흑) : 왕리청 9단(백)

  • < 정용진 / 바둑평론가>

    입력2004-10-19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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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뿔싸! 다 된 밥에 코 빠뜨렸네…
    2월21일 벌어진 제26기 일본 기성(棋聖)전 도전7번기 5국에서 재일기사 류시훈 7단이 다 이긴 바둑을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날려버린, 도전기 사상 초유의 ‘기막힌’ 사건이 발생했다.

    수순이 그것. 끝내기까지 모두 마치고 공배를 메우는 과정에서 백1로 단수쳤을 때 흑이 ‘가’에 잇지 않고 무심코 2로 공배를 메운 것. 이때 왕리청(王立誠) 기성이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입회인에게 “흑 여섯 점을 따내도 됩니까?”라고 물었다. 놀란 류 7단이 “아까 293수째 시점에서 서로 종국을 인정하지 않았느냐?”며 항의했고, 이에 왕기성은 “못 들었다. 나는 종국에 합의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대국은 1시간이나 지연됐고 이 부분에 대한 비디오 확인 결과 왕 기성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백이 ‘가’로 흑 여섯 점을 따내자 얼굴이 벌게진 류 7단은 돌을 던졌다. 정상적으로 계가했다면 흑이 반면 9집을 남겨 덤을 제하고도 3집 반을 이기는 상황. 기성전은 우승 상금만도 4200만엔인 일본 최대 기전. 이 판은 2승2패로 동률을 이룬 가운데 맞이한 대국이라 2판 중 1판만 승리해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중요한 일전이었다. 승점을 올리긴 했으나 왕 9단에 대한 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바둑의 예도와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의 기성답지 못하다는 것.

    재작년 서울에서 벌어진 삼성화재배 예선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윤현석 7단이 일본기사와 접전을 마치고 계가를 하기 위한 공배를 메우던 중 상대가 공배 메우는 데만 신경 쓴 나머지 자기 돌이 단수된 상황을 미처 못 보고 다른 데 두자 “이어가야죠”라고 점잖게 일러주며 양보한 것. 그 바둑은 윤 7단이 졌다. 직후 “왜 가차없이 때려내지 않았느냐?”고 묻자 윤 7단은 이렇게 대답했다. “에이∼, 그렇게 이겨서 뭐 하게요? 아마추어도 공배를 메우는 상황이라면 바둑이 종국됐음을 서로 인정하는 단계인데 하물며 프로가….”

    도전 6국은 3월 6~7일 열린다. 300수 끝, 백 불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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