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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밥먹고 돈먹고

밥먹고 돈먹고

밥먹고 돈먹고
부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었다는 의미로 쓰이는 ‘해먹었다’ 같은 표현을 보면 먹는 일이 한국인에게 얼마나 심오한 삶의 문제인지를 알 수 있다. ‘해먹었다’라는 말은 원래 자신이 직접 밥을 지어서, 즉 밥을 ‘해서’ 먹었다는 말일 것이다. 밥을 해먹는 것처럼 정직한 노동의 예가 없다.

그런데 ‘밥을 해먹었다’에서 ‘밥’라는 목적어가 없어진 채 그냥 ‘해먹었다’ 쓰이거나, ‘몇 억을 해먹었다’처럼 밥 대신 지폐를 ‘먹은’ 경우는 정직한 노동과는 정반대다. 문자 그대로 돈을 먹었다면 먹을 수 없는 것을, 행여 먹었다 해도 전혀 몸에 도움이 안 되는 물질을 먹은 것이다. 돈을 ‘해먹었다’면 먹을 수도 없는 물질을 밥을 하는 정직한 노동이 아니라 부당한 방법으로 몰래 착복한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과정을 소박하게 말해 어떤 일을 ‘해서’ 그 일의 대가로 ‘밥을 먹고 사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할 때, 한쪽 극단에는 정직하게 밥을 해 ‘먹고 사는’ 사람이 있고, 다른 극단에는 돈을 ‘해먹고’ 사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돈을 해 먹고 사는 사람들이 그냥 밥이나 해먹고 사는 사람들을 지배한다는 데 있다.

물론 돈을 해먹는 쪽에서도 할 말은 많다. 세무서 공무원이 국가로 들어갈 세금을 조직적으로 빼돌려서 한밑천을 모았다고 치자. 이때 당사자나 특히 그의 아내는 대개 “월급 갖고는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변명을 늘어놓을 것이다. 과연 그런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밥 해먹는 일에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가.

그래도 반론은 가능하다. 집안 식탁이 아닌 바깥의 식탁에서 밥 먹는 일의 어려움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는 식구들 외식 한번 해줄 수 없다”는 따위의 변론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먹고 살기’를 확대하는 것은 단순한 탐욕을 행위의 이유로 대는 것과 다름없다. 외식할 돈이 없다면 그랜저를 사고 골프 칠 돈이 없다. 소위 “먹고 살기 힘들어” 돈을 해 먹는 공직자나 “유흥비가 없어서” 강도질을 하는 불량배들이나 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돈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돌리는 것이다. 돈이 돌아야 경제가 돌아가고 여러 사람이 골고루 밥을 먹고 살 수 있다. 돈을 한쪽에서 계속 삼켜 먹으면 돈이 가야 할 곳에 가지 않을 것이고 돈이 가지 않는 곳에서는 밥 먹는 일에 심각한 장애가 생길 것이다.

“그러면 밥 대신 라면이나 먹으면 될 것 아니냐?” 이것이 산업화를 시작한 이후로 지난 30여 년간 줄곧 돈을 해먹는 자들이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해온 말이다. 그러나 라면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도 자존심이 있고, 꿈이 있고, 사장이나 장관만큼 욕망이 있다. 그래서 이들이 라면 맛에 질려서는 “왜 그 돈은 너만 먹느냐?”고 물으면, 돈을 해먹고 사는 자들은 “너도 능력껏 해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다시 반문한다. 이 충고를 그대로 받아들일 때, 모든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직업의 귀천이 없이, 한국사회라는 나무에 기생충처럼 붙어서 각자 능력껏, 자신의 위치에서 소신껏, 해먹게 될 것이다. 나무가 얼마나 더 버틸 것인가.

개혁, 구조조정에도 해먹으려는 기생충은 여전

IMF를 무사히 “졸업”했다지만, 온갖 개혁과 구조조정을 한다지만, 기생충은 여전히 기생충이다. 기생충이 배가 고파진다고 근면한 일개미로 변하지는 않는다. 다만 배가 고파서 더욱 더 게걸스러워질 뿐이다. 먹던 것을 못 먹은 기생충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해먹으려 든다. 특히 온갖 풍파도 견뎌내는 단단한 밥그릇을 손에 쥔 자들은 밥 해먹느라 분주한 사람들, 아니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에게 갈 푼돈이라도 긁어모아 해먹느라 분주하다.

그러니 꿈 많은 젊은이들이여, 열심히 시험공부해서 든든한 밥그릇을 하나씩 차도록! 밥그릇이 든든하면 밥은 물론이요. 돈까지도 해먹을 수 있는 법! 밥 먹고 돈 먹고, 이 얼마나 좋은가.



주간동아 2001.04.12 279호 (p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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