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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길을 따라서’|42번 국도

겨울 낭만을 달려 東海 바다로

  • < 양영훈 / 여행작가 > www.travelmaker.co.kr

겨울 낭만을 달려 東海 바다로

겨울 낭만을 달려 東海 바다로
42번 국도의 수도권 구간은 늘 혼잡하다. 특히 인천 남동공단과 반월공단을 거쳐 수원까지 이어지는 수인산업도로 구간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더욱이 제2경인고속도로·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 등과 인접하거나 교차되는 탓에 고속도로로 들고나는 차량들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끊임없이 거듭된다. 차창 밖의 풍경 또한 눈여겨볼 만한 게 별로 없을뿐더러 눈 돌릴 겨를은 더더욱 없다. 하나같이 앞차의 꽁무니만 바라보며 내달리기 일쑤다. 그래도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이라면 조급한 마음을 잠시 누그러뜨리고 수원성을 둘러봐야 한다.

겨울 낭만을 달려 東海 바다로
현군(賢君) 정조가 희원하던 이상국가의 베이스캠프이자 대학자 정약용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상이 녹아 있는 수원성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하지만 가장 환상적인 풍경은 눈 내린 겨울날에 볼 수 있다. 도심의 요란한 소음과 살풍경은 죄다 눈 속에 파묻히고 유려한 곡선의 성곽만 오롯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디론가 끊임없이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성벽 위를 찬찬히 걷노라면 20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수원시내를 빠져나온 42번 국도는 새말에 이를 때까지 줄곧 영동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사실 수원에서 여주 사이 구간은 평일에도 차량통행량이 많은 편이라 한껏 기분 내며 드라이브를 즐기기는 어렵다. 그러니 여주까지는 애초부터 단순명쾌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게 더 낫다.

겨울 낭만을 달려 東海 바다로
여주에는 영녕릉, 명성황후 생가, 신륵사, 목아박물관 등 잠시 들러볼 데가 참 많다. 모두 42번 국도변이거나 국도에서 가까워 찾기도 편하다.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는 영녕릉(사적 제195호)은 세종대왕 내외를 합장한 영릉(英陵), 그리고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를 모신 영릉(寧陵)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두 왕릉은 나지막한 산자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는데, 두 곳 모두 솔숲에 둘러싸여 있어 늘 청신한 기운이 감돈다. 특히 천하의 명당자리라는 세종대왕의 영릉은 일부러라도 한번 찾아볼 만한 유적이다.

영녕릉을 뒤로하고 여주대교를 건너면 세종릉을 이장한 후 왕실의 원찰(願刹)이 된 신륵사가 지척이다. 보물급 문화재가 7점에 이를 만큼 눈요깃감이 풍부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중에서도 비룡·구름·물결 등의 문양이 매우 정교하게 새겨진 다층석탑(보물 제225호)과 완벽한 원형을 갖춘 국내 유일의 전탑(塼塔)인 다층전탑(보물 제266호)이 눈길을 끈다.



여주군 강천면의 석량고개를 넘어서면 드디어 강원도 땅. 문막과 원주시내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치악산 북쪽 자락을 에돌아서니 이내 횡성 안흥면이다. 맛있는 찐빵 하나로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유명해진 곳이다. 저마다 원조임을 내세우지만, 진짜 원조는 30여년 경력의 심순녀씨(033-342-4460)가 운영하는 안흥찐빵과 심순녀안흥찐빵이다. 주말과 휴일이면 원조 맛을 보려고 알음알음 찾아온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겨울 낭만을 달려 東海 바다로
안흥 문재터널을 지나온 42번 국도는 ‘산다삼읍(山多三邑) 영평정(寧平旌)’ 중 두 고장, 즉 평창과 정선의 때묻지 않는 자연 속으로 내달린다. 심한 굽잇길과 고갯길도 눈에 띄게 늘어난다. 심지어 작은 면이나 읍 하나를 통과하려고 해도 고갯길 하나쯤은 반드시 넘어야 한다. 뱃재·멧둔재·비행기재·솔치재·반점치·큰너그니재·작은너그니재·갈고개·백복령 등은 모두 평창~정선 구간의 42번 국도에서 만나는 준령(峻嶺)들이다. 그러므로 겨울철에 이 구간을 지날 때는 복병처럼 나타나는 빙판길을 조심해야 한다.

고개를 넘고 골짜기를 벗어나면 어김없이 평창강과 조양강의 맑은 물길을 만난다. 멧부리와 물줄기가 한데 어우러진 이 땅에서는 발길 닿는 곳곳마다 절경이다. 또한 동강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자리한 문희마을 가는 길도, 우리나라 최고의 강변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광하교~고성리 강변길도 모두 이 구간에서 갈린다.

솔치재를 넘어온 42번 국도는 정선읍과 북평면을 거쳐 북면 아우라지(여량리)에 이르는 내내 조양강과 나란히 달린다. 어깨동무하며 달리는 물길과 찻길의 비좁은 틈 사이로 간혹 기찻길이 끼어들기도 한다. 기찻길 위로는 정선선(증산~구절리)의 통일호 열차가 객차 한 량만 달랑 매단 채 오가는데, 그 광경이 재미있기보다는 쓸쓸하고 애달파 보인다.

쓸쓸하기는 정선 제일의 관광지 아우라지도 마찬가지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꾸준히 이어지던 관광객의 발길도 겨울철엔 언제 그랬냐는 듯 뚝 끊기고 만다. 강 양쪽을 부지런히 오가며 손님을 실어 나르던 나룻배는 어디론가 치워지고, 얕아진 강 위에 놓인 나무다리가 나룻배 역할을 대신 맡았다.

아우라지를 지나온 42번 국도는 점차 물길과 멀어지더니 이내 깊은 산중으로 파고든다. 멀어지는 물길이 아쉽거든 여량2교를 건너기 직전의 오른쪽 길로 들어서는 게 좋다. 이 길은 조양강 상류인 임계천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다 작은너그니재 아래에서 42번 국도와 다시 합쳐진다.

작은너그니재 너머의 첫 마을은 임계면 송계리. 임계면 소재지인 이곳에서는 35번 국도와 42번 국도가 교차한다. 42번 국도의 종착점인 동해시로 가려면 송계 사거리에서 직진해야 한다. 해뜨는 동해바다가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해도 긴장을 풀기엔 아직 이르다. 대관령 못지않게 험한 백복령(해발 780m)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백복령의 구절양장 같은 고갯길, 설상가상으로 눈 쌓인 그 길을 내려오고 나면 온몸의 기운의 다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더불어 약 800리의 42번 국도 여정이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도 밀려든다. 뿌듯하면서도 허탈하다. 허탈한 가슴은 이제 추암 해변의 장엄하고도 희망찬 해돋이로 채울 수밖에 없겠다.







주간동아 316호 (p94~95)

< 양영훈 / 여행작가 > www.travelma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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