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3

2002.02.28

오락가락 항공정책… 대한항공 열받았네

상하이·베이징 노선 배분 강력 반발 … 건교부에 ‘행정정보 공개’ 요청 등 정면대결 선언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10-28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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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락가락 항공정책… 대한항공 열받았네
    런던 노선과 상하이(上海), 베이징(北京) 노선 증편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대한항공과 건설교통부 간의 갈등이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대한항공측은 노선 배분 방안이 발표된 지 9일 만인 지난 2월18일, 이번 노선 결정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건교부를 상대로 행정정보 공개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항공사가 노선 배분을 둘러싸고 건교부를 상대로 행정정보 공개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명백한 ‘아시아나 밀어주기’ 아니냐

    대한항공측은 건교부가 설 연휴 직전인 지난 2월9일 런던 노선 주 3회 증편분을 아시아나측에 주는 항공노선 배분 방안을 발표하자 일방적인 ‘아시아나 몰아주기’라며 반발해 왔다. 건교부는 이날 런던 노선 이외에도 현재 아시아나가 단독 취항하는 인천∼상하이 노선의 주 3회 증편분과 아시아나가 주 10회 운항하는 인천∼베이징 노선의 주 3회 증편분도 아시아나에 배분함으로써 알짜배기 노선에 대한 편파 배분 논란을 낳은 바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濟南), 샤먼(廈門) 등 중국 내 신규 노선을 포함해 5개 노선에 주 18회 운항을 허가받았다.

    대한항공측은 설 연휴가 끝난 뒤에도 건교부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런던 노선 ‘사전 내락설’과 함께 나종일 주영(駐英) 대사의 이름까지 거론하고 있다. 런던 노선의 경우 지난해 6월 영국 정부와의 항공회담을 통해 주 3회 증편에 대해서는 이미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최근 시행시기를 조기 결정한 데는 나종일 대사가 나서서 영국 정부에 이를 강력히 요구했고, 이러한 배경에는 사실상 건교부의 ‘아시아나 몰아주기’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 그러나 건교부측은 영국 정부가 지난 99년 대한항공의 런던 노선 사고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행시기를 늦춰왔다가 이번에 우리나라가 항공안전 1등급을 회복하자 시행 시기를 결정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건교부의 설명대로 사고조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도 증편 시기를 조기 결정한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대목.

    대한항공이 주장하는 ‘사전 내락설’ 역시 점점 구체성을 더하고 있다. 애초 대한항공측이 “건교부 고위 관계자가 대한항공 최고경영진에 전화를 걸어와 ‘런던 노선은 아시아나로 결정됐으므로 중국 노선에서 배려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진 사전 내락설의 배경으로 대한항공은 아예 모 국장을 지목하고 나섰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이 국장이 ‘한중 항공회담에서 상하이 복수취항이 허용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를 대한항공측에 주겠다’고 언급해 놓고 말을 뒤집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국장은 “그런 전화를 한 적이 없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노선 배분 결정과정과 관련해서도 건설교통부 함대영 항공국장은 “런던 노선의 경우 장관에게 보고된 3개 방안 중 1개만이 ‘아시아나 주 2회, 대한한공 주 1회’로 되어 있었다”며 장관 결재과정에서 아시아나 쪽으로 선회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상하이 배후 지역으로, 양 항공사로부터 ‘황금 노선’으로 ‘구애’를 받던 서울~항저우(杭州) 노선도 실무진이 올린 방안에서 모두 아시아나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는 것.

    그러나 대한항공측은 ‘사전 내락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임인택 건교부 장관이 애초부터 ‘친(親)아시아나 성향’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임장관은 지난 96년 9월부터 99년 1월까지 2년4개월간 아시아나 계열사인 금호생명의 상근 고문을 지낸 바 있다. 금호생명 고문 직위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임장관이 교통부 장관(1990~1991)을 지내고 난 뒤 금호측에 영입된 것을 볼 때 사실상은 아시아나항공 쪽 업무에 치중하지 않았겠느냐는 지적. 금호그룹 관계자 역시 “고문의 위치로 볼 때 금호생명에 대한 자문보다는 회장에 대한 조언이나 그룹 경영에 대한 자문을 맡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아시아나측은 임장관의 ‘아시아나 편들기’ 주장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아시아나측 역시 대한항공 최고경영진과 고교 선후배 사이인 건교부 국장의 이름까지 거명하는가 하면 “그렇게 따지면 대한항공이 뇌물 수수건만으로 날려버린 건교부 간부들이 도대체 몇 명이냐”고 흥분하기도 했다.

    오락가락 항공정책… 대한항공 열받았네
    하지만 임인택 장관과 대한항공의 ‘악연’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임장관이 지난 99년 항공산업 빅딜 과정에서 통합법인으로 출범했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대한항공측에도 참여를 요청했으나 대한항공측이 이를 거절해 갈등을 겪기도 했다는 것.

    따라서 대한항공이 행정정보 공개 요청을 내는 등 전에 없던 강경 대응으로 건설교통부와 정면대결을 선언하는 것도 ‘임장관 체제에서는 더 이상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기에는 조양호 회장 등 최고경영진의 의사가 확고한 것으로 알려져 사태가 쉽게 일단락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건설교통부 역시 대한항공에 ‘언론플레이 금지’를 경고하고 나서는 등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어 사태는 감정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마저 있다.

    한편 일부에서는 건교부의 노선 배분 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들도 있다. 현재 건교부의 항공노선 배분은 지난 99년 규제완화 차원에서 항공법에 근거한 지침이 폐지된 상태에서 내부 지침에만 근거하고 있다. 99년 7월 제정된 ‘국제 항공정책 방향’ 등이 그것. 이 정책 방향에는 복수취항 조건, 노선 배분 시기 등 커다란 윤곽만 언급되어 있다.

    1국 1항공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노선 배분을 둘러싼 국적 항공사간 경쟁이나 갈등 같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아예 없다. 그러나 아메리칸 에어라인(AA) 등 ‘빅3’가 경쟁중인 미국이나 파산 이전에 안셋 항공과 퀀타스 항공이 경쟁했던 호주 등이 주로 국내 항공사간 노선 배분 문제로 치열한 경쟁을 펼쳐왔다. 이와 관련해 교통개발연구원 항공교통연구실 허종 박사는 “미국의 경우 노선 배분에 대해 이의를 신청할 수 있고 공청회를 통해 이견을 수용하기도 하며, 호주는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중립적 위원회에서 노선 배분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교통개발연구원에서도 현재의 노선 배분 체제로 굳어지기 직전인 지난 98년 민간 전문가들 위주로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허박사는 “미국의 경우 노선 배분을 발표하면서 결정의 근거나 배경을 법원의 판결문처럼 상세히 발표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그러한 의무가 없다 보니 결과만 발표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임인택 장관과 건교부를 상대로 정면대응을 선언하고 나선 대한항공 역시 제도를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번 노선 배분 결정을 번복하기 위한 묘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외국 항공사와의 시장 경쟁은 무시한 채 불필요한 국내 경쟁만 부추기는 건교부의 정책에 경종을 울리겠다”고 말했다. 건교부에 대한 공격이 ‘일회성 한풀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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