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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유토피아로 가는 열쇠

유토피아로 가는 열쇠

유토피아로 가는 열쇠
때가 때이니만큼 이런저런 모임이 잦다. 마이크를 잡을 일도 자주 있다. 다들 흥에 겨워 한 곡조씩 하는데, 노래 못하는 사람들로서는 여간 난감하지 않다. 마지못해 대충 순서를 때우고 나면, 여기저기서 ‘많이 늘었다’고 공치사를 해준다. 벌써 수십년째 듣는 ‘칭찬’이다. 정말 그렇게 노래 실력이 늘었다면 벌써 가수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럴 때마다 노래 잘하는 사람이 정말 부럽다. 분위기 따라 자신의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재능임에 틀림없다.

노래뿐이랴. 주변에는 정말 다재다능한 사람이 많다.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뭐든 가리지 않고 척척 잘하는 사람이 있다. 거기에다 부모까지 잘 두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남보다 저만큼 앞서갈 수 있으니 말이다. 영어로 말하면 couldn’t be better인 셈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한국의 어느 교수가 철학자 칼 포퍼에게 인삼을 선물했다. 그러면서 인삼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랬더니 포퍼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만병통치약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병에도 효험이 없다는 말과 같다. 무릇 모든 약은 한 가지 병에만 효과가 있는 법이다.”

포퍼의 이 말은 많은 위안을 준다. 다재다능한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두루두루 잘한다는 것은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니고 무엇인가. 백 번 양보해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 있다고 치자. 모르긴 해도 그 사람은 교만과 자기도취라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셸 실버스타인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이라는 우화(寓話)도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한 조각을 잃어버려 이가 빠진 동그라미, 슬픔에 찬 동그라미’가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길을 떠났다. 이가 빠져 빨리 구를 수 없기에 숱한 고생 끝에 여러 조각들을 만났다. 그러나 어떤 것은 너무 작아 헐렁하고, 어떤 것은 너무 커 맞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꼭 맞는 제 짝을 찾았다. 이제 동그라미는 완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너무 빨리 굴러가는 통에 멈출 수가 없었다. 꽃을 만났지만 향기조차 맡을 수 없었다. 너무 완벽한 까닭에 노래도 부를 수 없었다. 동그라미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찾았던 쪼가리를 슬며시 내려놓고 다시 길을 떠났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 서서히 데굴데굴 굴러가며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이라는 노래를 끝없이 불렀다고 한다.



‘예기’(禮記)는 욕망을 제멋대로 두지 말고 즐거움은 다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뜻은 채우지 말라고 경고한다. 돼지더러 욕심이 많다고 하지만, 원래 돼지의 위장은 항상 70%만 차 있을 뿐이다. 결코 꽉 차는 법이 없다. 그래서인지 약수터의 어느 노인은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지 않는다. 물통이 숨이 막힐까봐 걱정된다는 것이다. 철학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살기가 힘들다 보니 자꾸 남의 떡이 커 보인다. 내 신세가 원망스러워진다. 요술 방망이를 꿈꾸고 별천지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러나 축구 경기의 하이라이트만 골라 보는 것만큼 싱거운 것이 또 있을까.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기다림이 있어야 삶이 의미 있는 것이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도 틀리지 않은 것이다.

소식(小食)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정강이까지만 물이 차면(自足) 고마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세상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짜증낼 일이 아니다. ‘냉담(冷淡)이라는 사치로 무장할’ 일은 더욱 아니다. 유토피아(utopia)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우리가 사는 바로 이곳이 유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며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그것이 곧 유토피아로 가는 열쇠가 아닐까. 새해 맞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주간동아 316호 (p10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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