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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흘리는 코소보, 멀고 먼 독립의 길

1월 의회구성 총선 앞두고 긴장 여전… 영토 분할 민족 간 독립 ‘최선의 해법’일 듯

  • <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피흘리는 코소보, 멀고 먼 독립의 길

피흘리는 코소보, 멀고 먼 독립의 길
코소보 전쟁이 끝난 지 꼭 2년이 되었다. 코소보 자치를 부르짖던 200만 알바니아계와 그들을 ‘인종청소’하려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모두 깊은 상처를 입었다. 1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밀로셰비치는 전쟁범죄자로 낙인찍혔다. 코소보 전쟁은 오래갈 후유증을 낳았다. 다수 알바니아계와 소수 세르비아계(20만) 사이엔 불신과 증오의 벽이 두껍게 쌓였다. 툭하면 유혈충돌이 벌어지는 곳이 코소보다.

나토(NATO)군을 주축으로 한 3만 명의 코소보평화유지군(KFOR)은 긴장을 풀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코소보는 11월 코소보 의회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 지역 최대 정치행사다. 코소보의 최종 운명은 아직 안개 속이다. ‘세계의 화약고’란 별칭에 걸맞게 발칸반도는 90년대를 잇단 분쟁으로 지샜다. 올해 들어서도 다시 포연(砲煙)이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마케도니아다.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알바니아계 무장세력이 정부군을 상대로 한 싸움은 곧 끝날 것 같으면서도 3개월을 끌어오고 있다. 알바니아계는 정부군이 공세를 멈추지 않을 경우 수도 스코프예를 포격하겠다는 위협마저 가하는 중이다. 이 바람에 새로운 난민이 대량 생겨나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초부터 마케도니아에서 전쟁을 피해 코소보로 피신해 온 알바니아계 난민은 6월20일 현재 4만1000명에 이른다. 최근 열흘 사이에만 2만7000명이 넘어왔다.

마케도니아 난민 4만 명 피신

마케도니아뿐 아니다. 유고연방 정부군이 지난 5월 말 접수한 코소보-세르비아 접경 프레세보 계곡 일대의 마을들도 긴장상태다. 지난 99년 6월 나토군이 코소보로 진입하면서 너비 5km로 경계선을 따라 완충지대로 설정한 이곳엔 그동안 알바니아계 무장세력이 둥지를 틀면서 벨그라드 정권에 맞서온 곳이다. 코소보 접경지역에 사는 2만여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코소보로 편입되길 원했다. 막상 세르비아군이 막강 화력을 앞세워 들어올 때 대부분의 알바니아 민병대원들은 코소보로 몸을 피했지만, 유혈충돌 가능성은 언제라도 있다.

코소보 북부 미트로비차는 발칸반도의 긴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인구 10만을 넘는 이 도시를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이바르강이 알바니아-세르비아 대치선이다. 남부는 알바니아계가, 북부는 세르비아계가 주도권을 쥐고 맞서는 중이다. 코소보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트로비차는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사이에 충돌이 끊임없이 있어 왔고 이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상황이다. 6월16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코소보를 찾은 시점과 거의 동시에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15개 국 대표단이 미트로비차를 방문해 양쪽 지역 지도자들을 만나 대화와 화해를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피흘리는 코소보, 멀고 먼 독립의 길
유엔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는 코소보에 조화로운 다민족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사이의 증오와 불신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지난 99년 6월 나토군이 코소보평화유지군으로 들어온 이래 코소보는 유엔의 보호령과 같은 처지다. 유엔코소보행정청(UNMIK)이 8·15 광복 뒤 남한의 미군정청(1945∼48년)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코소보는 오는 11월17일 총선을 앞두고 있다. 정원 120명의 코소보 의회를 구성할 이 선거는 코소보인들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다. 100명은 비례대표제 방식에 따라 투표에 의해, 나머지 20석 가운데 10석은 세르비아계, 그리고 나머지 10석은 집시를 비롯한 소수 공동체에 할당할 예정이다. 코소보 의회를 구성하면, 자체 입법활동을 할 것이고 코소보 행정을 맡을 수상도 뽑을 것이다. 그러나 유엔이 코소보에 그리는 그림은 ‘임시 자치정부’(Provisional Self-Government)일 뿐이다. 국제법상 코소보에 대한 영유권(주권)은 유고연방, 다시 말해 벨그라드 정권에게 있음을 유엔은 인정하고 있다. 11월 총선 이후 구성할 코소보 자치정부는 어디까지나 코소보의 최종 지위가 드러날 때까지 한시적인 임시기구라는 것이다.

