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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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검찰 인사, 역시나 기대 이하

지역색 여전·게이트 수사에 대한 문책도 부실 … “정치권 입김 언제까지” 뒷말 무성

  • < 이명건/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 gun43@donga.com

    입력2004-10-29 1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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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나 검찰 인사, 역시나 기대 이하
    이명재 검찰총장이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검찰 안팎에선 그의 취임이 곧 ‘조직 개혁’과 ‘분위기 쇄신’으로 연결될 것이란 기대를 많이 했지만 현재까지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부정적 평가가 많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간 단행된 검사장급 이상과 중간간부 인사의 절차 및 결과 때문이다.

    검찰 위기가 ‘인사 난맥’에서 비롯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에서 신임 총장이 주도할 인사는 조직 개혁과 분위기 쇄신의 요체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실제 검사장급 이상 인사는 절차상 연기를 거듭하며 진통을 겪었고, 중간간부 인사의 결과는 ‘부실 수사’에 대한 문책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특수ㆍ공안 수사를 담당하는 일부 주요 보직에 특정지역 출신이 옮겨가거나 유임돼 ‘지역색 배제’에 실패했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의 한 검사는 “겉모양을 그럴듯하게 갖춰 지역을 안배하고 그간 소외받은 검사들을 발탁해 능력에 따른 인사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연기 거듭하며 막판 뒤집히기도

    이와 관련, 검찰 내부에선 정치권이 구태를 벗지 못하고 집요하게 인사과정에 개입했고, 버티던 이총장도 이를 완전히 배척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평가를 받게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중견 검사는 “올해 지방선거와 대선을 치러야 하는 정치권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선거를 관리할 검찰을 통해 유리한 입장에 서려는 목적으로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이번 검사장급 이상 인사에서 정치권의 입김 때문에 난항을 겪은 대표적 사례는 서울지검장 인선. 이 자리엔 당초 사시 14회의 부산 출신 검사장이 내정돼 있었으나, 여권에서 사시 13회인 호남 출신 검사장을 미는 바람에 법무부 장관의 인사 결재를 위한 대통령 면담이 전격 취소됐고 인사 발표가 미뤄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상대적으로 지역색이 옅은 경기 출신 이범관 검사장이 서울지검장으로 임명되자 검찰 주변에선 이총장이 그래도 끝까지 버텼기 때문에 타협안으로 제시된 비호남 출신이 채택됐다는 말이 파다했다. 그러나 이서울지검장은 현 정권 초기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냈고,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 경력도 있는 등 정치권과 밀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간간부 인사에서도 정치권과 지근 거리에 있던 박영수 청와대 사정비서관과 김회선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이 각각 주요 보직인 서울지검 2차장과 3차장에 임명됐다. 특히 3차장은 정치·경제적으로 민감한 대형사건을 주로 수사하는 서울지검 특수 1ㆍ2ㆍ3부를 지휘하는 자리다.

    당초 박차장은 경기지역 지청장으로 내정돼 있었고 김차장이 2차장을 맡기로 돼 있었으나, 외부 입김이 작용해 막판에 자리가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차장 본인도 정권 말기에 부담을 갖고 민감한 수사를 할 수밖에 없는 3차장보다는 2차장직을 원했다는 말도 나온다.

    대검 중수부 명동성 수사기획관의 인천지검 1차장 전보나 이승구 서울지검 북부지청 차장이 광주지검 차장으로 간 것에 대해서는 부실수사 책임자에 대한 제대로 된 문책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명차장은 지난해 ‘이용호 게이트’ 수사의 지휘라인에 있었고 이차장은 2000년 ‘진승현 게이트’ 수사의 실무 책임자였다. 이들은 당초 한직인 고검으로 발령이 날 예정이었으나 인사 발표 직전 명차장은 호남 출신 배려 차원에서, 이차장은 정권 초기 정치권 사정 수사의 주역이었다는 점이 감안돼 구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에 대한 인사가 막판에 뒤집히는 바람에 기존 인사안에 상당한 손질이 가해졌고, 이 때문에 인사 발표 시점이 늦어지면서 법무부 실무자들이 동분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 여파로 당초 주요 보직에 발령날 사람이 엉뚱하게 고검으로 밀려났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입김 때문에 이총장이 취임 직후 밝힌 ‘특수 공안 수사 물갈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다.

    최일선에서 대형 비리사건 수사를 맡는 서울지검 특수1부장과 선거 사범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지검 공안1부장은 특정지역 출신이다. 또 검찰 정보 수집을 총괄하는 대검 범죄정보기획관도 현 정부 초기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했던 특정지역 출신이 맡게 됐다.

    이에 대해서는 “무시할 수 없는 인사 원칙인 ‘지역 안배’에 따라 주요 보직을 인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지 정치권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며 개인의 능력도 충분히 고려됐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태를 벗지 못할 경우 ‘이명재 검찰’의 앞날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검사들이 많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인사안이 막판에 뒤집히는 상황은 민감한 정치적 사건 처리 방향에도 외부 영향력이 미칠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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