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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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관행 ‘바꿔 다 바꿔’

정몽규 회장, 잇따라 과감한 경영 방식 도입 … ‘공사판 생리 모르는 젊은 회장 과욕’ 비판도

  •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4-10-28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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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업계 관행 ‘바꿔 다 바꿔’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실험’은 ‘묘수’인가 ‘악수’인가. 1999년 부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사촌형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간 ‘빅딜’로 하루아침에 자동차 경영인에서 건설업 경영인으로 변신한 정몽규 회장의 경영 방식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건설업계의 기존 관행이나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

    그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우리 건설업계의 고질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묘수’라고 주장한다. 반면 비판적인 사람들은 정회장의 시도는 ‘악수’에 불과하며 따라서 당연히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외국에서 공부한 내용을 공사판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젊은 회장의 ‘과욕’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2월엔 상품기획·마케팅 팀 신설

    2월 초 단행한 조직 개편만 해도 그렇다. 상품기획팀과 마케팅팀 신설을 핵심 내용으로 한 이번 조직 개편을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아파트(상품)를 기획하고 마케팅하는 팀을 굳이 따로 둘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산업개발측은 “과거처럼 지어놓기만 하면 분양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아파트에도 브랜드 바람이 일고 있으며, 분양가 자율화 이후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가 분출하고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라고 설명한다.

    정회장이 현대산업개발을 맡은 이후 주력해 온 전자 입찰 등 업무 전산화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현대산업개발은 현재 하도급업체(협력업체)도 전자입찰을 통해 선정하고 있는데 “건설업계의 고질인 부정의 소지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건설업체의 생리를 잘 모르는 정회장의 ‘과욕’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건설업계 관행 ‘바꿔 다 바꿔’
    건설업계에서 협력업체 선정 과정은 온갖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돼 왔다. 일부 협력업체들은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비자금 조성을 통한 로비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 현대산업개발은 이런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자입찰을 과감히 도입한 것. 그러나 한 협력업체 대표는 “협력업체 대표들은 원청업체 관계자들의 눈빛만 보고도 그 뜻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전자입찰제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몽규 회장의 이런 ‘실험’에 비판적인 회사 안팎의 관계자들도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 건설업체의 관행을 하루아침에 급격히 바꾸려다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회장의 구조조정 방식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직원들도 있다. 정회장은 현대산업개발 입성 이후 서울 역삼동 I타워를 매각하는 등 기존 자산을 매각하고 분사를 추진하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 작업에 나섰다. 이에 대해 일부 직원들은 “나중에 건설 경기가 좋아졌을 때 어떻게 하려고 있는 땅 없는 땅 다 내다 파느냐”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회장이 건설업에 흥미가 없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업계에서도 “현대산업개발이 건설 아닌 다른 쪽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정회장의 한 측근은 “정회장은 ‘잘 아는 것을 해도 망할 수 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은 할 수 없다’고 항상 강조한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정회장이 경영을 맡은 이후 부동산 관리 회사인 아이서비스㈜, 홈 오토메이션 개발 회사인 ㈜아이콘트롤스 등을 설립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모색했지만 모두가 건설업과 관련 있는 사업”이라는 얘기다.

    정회장의 ‘실험’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회장의 가장 강력한 원군은 시장이라고 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이동섭 연구원은 “현대산업개발은 정회장의 강력한 구조조정에 따라 2000년 말 1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현재 7500억원 수준으로 차입금이 급감하는 등 재무구조가 대폭 개선돼 정상적인 회사로 다시 태어났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원은 특히 현대산업개발이 기존의 주택사업 분야에서 벗어나 토목건축 분야를 집중 육성키로 한 데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어차피 주택시장이 성숙시장에 도달한 상태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현대산업개발의 사업 포트폴리오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지난해 현대산업개발 매출의 70% 정도는 주택 분야가 차지하고 있다. 토목건축 분야는 15% 안팎에 불과한 상황.

    시장의 이런 평가와 달리 회사 내에서는 인사를 둘러싸고 불만이 적지 않다. 정회장이 현대자동차 출신들을 중용한다고 비판하는 것. 현대산업개발 임원은 정세영 명예회장을 비롯해 모두 46명이며 이중 현대차 출신은 7명으로 숫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방주 사장-이준하 마케팅 담당 상무보-김대철 공사관리 담당 상무-김세민 경리재정 담당 상무`-이창우 감사 등 현대차 출신들이 요직을 맡고 있으며 인사 파트도 현대차 출신의 H부장이 담당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행 ‘바꿔 다 바꿔’
    이런 인사에 대해 일각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LG건설의 한 임원은 “일본 자동차업체 닛산 카를로스 곤 사장도 르노에서 데려온 임원들을 핵심 포스트에 전진 배치해 르노를 부활시키지 않았느냐”면서 “결국은 회사 경영을 어떻게 하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정몽규 회장-이방주 사장의 투명 경영 의지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상반기 무렵 현대산업개발 자금난 소문이 끊이지 않았을 때 이방주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면담을 요청했는데, 이사장이 일면식도 없는 한 애널리스트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투명 경영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정몽규 회장도 이사장의 이런 의지에 대해 전폭적인 신임을 보내고 있다는 후문. 정회장이 평소 앞에 나서지 않고 이사장을 중심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경영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에서도 이사장에 대한 두터운 신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정회장의 한 측근은 “정회장은 평소 ‘주주를 위해 경영한다’는 얘기를 자주 하고, 로비자금을 이용한 공사 수주를 굉장히 싫어하는데 이사장도 정회장의 이런 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과정이야 어찌 됐든 정회장이 자금난 소문에 시달리던 현대산업개발을 ‘정상화’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올해부터라고 말한다. 경영 정상화 과정을 거친 현대건설이나 대우건설 역시 공격 경영에 나설 것으로 보여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그런 점에서 건설업 경영인 정몽규 회장에 대한 ‘시험’은 이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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