코소보의 알바니아계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11월 코소보 총선은 코소보가 독립국가로 가는 역사적 한걸음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한국으로 치면 48년의 제헌의회 선거 같은 것으로 여긴다. 코소보 알바니아인은 이 선거로 구성된 의회에서 코소보 헌법을 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독립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궁극적으로는 독립국가를 이끌 정부를 구성하리라는 희망을 지니고 있다. 알바니아계의 이런 희망을 잘 알고 있는 벨그라드 코슈투니차 정권은 UNMIK에 의심스런 눈길을 보낸다. 겉으론 임시자치정부 구성을 준비한다면서 결국 알바니아계 손을 들어주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지난 6월16일 코소보를 방문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코소보의 유고연방 내 통합, 다시 말해 벨그라드 정권의 코소보 영유권을 보장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현재 코소보에는 3100명의 러시아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다.

발칸반도는 지난 80년대 냉전시대에 가졌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잃은 곳이다. 미국이나 러시아나 이렇다 할 이해관계가 있는 곳이라 보기도 어렵다. 특히 미국의 시각에서 손익계산을 따지자면‘지출은 많고 수입은 없는’ 곳이 발칸이고 코소보다.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면서 평화유지군을 내보낸 전임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리 부시 행정부는 발칸에 파병한 미군을 거두어들이려는 입장이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나 파월 미 국무장관은 기회 있을 때마다 철군을 언급했다. 미군은 현재 보스니아에는 3500명, 코소보에 6000명이 주둔중이다. 한마디로 발칸에서 발을 빼려는 것이 미국의 발칸정책이다. 그런 만큼 코소보를 비롯한 발칸반도에서 어떠한 무력충돌이 벌어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 95년 보스니아 내전을 끝내면서 맺은 데이튼 평화협상 때 확정한 현재의 국경선이 바뀌는 것도 미국은 바라지 않는다.

4차에 걸친 발칸 현지 취재에 바탕해 코소보 해법을 나름대로 내놓는다면 그것은 ‘코소보 분리독립’이다. 코소보에서 200만 알바니아계와 20만 세르비아계가 함께 어울려 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마치 한국이 전쟁을 겪은 탓에 남북한 사이의 증오와 불신이 깊어졌고, 그래서 남북 지도자가 손을 잡는 데 전쟁 이후 정확히 50년이 걸렸듯, 코소보 전쟁으로 말미암아 함께 어울려 조화로운 다민족사회를 이루기는 어려워졌다.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를 억지로 묶는 것은 일시적인 조치일 뿐, 내일의 분쟁씨앗을 심는 일일 뿐이다. 지금의 이바르강을 경계로 한 코소보 남부를 알바니아계에 떼주어 그들만의 코소보독립국가를 세우도록 유도하는 것이 발칸평화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바르강 남쪽에 점점이 퍼져 있는 세르비아계 마을 주민을 북쪽으로, 그리고 북쪽에 남아 있는 알바니아계 주민을 남쪽으로 옮김으로써 코소보에 평화가 깃들일 수 있다.

코소보의 운명은 아직은 안개 속이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UNMIK 책임자 해케럽은 코소보의 정치적 운명이 5년 뒤 판가름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는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가 최종협상에서 필요한 양보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두 종족 간 뿌리깊은 불신을 꼬집었다. 독립을 바라는 지구상의 소수민족은 민족자결이란 정치논리를 금과옥조처럼 여겼다. 많은 경우 민족자결논리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정치논리에 밀려났다. 2000만 쿠르드족이 그러하고, 500만 팔레스타인인이 그러하다. 이름하여‘비운의 민족’이다. 코소보 알바니아계가 ‘제2의 쿠르드’가 될지, 아니면 그들의 꿈을 이룰지 두고볼 일이다.



주간동아 291호 (p54~55)

<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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