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립전 개막식 때 작가들이 선보인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은 한국 미술사 최초의 해프닝으로 기록된다. 비닐우산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 주위로 5명의 사람이 촛불을 들고 빙빙 돌다가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달려들어 우산을 찢고 부수며 땅바닥에 던져버리는, 지금 관점에서 보자면 꽤나 ‘유치한’ 내용이었다.
지난 6월20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에서는 60대의 연로한 작가들이 모여 34년 만에 그날의 해프닝을 재현했다. 이날 행사는 6월21일~8월1일까지 열리는 ‘한국현대미술의 전개 : 전환과 역동의 시대’전의 개막식. 작가 정강자씨는 당시의 해프닝에 대해 “기성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도전의식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비닐우산은 산업화·문명화의 상징이었고, 촛불은 정신을 상징했다는 것.
전시장에는 또 다른 해프닝을 담은 사진도 전시했다. 68년 서울 서린동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열린 ‘투명풍선과 누드’ 해프닝. 정강자씨가 상의를 벗고 몸에 풍선을 붙이는 퍼포먼스였는데, 당시로서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정씨는 “원래 완전 누드로 가려 했지만 세시봉 사장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상의만 벗었다”고 전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19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 다양하게 형성한 한국 작가들의 그룹운동과 실험적인 미술의 흐름을 짚어냈다. 미술사적으로는 앵포르멜과 모노크롬 사이에 끼여 있는 기간으로, 흔히 ‘과도기적 혼란기’로 간과되어 온 시기다. 그러나 사실은 이 시기에 다양한 미술그룹이 형성되어 역동적이고 실험적인 미술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이 때문에 우리 미술에서 새로운 미술양식의 수용과 조형적 실험이 진행될 수 있었음을 이번 전시는 보여주었다. 전시 기획을 맡은 큐레이터 강수정씨는 “당시의 새로운 미술양식과 조형적 실험을 보여줌으로써 그 역동성을 재조명하고 작가와 작품을 재평가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한다.
6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는 동인패 형식의 그룹이 점차 많아지면서 변화의 기미를 보였다. 67년 결성한 ‘청년작가연립전’은 앵포르멜로 대변되는 추상표현주의에 반기를 든 것으로 작가들은 옵아트, 팝아트, 네오다다 등 일련의 반미술 추세를 반영한 작품을 선보이며 기성 화단의 고정관념에 도전했다. 위에서 예로 든 일련의 해프닝 역시 나름대로의 형식과 내용으로 당대 현실과 작가들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담으려 한 것으로 평가한다.

“70년대 전반기는 어느 때보다도 실험의 열기와 방법의 적극성이 두드러진 시대였다. 종래의 형식적 틀인 회화와 조각을 벗어나 흙 종이 천 물 나무 돌 횟가루 같은 매체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고, 공간과 시간, 장소와 환경의 문제, 상황 속에서의 미술의 위상 등 본질적인 물음들을 제기하였다”고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말한다.
전시에는 박서보 하종현 서승원 김구림 최태신 김동규 신학철 이강소 등 작가 50여 명의 작품 170점이 나와 있다. 대형 석고로 만든 입체작품, 네온을 이용한 설치작품, 컬러와 흑백으로 편집한 실험영화 등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작품들로, 당시 미술계의 실험적인 에너지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시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간동아 291호 (p8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